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신자 가이드] 경계해야 할 종교 다원주의 사상

등록날짜 [ 2011-12-06 13:45:00 ]

종교 다원주의란, 모든 종교를 인정하고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상을 말합니다. 예를 들자면, 산에 오르는 길은 다양하나 정상은 똑같다는 것입니다. 즉, 산 정상에 올라가는 방법이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경로를 통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모든 종교는 절대자를 찾아가는 각각 다른 길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이나 불교에서 말하는 부처나 이슬람교에서 말하는 알라나 우리 토속종교에서 말하는 천지신명이나 모두 이름만 다를 뿐, 동일한 절대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나 석가나 마호메트나 모두 그 절대자가 보낸 구원자라는 점에서 같다는 것입니다.

같은 절대자를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다른 방법으로 섬기는 것뿐이기에 어느 종교든 성실히 종교생활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주장하는 것이 종교(宗敎) 다원주의(多元主義)입니다.

그러기에 유난히 외길을 고집하는 기독교를 독선적이고 배타적이라고 비난합니다. 그런데 과연 모든 종교가 방법만 다를 뿐, 한 절대자를 섬기며 같은 목적을 추구할까요? 물론 기독교와 다른 종교가 윤리.도덕으로 볼 때 유사한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부분에 불과합니다.

본질적으로 기독교는 타 종교와는 전혀 다른 구원 방법을 제시하고 있으며, 신앙의 최종 목적도 다릅니다. 예를 들어, 성경에도 나오고 불전에도 등장하는 비슷한 사건이 있는데, 이를 해결하는 방법을 비교해 보면 불교와 기독교가 얼마나 다른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석가모니에게 과부가 찾아와 죽은 아들을 살려 달라고 애원합니다. 석가모니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돌아다니면서 사람이 죽어나가지 않은 집 일곱 군데를 찾아 쌀을 한 움큼씩만 얻어오면 내가 당신의 아들을 살려주겠다.” 과부는 온종일 돌아다녔지만 그런 집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돌아온 과부에게 석가모니는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는 법이다.” 석가모니는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릴 필요도 없었겠지만, 또 살릴 능력도 없었습니다. 불교에서 다루는 인간의 죽음 문제는 거기까지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습니까? 예수께서 나인 성에 들어가실 때 사람들이 어떤 과부의 죽은 외아들을 메고 왔습니다. 예수는 그 과부를 불쌍히 여기시고 “울지 말라”고 하시면서 그 관에 손을 대시고는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아서 말했다고 했습니다(눅7:11~15).

말씀 한마디로 죽은 자를 살리셔서 과부의 문제를 해결해 주었습니다.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이 땅에 사는 동안 도움이 될 만한 지혜를 제공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반면에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죄를 사하실 수 있는 분이요, 죽은 자라도 살릴 전지전능하신 분이시기에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성경 전체는 오직 예수만이 죽은 자를 살리고, 더 나아가 죄로 멸망할 인간을 구원하여 부활의 생명으로 영원히 살릴 수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세상 종교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인간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 길은 멸망의 길입니다. ‘모든 종교는 같다’는 어리석은 사상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위 글은 교회신문 <268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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