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2-05-22 11:45:27 ]
성도라도 날마다 새로워져야 하는 이유 무시
결국 성경 일부 구절만 강조하는 이단일 뿐
구원파의 ‘회개’는 정통교회의 그것과 다르다. 구원파의 회개관은 한 마디로 ‘구원받은 자는 회개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들의 논리는 이렇다. 회개란 ‘돌이킨다’는 말로써 오직 구원을 위해 돌이키는 행위라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다 사해 주셨다는 것을 받아들임으로만 회개할 수 있는데, 이미 사해준 죄를 또다시 사해 달라고 울고불고 회개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죄를 이기는 과정을 무시
‘회개는 한 번만 하는 것으로 회개를 거듭하는 것은 구원이 없는 증거’라고 보는 점이 비성경적이다. 물론 구원을 위한 회개를 두 번 할 필요는 없다(히6:1~2). 문제는 구원파가 구원을 위한 회개와 성화를 위한 회개를 혼동한다는 점이다. 두 가지 경우 모두 ‘회개’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즉 구원을 위한 회개와 성화를 위한 회개라는 용어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구원을 위한 회개든(히6:1~2), 성화를 위한 회개든(시편51:14;삼하24:10;마6:12;요일1:8~9 등), 용서하고 용서받는 행위는 근본적으로 단회적이다. 구원을 위해서 단 한 번만 회개하면 된다. 그러나 인간이 죄를 계속 범한다는 점에서 성화를 위한 회개는 계속해서 할 수밖에 없다.
구원받은 후에도 반복적으로 죄를 짓는 우리로서는 날마다 성화를 위한 회개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성경이 분명히 그것을 요구하고 있다(골2:6~7).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문, 즉 주기도문에도 이것이 잘 나타나 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는 내용이다(마6:12). 구원파 식으로 해석하면 주기도문은 구원을 위한 단회적인 회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에 이 기도문의 회개는 성화를 위한 반복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첫째, 이 기도문은 반복해야 할 기도 내용이다. 기도문 내용 중 하나님 이름이 한 번만 거룩히 여김을 받을 수 없으며, 일용할 양식이 한 번만 필요한 것이 아닌 이유와 같다. 둘째, 주기도문의 ‘죄’는 단수가 아니라 복수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계속 자범죄, 즉 계속해서 짓는 죄를 의미한다.
성경 일부만을 말하는 어리석음
구원파, 특히 박옥수 씨는 자신의 구원파 사상을 입증하려고 요한일서 1장 9절, 시편 51편 등의 성경 구절을 자주 사용한다. 그러나 그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본뜻과 박 씨가 설명하고 있는 내용은 다르다. 박 씨가 성경을 오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 씨는 죄와 범죄는 다른데 한국 교회는 성도에게 범죄에 대해서 회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죄의 근본을 해결하면 범죄는 자동으로 해결된다는 식이다. 그리고 그러한 자신의 사상을 입증하는 성경 구절로 요한일서 1장 9절을 언급하고 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한일서 1장 9절)
죄와 범죄는 다르며, 근본적인 죄에 대해서만 회개하면 나머지 죄는 저절로 해결되는 것처럼 말한다. 즉 우리가 죄의 근본만 해결하면 이후에 나타나는 범죄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식이다.
<사진설명> 구원파 단체인 IYF(국제청소년연합) 대회 포스터. 건전한 단체인 IVF(한국기독학생회)와 이름이 비슷해 속기 쉽다.
박 씨는 또 시편 51편 5절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는 구절을 언급하면서, 다윗은 자신의 어떠한 범죄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원죄를 언급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원죄만 온전히 해결하면 범죄에 대해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려고 한 말로 보인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다윗은 원죄에 대한 회개를 여러 번 했다는 말이 된다. 다윗은 인구조사를 한 후에 하나님께 죄를 범했으니 용서해 달라고 회개한 바가 있다(삼하24:10).
또 다윗은 자신의 죄악을 숨기지 않았을 때 하나님이 용서해 주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시편32:5). 그 외에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구원파 논리로 보면 이는 다윗이 원죄를 여러 번 회개했다는 말이 된다. 다윗은 시편 5편 14절에 ‘피 흘린 죄’를 용서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그럼 다윗이 말한 피 흘린 죄는 무엇인가? 17절의 ‘통회하는 마음’이 다윗에게 있음을 말한다. 그 마음은 무슨 마음인가? 계속해서 원죄에 대한 심정을 표현하는 말일까? 아니면 스스로 죄를 지은 것에 대해 통회하는 마음인가?
또 요한일서 수신자는 불신자가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인이 되어 있는 성도라는 점이다. 이 서신을 쓴 요한이 편지를 받는 이들을 향해 ‘나의 자녀들아’, ‘형제들아’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그리스도인이 된 이들의 죄를 지적할 때 원죄를 언급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요한일서 1장 8~9절이 또다시 구원을 위한 죄를 언급하고 있다는 것은 모순된다. 그리고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에서 ‘우리’는 복수형으로 저자를 포함하는 말이다. 따라서 요한이 자신을 향해서도 원죄를 언급하며 회개할 것을 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여기서 언급하는 ‘죄’라는 단어는 복수형이다. 여러 가지 죄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별취재팀
위 글은 교회신문 <290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