등록날짜 [ 2014-04-22 11:57:50 ]
율법은 선하고, 의롭고, 거룩하고, 신령하고, 사랑이 넘쳐서 흠잡을 곳이 전혀 없는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 보이는 법이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전혀 선하거나 의롭거나 거룩하거나 신령하거나 사랑이 넘치지 못하니 곧 하나님의 성품의 법과 반대되는 죄뿐이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율법을 만나면 ‘나는 죄인이구나’ 하고 깨달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죗값은 사망’이므로 사망이라고 하는 죄를 깨달아도 그 사망의 법에서 죄를 사함받아 살아날 방법이 없다. 율법은 거룩하나 속죄하는 기능이 없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율법이 찾아내지 못하는 생각의 죄까지 다 찾아서 율법의 거룩한 기능을 완전케 하시고, ‘죗값은 사망’이므로 인간이 죽어 지옥 가서 영원히 고통당해야 하는 그 사망을 피 흘려 죽으심으로 갚아 율법의 정죄로 말미암은 죽음을 폐기하시고 우리를 살려내셨다. 이같이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생각으로 지은 죄까지 찾아서 발견하는 기능을 보완해야만, 죄를 숨김없이 다 찾아낼 수 있다.
율법은 참으로 선한 법
우리 각자가 갚을 수 없는 엄청난 빚을 짊어졌다고 가정해보자. 그 많은 빚은 평생 아니 자손만대 갚을 수 없으니 무거운 빚이 짐이 되어 죽고 싶을 만큼 괴롭다. 하지만 그 많은 돈을 빌려준 사람은 죄인이 될 수 없다. 많은 돈을 빌리고도 못 갚는 그 사람이 죄인일 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죗값은 사망’이라고 하는 율법의 정죄는 전혀 잘못이 없다.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인간이 죄인일 뿐이다.
율법은 깊이 알면 알수록 참으로 선한 법이다. 절대 선하신 하나님의 법이기 때문이다.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우상숭배하지 말라’ ‘내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하지 말라’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라’는 위로 하나님을 향한 네 가지 계명은 모두 선한 법이다. 그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면 불순종의 죄를 짓게 된다. ‘죗값은 사망’이니 율법을 범하여 죗값으로 사망하지 말고 율법을 지켜서 살아야 한다고 일러주니 율법이 얼마나 선한 법인가.
또 아래로 인간을 향한 여섯 가지 계명, 즉 ‘네 부모를 공경하라’ ‘도둑질하지 마라’ ‘살인하지 마라’ ‘간음하지 마라’ ‘탐내지 마라’ ‘거짓 증거 하지 마라’도 인간관계에서 참으로 선한 법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율법대로 행하지 않으면 그 모든 것이 죄가 되므로 울법을 범한 죗값으로 사망할 뿐이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십계명 중에서 어느 한 법도 지킬 수가 없는 아주 연약한 존재다.
만약 우리가 자자손손 평생 갚아도 갚을 수 없는 큰 빚으로 죽어야 할 상황인데, 부자인 아버지가 대신 갚아주신다면, 우리는 빚에서 해방됨과 동시에 살게 된다. 이같이 ‘죗값은 사망’이라고 했으니, 죄를 지으면 율법의 정죄를 받아 죽임을 당하는 것이 당연하다. 자기 죗값으로 죽는 것을 누가 막을 수도 없다. 그렇지만 죄 아래서 죗값으로 꼭 죽어야 할 죄인은 그래도 살고 싶다. 그래서 예수께서 죄 아래서 죄로 죽어야 하는 죄인에게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고 하셨으니 이는 “네가 죗값으로 죽어야 할 죄를 내가 죽어서 갚아주겠다”는 구세주의 선포인 것이다(요14:16).
율법 앞에 의인은 예수뿐
바울은 로마서 7장 16절 이하에 율법은 선한 법이라고 했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내가 이로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이 말은 곧 ‘나는 율법대로 살고 싶다. 참으로 의롭게 살고 싶다. 그런데 나를 죄 아래로 끌고 가는 다른 것이 있다. 그래서 율법은 참으로 의롭고 선한데 내가 죄 아래 사로잡혀 할 수 없이 율법을 지켜낼 능력이 없구나”라는 하소연이다.
이렇게 고백한 바울도 과거에는 자신을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자’(빌3:6)라고 자부심이 대단했다. 하지만 바울은 율법의 본질을 깨닫고 난 다음에 ‘나는 죄인 중에 괴수’라고 했다(딤전1:15). 누구도 율법 아래 죄인 아닌 자가 없다. 그러기에 모든 인간은 율법 앞에 죄인이요 죗값을 갚아주실 예수가 필요하다. 율법의 정죄 아래서 죗값으로 꼭 죽어야 한다. 그러므로 율법은 죄 아래서 죗값으로 죽어가는 죄인을 살릴 예수가 절대 필요하게 만드는 법이다.
율법 앞에 아무도 의가 없다(롬3:10). 다 죄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셔서 율법 앞에 정죄되어 죽어가는 우리에게 사는 방법을 주시려고 인류를 대신해 죽게 하셔서 율법의 정죄에서 자유라는 해방을 얻게 하셨다. 그래서 우리가 천국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의는 내게서 생산된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죗값을 갚은 십자가의 피의 공로임을 알아야 한다.
인류를 죄의 그물에서 꺼내신 예수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율법의 요구를 이루셨다(롬8:4). 인류는 율법이라는 죄의 그물에 담겨 유구한 역사 속에 계속 율법의 정죄 아래서 죽음 곧 지옥의 고통을 당해야 했다. 그런데 이천 년 전에 예수께서 그 율법의 정죄된 것을 통째로 맡아 사망의 빚을 갚으시려고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시고, 온 인류를 그 율법의 정죄의 그물에서 해방시키셔서 자유케 하셨다. 그래서 ‘죄에서 너희를 자유하게 했다’ ‘율법에서 자유하게 했다’ ‘율법의 정죄에서 해방시켰다’고 하는 것이다(롬8:1-2). 이것을 믿고 소유한 것이 예수 믿는 사람이다.
이 같은 율법의 정죄로 죽게 된 사람은 예수로 살게 되었으니 곧 축복을 받은 사람이다. 이처럼 율법의 정죄는 죄로 죽어야 하는 인간을 예수께로 안내하여 살려 낸다. 율법의 정죄로 죽게 된 나를 살리실 예수를 찾아 만나서 살게 하는 법이 바로 율법이다. 그러므로 율법이 죄 아래서 구원받은 자들에게 얼마나 좋은 법, 선한 법, 생명의 법인가.
요한복음 1장 17절에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고 했다. 만약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율법만 있다면 율법의 정죄 아래서 죗값으로 말미암아 아무도 살아날 자가 없다.
그런데 구세주 예수께서 오셔서 참으로 하나님이 인간을 영원히 멸망시키지 않기로 작정하신 내용인, 율법의 정죄에서 믿으면 산다고 약속하신 진리를 십자가의 피의 공로로 이루시는 순간에 우리는 진리 안에서 영원히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는 말은 바로 이런 뜻이다. 어디서 해방이요 자유인가? 바로 율법의 정죄로 말미암아 죗값으로 질병에서, 저주에서, 사망에서 악한 마귀 귀신의 역사에서, 지옥의 멸망에서 자유와 해방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율법의 법에서 영원히 죽게 된 죄를 발견하고, 죗값으로 죽어 지옥가야 하는 절망에서 해방시키려 십자가에서 죽어서 죗값을 갚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으라. <계속>
*윤석전 목사의 ‘무보수전도자학교’강의를 요약·정리한 것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382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