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1-01-19 11:40:43 ]
사람은 누구나 무엇인가를 믿고 삽니다. 살아가는 동안 얻는 경험, 신념, 신용, 정보 등을 통해 나름대로 믿음을 형성하고 그 믿음을 바탕으로 삶의 방향을 결정하거나 자기만의 삶의 방식이나 원칙을 만들어냅니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사람일수록 그 믿음이 확고해져서 어지간해서는 믿음의 방향을 바꾸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무엇을 믿느냐가 중요한 일입니다.
또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믿고 싶어 합니다. 특히 ‘이 세상은 도대체 어떻게 해서 생겼지?’, ‘나는 누구며 왜 살지?’, ‘사람은 왜 죽는 거지?’ 등등 세상과 인간 자신의 실존에 관해 고민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런 고민을 겉으로 드러내려 하지 않습니다. 만약 교회에 다니는 사람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으면 당장이라도 교회에 가자고 할까봐 부담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쁘다는 핑계로 이런 고민을 접어두고 재미있는 일만 찾다보니 이런 고민에 무관심해진 것입니다.
한 때 종로 같은 번화가를 지나가면 “선생님, 도(道)에 관심이 있으십니까?”라고 접근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질문을 바꿔서 “선생님은 참 덕(德)이 있어 보입니다”라는 말로 접근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질문이 바뀐 것에서 보듯 그만큼 사람들이 골치 아픈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근본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세상과 인간 자신의 실존에 대해 고민하면서도 그런 내심을 감추는 이유는 명쾌한 답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수많은 사람이 자신이 왜 살고, 왜 죽는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전혀 모른 채 한평생을 살다가 죽어갑니다. 이 문제의 답은 성경에 이미 나와 있습니다.
죄의 값이 곧 사망(롬6:23)이니 인간은 죄 때문에 죽습니다. 죄의 문제만 해결되면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내 죄를 대신 담당했다는 사실을 믿으면 죄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고 사망에서 자유할 수 있습니다. 이 사실만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데도 믿지 않는 것은, 자기 지식으로 이해할 수 없거나, 경험하지 않으면 믿으려 하지 않는 인간의 속성 때문입니다.
복음(福音)은 내가 믿지 않는다고 해서 변하거나 무효 되지 않는, 정말 그야말로 진리입니다. 그런 점에서 믿음이란 먼저 하나님을 향한 내 자세를 고쳐 잡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226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