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4-10-21 23:30:43 ]
하나님을 원망하게 만들고 갈라놓게 만드는 악한 영
결국은 믿음에서 떠나게 해 지옥으로 끌고 가려는 것
우리는 욥과 같이 감당할 수 없는 영육 간의 고통에 직면할수록,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고 먼저 ‘왜 내게 이 같은 일이 생겼는가?’를 영의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잘못을 저질러 그 죗값으로 말미암은 고통이라면 회개하여 죄 사함받아 고통을 해결해야 한다. 아무 잘못이 없는데도 시험 들게 하여 영혼을 사냥하려는 사단 마귀의 역사로 온 고통이라면, 부르짖는 기도로, 하나님 말씀을 지킴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끝까지 싸워 이겨야 한다.
우리는 영적 존재이기에 성경이라는 신령한 안경을 쓰고 문제가 발생한 즉시 죗값으로 온 문제인지 사단 마귀역사인지를 확실하게 볼 수 있어야 한다. 죗값으로 오는 고통도, 죄 없이 오는 고통도 결국은 다 악한 영의 역사다. 그러므로 악한 사단 마귀 역사를 알고, 보고 강력하게 몰아내서 이겨야 한다.
하지만 어두워서 무지한 육의 눈으로 보면 ‘내가 뭘 잘못했기에 하나님께서 내게 이런 고통을 주시나?’ 하고 하나님을 원망한다. 하나님께서 원수 사단 마귀의 손에서 구원해 주셔야만 영육 간에 살아갈 수 있는데도 그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하나님과 멀어지면 결국은 자기 영혼이 멸망한다는 사실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신령한 영의 눈이 열려야 바로 본다
욥의 종 한 명이 달려와서, 스바 사람이 강도로 돌변해 소와 나귀를 빼앗고 칼로 종을 죽인 비보를 고하는 중에 또 다른 종 한 명이 달려왔다. “갈대아 사람들이 세 떼를 지어 갑자기 약대에게 달려들어 그것을 빼앗으며 칼로 종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여 주인에게 고하려 왔나이다.”
갈대아 사람이 강도로 돌변한 이 사건도 그 종의 현실적인 육의 눈에는 갈대아 사람만 보일 뿐, 갈대아 사람을 강도로 만든 사단은 보이지 않는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한다”(요일3:8)고 했으니 죄는 다 마귀역사에서 나온다. 우리는 죄가 있는 곳에 마귀가 역사한다는 점을 확실히 알고 보아 마귀역사를 몰아내야 한다.
이 일을 하라고 신약시대와 성령시대에 와서 ‘예수 이름’을 우리 믿는 자들에게 주셨다(막16:17~20). 우리는 모든 잘못을 하나님께 돌려 하나님을 원망하는 버릇을 고쳐야 한다.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은 이유 불문하고 다 사단 마귀의 역사다.
참으로 안타깝게도 오래 믿었다는 기독교인 중에도 자기에게 불행한 일이 닥치면 ‘왜 하나님이 나를 힘들게 하십니까?’ 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게 된다.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아프게 하거나 고통을 주는 분이 아니시다. 우리 인간을 영육 간에 아프게 하고 저주하고 하나님과 관계를 파괴하는 존재는 마귀역사다.
그러므로 원망은 우리에게 고난과 고통을 가하는 마귀에게 돌려야 한다. 우리 인류를 죄와 사망과 지옥에서 구원하시려 독생자를 죽이기까지 사랑만 베푸신 하나님께 절대로 원망을 돌려서는 안 된다. 선하신 하나님의 역사와 악한 마귀역사를 알고 보는 영의 눈이 열리지 않아 원망할 대상을 뒤바꾸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다.
성경을 정욕으로, 육으로, 인본주의로 보는 사람은, 성경 말씀조차 자기의 현실 상황을 합리화하는 데 이용한다. 육의 눈으로 보는 인본주의적 성경관은 ‘하나님이 나를 위해 있다’는 사고로 매사를 자기 중심으로 이해하려 한다. 그러나 신본주의, 즉 창조자의 영적 시각에서 성경을 보는 눈이 열린 사람은 ‘나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므로 하나님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고로 매사를 하나님 중심으로 알고 행한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사는 사람만이 현실 세계와 영적 세계가 보이는 영의 눈이 열린 사람, 성경이라는 영의 안경을 쓴 사람이다. 성경 말씀으로 주신 영의 눈을 가지지 않으면 영육 간에 몰아닥치는 모든 행·불행을 육의 눈으로만 볼 뿐이다. 어떤 사람은 병들어 병마의 고통을 견디지 못할 때 ‘왜 하나님께서 내게 이런 병을 주셨는지 모르겠다!’ 하며 마치 자기가 믿음이 무척 좋아 하나님과 가까운 양 착각한다.
이는 믿음 좋은 것이 아니라, 매사 육의 눈으로만 볼 뿐 영적으로는 하나님을 기만하는, 스스로 속는 사람이다. 왜 그러는가?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와 악하고 간교한 마귀 역사를 분별할 줄 몰라서 그렇다. 이 같은 무지는 영적 세계를 명확하게 보는 영의 안경이 없기 때문이다.
불행 속에 사단의 역사 간파해야
종이 비보를 미처 다 전하기 전에 또 다른 종이 와서 하늘이 무너질 듯한 애통한 소식을 전한다. “주인의 자녀들이 그 맏형의 집에서 식물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시더니 거친 들에서 대풍이 와서 집 네 모퉁이를 치매 그 소년들 위에 무너지므로 그들이 죽었나이다 나만 홀로 피한고로 주인께 고하러 왔나이다”(욥1:18-19).
육의 눈으로는 갑작스러운 기상 변화로 일어난 천재지변으로 볼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 말씀인 성경은 사단이 저지른 일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우리는 어떤 불행한 일을 당하거든 그 불행 속에 사단 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고, 사단의 역사를 능히 이길 절대 권세자이신 예수 이름으로 몰아내야 한다. 그러나 욥은 지금 자기가 당하는 고통의 원인을 전혀 모르고 있다.
성경은 ‘이것은 하라’ ‘이것은 하지 말라’는 명령으로 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하라’ 명하신 것은 절대적으로 실행해야 하고,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 명하신 일은 절대로 실행하지 말아야 한다. 이 사람이 영의 눈이 열린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하라’ 명하시는데 ‘하지 말라’는 자가 바로 사단이다.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 하시는데 ‘하라’는 자도 사단이다.
성경이라는 하나님 말씀을 언제나 반대하는 자가 사단이다. 사단은 하나님께서 ‘하라’ 하셨는데 하지 못하도록, ‘하지 말라’ 하신 일을 할 수밖에 없도록 모든 환경을 조장해서 우리가 불순종하고 죄짓게 하여 하나님과 사이를 파괴한다. 이것이 마귀 사단 귀신 역사다. 결국은 영혼 사냥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믿음에서 떠나게 하여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원수를 보는 눈이 열려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보는 눈이 활짝 열려 사단에게 영혼을 뺏앗기지 말아야 한다. 영의 눈이 활짝 열려야 한다(딤4:1~2, 요10:10). <계속>
*윤석전 목사의 ‘무보수전도자학교’ 강의를 요약·정리한 것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406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