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4-04-29 10:02:26 ]
시종일관 말씀과 진리로 죄를 발견하고 죄를 이기며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망각하지 않는 신앙생활 해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으로 정죄받아 그 죗값으로 사망에 이르게 된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이미 6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어떻게 살려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대로(사53:5~6)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율법으로 정죄받은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셔서 ‘죗값은 사망’이라는 사망의 빚을 갚아 온 인류를 사망의 그물에서 꺼내어 자유케 하셨다. 곧 율법의 정죄로 말미암은 죄에서, 저주에서, 질병에서, 사망에서, 지옥 멸망에서 인류를 자유케 하신 것이다. 이처럼 율법은 인간이 죄인임을 발견케 하여 그 죗값인 사망을 해결해 주실 예수께로 우리 인간을 안내하는 선한 법이요, 예수로 살게 하는 법이다.
인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죄 문제
만약 율법이 없다면 우리 인간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무엇으로 알 수 있는가? 양심으로 알 수 있는가? 인간의 양심은 각자 기준이 달라서 죄인임을 가늠하는 척도가 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찾는 사역을 인간의 양심에 맡기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성품 곧 하나님의 양심을 대변하는 율법이라는 잣대에 맡기셨다. 예수께서 보완하신 율법, 즉 행위로 지은 죄는 물론 마음속 깊은 곳에서 지은 죄까지 다 찾아내는 보완된 율법 앞에 인류는 모두 죄인이다. 율법 앞에 의인은 없나니 단 한 명도 없다(롬3:10).
‘죗값은 사망’이라는 사망을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갚아 인류를 죄와 율법의 그물에서 풀어내 주시는 순간, 율법의 요구인 ‘죗값은 사망’을 다 해결해 주셨다. 이러한 사실을 믿고 구원받으라 하는 것이 바로 복음 전도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16:31).
‘죗값은 사망’이라는 율법의 정죄로 죽게 된 인류를 예수께서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심으로 율법의 요구를 이루시고 살리신 사실을 믿고 회개하면 구원받는다.
이 세상에서 인간 스스로 절대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죄 문제다. 율법의 정죄를 해결하신 예수가 없다면 죄 문제는 해결할 길이 전혀 없다. 그러나 율법이 해결하지 못하는 인류의 죄 문제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으심으로 해결하셨다.
예수께서 인류의 죄를 다 짊어지고 피 흘려 죽으심으로 죗값을 갚아 주신 순간, 유대인들이 짐승의 피를 흘려 하나님께 죄를 용서받던 성전 안 지성소, 즉 제사장 외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그곳을 가로막던 휘장이 찢어졌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으셔서 율법의 정죄 곧 ‘죗값은 사망’을 해결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신의 죗값을 갚으신 예수의 피 공로를 힘입는 자는 누구라도 하나님께 들어갈 길이 영원히 열렸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이처럼 하나님의 율법은 내 죄를 깨닫게 하는 빛이요, ‘진리’는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 예수의 피로 구원받는 사실을 알고 믿게 하는 빛이다. 그러므로 진리는 인류가 율법이라는 죄의 그물에 담겨 죽게 된 것도 알게 하고, 예수의 피로 율법의 정죄에서 산다는 것도 알게 하는 빛이다. 진리의 빛은 이처럼 중요하다. 우리는 이 진리의 빛에 대해 몰라서는 절대 안 된다.
진리의 빛은 영광이다
우리 자신이 죽게 된 사실을 보게 하는 빛은 율법이요, 율법에서 해방해 자유하게 살게 하는 빛은 진리 곧 예수 그리스도다. 이 진리는 영화로운 영원한 빛, 곧 영광(榮光)이다.
지옥에 간 자는 1억 년이 지난 다음에도 “내가 무슨 죄가 있어서 지옥에 왔느냐?”라고 절대 말하지 못한다. 진리의 빛은 영원하기에 자신이 율법의 정죄에 있었기에 죄인임을 절대 감출 수 없다. 천국에 간 자도 영원토록 “내게 의가 있어서 천국에 왔다”라고 말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진리의 빛으로 율법의 정죄에서 예수 십자가의 피 공로로 속죄받은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이처럼 진리의 빛으로 아는 것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다. “영원토록 내 할 말 예수의 피밖에 없네”라는 노래는 이런 은혜를 깨달은 자가 감사의 고백으로 부르는 찬양이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죄를 이기고, 악을 이기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몸부림치며 충성하고 수고하는 것도 하나님 말씀의 빛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 율법과 진리의 빛이 날마다 내 안에서 환한 등불이 돼야 한다. 율법의 정죄에서 벗어나 예수 안에서 영원히 보존돼야 한다. 다시는 율법의 정죄와 진리를 거스르지 말아야 한다. 영원히.
율법과 진리의 빛을 가려 어둡게 하여 죄 아래서 멸망하게 하는 원수는 바로 어둠의 주관자 마귀역사다. 에베소서 6장 10~13절에 “이 세상 어두움의 주관자 악한 마귀 궤계를 이겨라”고 했다. 회개하여 죄 사함받고도 율법과 진리가 어두워지면 다시 함부로 죄를 짓게 되는 것은 이 빛의 말씀을 들어도 빛이 가려서 어두워졌기 때문이다.
율법과 진리의 빛을 가리는 어두움의 주관자 마귀 역사를 몰아내는 유일한 능력은 율법과 진리대로 행하는 것이다. “내 이름으로 병을 고쳐라! 내 이름으로 귀신을 몰아내라” 하신 예수 이름으로 어두움의 역사인 마귀를 몰아내어 더는 활동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예수는 이 땅에 사망의 세력, 어두움의 주관자, 인간을 죄짓게 하여 지옥 보내는 마귀를 멸하러 오셨다. “내 이름으로 대적하라.” 이것은 말씀의 빛을 가리는 어두움을 몰아내는 영광의 빛이다.
이겨야 영광이다
세상에도 사망 권세자, 어두움의 주관자, 죄짓게 하여 멸망하게 하는 마귀역사를 이기는 빛이 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 영광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승리의 빛을 말한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영광은 무엇인가? 죄를 짓게 하는 마귀와 싸워 이기고, 자신의 정욕과 싸워 이기고, 하나님 말씀과 반대되는 생각과 싸워서 이겨야 승리의 영광이다. 패배하는 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없고, 자기 자신에게도 영광이 없다.
지는 자는 자신이 멸망할 뿐이다. 이기는 율법과 진리와 빛이 왜 영원히 영화로운 영광인가? 죄를 이기는 것은 영원한 영생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고통을 주는 죄를 예수 피의 공로로 사함받아 영원히 살게 됐기 때문에 영원히 영화로운 영광이다.
영광은 영원하다. “하나님께 찬양으로 영광을 돌려라” 할 때, 이기지 못한 사람이 기분이나 자기감정에 따라서 찬양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은 승리하게 하신 은혜에 감사해서, 율법과 진리의 빛으로 깨닫고 알고 이기게 하신 하나님 은혜에 감사해서, 또 죄 아래서 백번 죽어도 당연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축복으로 만물을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로 영생을 주시고, 생명을 주시고, 천국을 주신 은혜에 감사해서 찬양해야 그것이 영광 돌리는 찬양이다. 이처럼 찬양도 영광이 아니면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얼마나 우리가 율법과 진리 안에서 생의 본능을 가지고 살고자 하는 정신으로 신앙생활을 깊이깊이 생각하며 해야 하는가.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시종일관 율법과 진리로 죄를 발견하고 죄를 이겨야 한다. 예수께서 “내가 세상을 이기었으니 너희도 이겨라, 내가 죽음을 이기었으니 너희도 이겨라, 내가 죄를 이기었으니 너희도 이겨라”고 선포하셨다. 이기는 자에게만 영원한 천국이라는, 행복이라는 영광이 있다. 마귀에게 져서 멸망하는 자에게는 영광이 없다. 꼭 승리해야 영광이다. 할렐루야!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어두움의 주관자이며 사망의 세력을 잡은 마귀의 궤계를 이겨 승리하여 영육 간에 승리의 영광으로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영광이 영원하기를 기도한다. 승리하자, 이기자! 할렐루야! <계속>
*윤석전 목사의 ‘무보수전도자학교’ 강의를 요약·정리한 것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383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