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보수전도자학교(122)] 성경 속 모든 내용은 나의 것이다

등록날짜 [ 2014-11-04 10:31:42 ]

성경 속에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 모습이 다 들어 있어
영혼의 때를 위해 준비하는 영적 눈이 성경으로 열려야

우리는 생명의 말씀인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성경을 읽어도 은혜 없이 그냥 문장으로만 읽던 종전의 방법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명의 경험을 얻는 눈을 떠야 한다. 하나님은 성경 모든 내용을 다 나에게 주셨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말씀으로 창조하신 천지 만물을 모두 나에게 주셔서 육신이 살게 하셨다. 요한복음 3장에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나에게 주셔서 영혼이 살게 해 주셨다.

요한계시록을 읽어 보면 성경에 약속한 영원한 천국도 내게 주신 나의 것이다. 성경은, 성경 안에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한 모든 말씀을 전부 나에게 주신 사실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을 때는 성경 속 모든 것을 다 내 소유로 가져야 한다.

성경 속 사건이 다 나에게 주신 내 것이므로, 우리는 성경 속에 있는 수많은 축복의 사건을 내 앞에 가져다 놓고 볼 수 있어야 한다. 또 과거에 내가 저지른 죄를 오늘로 가져다가 예수의 피 공로로 회개하여 죄 사함받고, 내가 장차 살아가면서 누릴 행복을 오늘로 끌어와서 행복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같이 우리는 성경 속의 사건을 멀리 봐야 할 것은 멀리 두고 보고, 가까이 봐야 할 것은 가까이 가져다 놓고 보고, 때에 따라서는 먼 것과 가까운 것을 동시에 두고 볼 수 있어야 한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인간을 사랑하신 사건을 볼 수 있는 영의 눈을 가져야 한다. 다시 말하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 마지막 사건까지 다 가져다가 한눈에 놓고 소유할 수 있는 영의 눈이 열려야 한다.

성경 전체 어느 시대에도 거기에 있는 나
창세기를 읽어 보면 내가 창세기 시대에 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왜 내가 창세기 사건 속에 가 있는가?

창세기에 등장하는 최초의 사람 아담이 범죄 할 때 내가 아담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로마서 5장 12절에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말하고 있다. 한 사람 아담이 죄지었는데 왜 모든 사람이 죄지었다고 말하는가? 그것은 인류가 다 아담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7장에도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릴 때 아브라함의 증손인 레위가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함께 십일조를 드린 바 되었다고 했으니, 이는 그때에 레위가 조상 아브라함의 허리에 있었기 때문이다(히7:9~10).

이같이 비록 나는 주후 2014년에 살고 있지만, 창세기를 통해 내가 아담 때부터 있었던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아담이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 하신 선악과를 먹어 영원히 죽을 원죄를 저지른 것은 내가 선악과를 먹어 원죄를 저지른 것이다. 아담 안에 나도 있었기 때문이다. 또 유대인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온갖 고통을 가하여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은 바로 내가 고통을 가하고 죽인 것이다.

예수가 고난 겪고 죽으신 것은 바로 내 죗값을 갚으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의 죽음을 통해 인류가 죗값인 사망을 갚아 죄에서, 저주에서, 사망에서, 지옥 형벌에서 구원받은 것도 바로 내가 구원받은 것이다. 이처럼 성경 속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그 시대 속에 내가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성경 속 사건은 아주 먼 과거 일 같아도 그곳에 내가 있고, 미래에 일어날 사건 속에도 이미 내가 그곳에 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 속에서 과거도 피할 수 없는 사람이며, 현재와 미래도 피할 수 없는 사람이다. 거기에 항상 내가 있기 때문이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보라
우리는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흘린 피 공로를 믿으며, 그 피 공로 앞에 있는 은혜로 살고 있고, 주 안에서 행동하며, 주님과 관계하고 있다. 그런데 육신의 생각대로 살면, 우리가 하는 신앙생활이 지금이라는 현재의 일인데도 오히려 자신의 영적 모습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성도라면 영혼의 때를 위하여 마땅히 드려야 할 새벽예배에 나가지 않고, 주일성수를 하지 않으며, 예배 시간을 종교 행사로 알며, 하나님의 것인 십일조를 드리지 않아 하나님의 것을 도적하고도 하나님 두려운 줄을 모른다. 육신의 요구와 현실로 볼 때 너무 가까워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너무 가까워서 죄 아래 있는 자기 모습이 보이지 않거든, 멀리 과거를 보라. 과거에 이스라엘 민족은 제사에 실패했을 때 저주를 받았고, 십일조를 드리지 않아 저주를 받았다. 또 저 멀리 미래를 보라. 하나님 앞에 예배에 실패자가 되고 불순종하고 도전하며 십일조를 도적질한 사람이 주님 앞에 가서 받을 심판을 말이다. 현재의 내가 보이지 않거든 과거를 통해서라도 지금 자신의 모습을 봐야 한다. 그리고 미래에 자신의 영혼의 때를 행복하게 준비할 수 있는 성경의 눈이 열려야 한다.

성경은 나를 보는 거울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우상숭배하고 간음하며 온갖 죄를 많이 짓는가? 과거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숭배하거나 간음하면 하나님께서 현장에서 죽이셨다(고전10:7~8). 만약 지금 내가 여전히 그들과 같이 우상숭배나 간음하고 있다면, 성경을 통해 자신이 받을 형벌이 얼마나 무서운지 육신의 때가 끝난 다음 영혼의 때를 보아야 한다.

성경을 읽으면서도 나의 신앙 형편을 전혀 알지 못한다면 성경이 나와 무슨 상관있는가? 성경은 하나님의 의를 보고 나의 죄를 보는 거울이다. 안경은 잘 보려고 쓴다. 먼저 위로 하나님을 잘 보고, 아래로 나를 잘 보려 성경이라는 영의 안경을 쓴다.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의 존재와 나의 존재가 밝히 드러난다.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고전10:9~10).

성경은 나를 보는 거울이다. 그런데 왜 성경을 읽으면서도 여전히 하나님 말씀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예배 시간에 말씀 듣는 일에 실패하며,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우상숭배 하며, 마음과 행동으로 간음하고, 주를 시험하고 원망하는가? 이런 행동을 하면서도 분명하고 확실하게 멸망할 자식인데 왜 망할 나를 보지 못하는가?

성경 속에 기록한 과거 사건을 내 앞에 가져다 놓고 보고, 성경이라고 하는 전지하신 말씀의 눈을 통하여 나를 정확하게 보자. 또 미래의 나를 보자. 그렇다면 어떻게 영원히 망할 짓을 할 수 있겠는가? 성경을 보는 영의 눈으로 내 모습을 밝히 바라보고 죄 아래서 지옥에서 멸망할 나를 보고 회개하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 공로와 은혜로 저 천국에서 영원히 행복하자. 


<끝>

*이번 호를 끝으로 ‘무보수전도자학교’를 마칩니다.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408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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