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2-03-06 18:18:06 ]
어떤 물건의 가치 평가는 그것의 값이 얼마인지로 대략 가름합니다. 어느 물건을 천 원 주고 샀으면 천 원짜리 가치고, 만 원 주고 샀으면 만 원짜리 가치입니다. 자동차도 어떤 것은 수백만 원짜리이지만, 어떤 것은 수억 원짜리도 있습니다. 그 값만큼 품질의 가치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에 속한 구원받은 ‘나’의 가치는 어느 정도이겠습니까? 나를 구원하려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그 피 값을 지불하셨으니 구원받은 나는 한마디로 ‘예수님짜리’입니다. 즉 예수님만 한 값어치라는 말입니다.
나는 비록 세상 사람의 눈에 하찮게 보일지라도 하나님 아들의 죽음이라는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고 구원받은 값비싼 존재입니다. 예수의 죽으심은 이 세상 인류 모두의 죄를 갚을 만큼 대단합니다. 그러나 예수를 그저 우리와 똑같은 평범한 사람으로 아는 이는 도저히 이 사실이 믿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의 죽음이 어떻게 해서 인류 모든 사람이 지은 죄를 대신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영이시며(요4:24), 말씀이십니다(요1:1). 그리고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요1:4).
그러므로 하나님, 하나님의 영, 하나님의 말씀, 예수의 육신은 모두 동격(同格)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의 육신은 영이신 하나님의 말씀과 같은 수준이라는 것입니다.
인간도 영적 존재로서 첫 사람 아담 안에 인류 전체가 다 들어 있습니다. 마치 커다란 고목이 수천 년 전에 낸 가지나 올해 새로 싹을 내 성장한 가지나 다 똑같은 특성을 지닌 한 나무인 것처럼 말입니다.
이처럼 첫 사람 아담이 선악과를 먹는 원죄(原罪)를 범하여 영원히 사망하게 됐고, 그로 말미암아 그에게서 나온 인류 모든 인간도 원죄를 지니고 태어나 죄로 영원히 멸망하게 됩니다. 원뿌리가 썩었으니 새로 나오는 것도 다 죽은 것만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죄로 영원히 죽을 첫 사람 아담을 살려주러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으니”(고전15:45)라고 했습니다. 죄로 죽은 첫 아담을 살리시려고 마지막 아담인 예수께서 살리는 영으로 오셨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아담이라는 나무에서 나온 가지가 예수라는 나무에 접붙여지는 것과 같습니다. 아담이라는 뿌리에 달려 있을 때는 죽을 수밖에 없었지만, 예수께 접붙여지는 순간부터 하나님의 생명으로 영원히 사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문제는 철저히 개인적입니다. 아무리 아내가 예수를 잘 믿는다고 해도 그의 남편이 믿지 않으면 절대로 저절로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부모가 예수를 잘 믿는다고 해서 자녀가 저절로 예수 잘 믿으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각자 예수께 접붙여져야 구원받습니다. 죄는 유전하지만, 믿음은 유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믿음의 영향력을 끼칠 수는 있지만, 구원을 대신 받아주지는 못합니다.
로마서에 나오는 돌감람나무와 참감람나무의 접붙임 이야기는 이런 구원의 진리를 잘 설명해줍니다.
“또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긍하지 말라 자긍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이운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옳도다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우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롬11:17~21).
위 글은 교회신문 <280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