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4-08-11 14:16:49 ]
인본주의 생각으로는 알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의 길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자기 입으로 직접 자기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고 하셨다. 이와 같이 예수께서 자기 자신을 ‘죗값으로 멸망할 인간들이 하나님 아버지께로 담대히 나아갈 단 하나의 길이다,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다, 영원히 사는 생명이다’라고 소개하셨지만, 당시 유대인 지도자인 장로, 서기관, 제사장, 바리새인들은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전해 들을 때, 그 말을 심각한 비중을 갖고 들으려 하거나, 율법에 비춰 연구해 보려고 하거나, ‘예수의 말이 뜻하는 바대로 된다면 어떻게 되는가?’ 하는 기대감을 갖지 않았다.
오늘날 믿노라 하는 기독교인 중에도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대하는 태도가 유대인 지도자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라도 이 땅에 왔다가 육신의 때를 마감하면 반드시 하나님 아버지 나라 천국에 가거나 그렇지 않으면 지옥에 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저 영원히 불타는 지옥 신세를 면하고 예수께서 우리의 죗값인 사망을 십자가에서 대신 피 흘려 죽으시고 해결하여 주심으로 하나님 아버지 나라 천국에 갈 길이 열렸다는 것은 천지간에 최고로 엄청난 사건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 엄청난 사건을 그 사건의 함량만큼 사실화하여 보려 하지 않는가? 왜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참혹한 지옥에 갈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영원히 행복한 천국에 갈 영생의 문이 활짝 열린 절대적이고 웅장한 사건으로 인정하려 들지 않는가? 또 인정한다고 하면서도 왜 감격과 감사와 충성과 순종이 없는가?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절대적인 생명의 구세주라는 확신이 희미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처한 영적 신분을 알아야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도 그저 목사가 예배시간에 으레 하는 말씀이겠거니 할 뿐, 자신에게 천국 가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절대적 구원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듣지 못하여 십자가의 피 공로를 자신의 몫으로 소유하지 못한다면, 그는 참으로 안타까운 사람이다. 우리가 예수께서 자신을 소개한 내용 그대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를 모르면 내 영혼이 살길이 전혀 없고 진리도 없고 생명도 없다. 예수만이 유일한 길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려면, 먼저 ‘나’라는 인간이 현재 처한 신분부터 제대로 알아야 한다.
‘나는 예수를 만나기 전에 어떤 신분이었던가?’ ‘나는 육신의 소욕과 정욕대로 육신의 요구를 이루려고 온갖 죄를 짓고 살다가 그 죗값으로 이 땅에서도 죄 아래서 저주와 질병과 불가능으로 고통받고, 죽어서도 지옥에 가서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영원히 당해야 할 처참한 신분이다.’ 이처럼 예수 없는 사람은 누구라도 자기 신분이 영육 간에 처절한 최후를 가진 존재임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이 자신이 이 땅에서 죄 아래서 정욕대로 살다가 인생을 마감했을 때 지옥에 간다는 영적 미래를 확실히 알고 나면 그다음 순간, ‘죄와 저주와 질병에서 벗어날 방법이 전혀 없구나, 지옥 형벌에서 빠져나올 길이 없구나’ 하며 절망하게 된다.
바로 그때 전도자를 통해 ‘너를 죄와 저주와 질병 그리고 지옥의 멸망에서 건져 줄 예수가 계시다! 예수만이 구세주시다!’라는 사실을 전해 듣고 예수가 구세주이심이 실제로 믿어질 때, 그 환희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죄 아래서 지옥에 가서 영원히 고통당할 죄 문제를 십자가의 피 공로로 완전히 해결하신 절대적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받았다는 것은 이 세상 유일무이한 엄청난 축복의 사건이다.
우리가 인간의 힘으로 전혀 해결할 수 없는 죄라는 불가능을 가졌을 때, 그 죄라고 하는 불가능으로 멸망하게 되었을 때, 앞을 봐도, 뒤를 봐도, 위를 봐도, 아래를 봐도, 세상 어디에도 죄 아래서 당할 지옥 고통을 해결할 길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바로 그때, 예수께서 “내가 길이다!” 하고 선포하고 나선 것은 엄청난 사건이며, 그 예수가 바로 진리이며 생명이시다. 진리는 논리나 이치나 인간이 터득해서 이해하여 소유할 만한 그런 차원의 것이 아니다. 오직 구세주 예수께서 보내 주신 성령으로만 알게 된다(행1:8, 요15:26).
진리는 모순 같으나 믿는 자의 몫
하나님이 누구신가? 창조주이시다. 그러면 창조주께서 무엇을 만드셨는가? 천지 만물을 만드셨다. 인간은 누구인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이다.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 앞에 어떤 행위를 했는가? 창조주 하나님께 감히 도전했다(창3:1~6). 그렇다면 인간은 분명히 죄로 죽어야 한다. 창조주께 도전했으니 그 죗값으로 저주와 파멸이 돌아오는 것은 당연하다.
창조주의 말씀을 듣지 않고 마귀 말을 듣고 먹지 말라 한 선악과를 먹은 인간이 그때서야 ‘아, 나는 이제 죽었구나. 다시는 살길이 없구나. 이제는 저 멸망의 지옥 형벌에서 벗어날 길이 전혀 없구나!’라고 절망하여 무너져 내릴 때,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다. 왜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는가?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도전한 죄는 그 값이 사망이다. 그러므로 죗값으로 영원히 죽어야 할 인간 대신 예수가 그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게 하심으로 인간의 죗값을 갚아 인간에게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사는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다.
이처럼 인류가 죄인 되어 죗값으로 멸망하게 된 것과, 그런 인간의 죗값을 갚아 구원해 주시려고 창조주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 영원한 지옥 형벌을 십자가로 해결하여 주신 사건은 인간의 논리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에게 마땅히 죄를 물어 지옥에 던져 영원히 고통을 당하게 해야 하는데도 오히려 자신의 독생자를 보내셔서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여 죄와 사망과 지옥의 영원한 고통에서 구원했다는 것은 도무지 인간으로서는 납득할 수 없는 사건이다. 인간적인 사고로는 도무지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진리는 이와 같이 우리 인간의 무지한 인본주의적인 생각과는 완전히 모순된다. 어떻게 창조자가 자기가 창조한 피조물인 인간이 자기에게 도전하여 그 죗값으로 지옥의 형벌을 받아 마땅할 때, 자기 독생자를 보내 인간이 당해야 하는 죗값을 대신 갚아 주고 구원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이와 같은 은혜가 진리라고 믿기만 하면 영혼이 구원을 받아 영생하며, 그 믿음만큼 이 땅에서도, 천국에서도 복을 받는다. 진리는 믿는 자의 영원한 기업이요, 믿는 자의 기업은 영생과 천국이다. <계속>
*윤석전 목사의 ‘무보수전도자학교’ 강의를 요약·정리한 것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397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