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2-07-17 13:46:01 ]
예수를 수태(受胎)할 것임을 알려준 천사에게 마리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까”(눅1:34). 여기서 “사내를 알지 못하니” 하는 말은 사내를 경험하지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안다’라는 말은 헬라어로 ‘기노스코’, 즉 남녀 간의 육체관계를 지칭할 때 이르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안다’는 ‘경험한다’는 말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안다는 것도 그 사람과 인격적으로 만난 경험이 있어야 비로소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을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일4:16).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안다는 것도 성경을 경험했다는 말입니다. 성경을 지식으로 알지 말고 경험으로 소유하라는 뜻입니다. 일상생활에서도 체험으로만 얻어지는 지식이 있습니다. 운전이나 수영은 아무리 이론적으로 안다고 해서 할 수 없고 실제 체험해야 할 수 있습니다.
성경 말씀도 그냥 아는 것과 체험으로 아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물론 신앙의 체험 없이도 반복되는 설교를 듣고, 가르침을 받고 기독교적인 분위기 속에 있다 보면 그 같은 지식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소위 습관적인 지식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성령으로 말씀을 체험할 때는 이런 지식을 실제로 경험하게 됩니다. 지적으로 들리던 말씀이 성령의 경험을 통해서는 훨씬 풍부하고 생생한 지식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공부’하려 하지 말고 ‘체험’하려 해야 합니다. 성경 속 사건의 주인공이 바로 ‘나’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공생애 동안 행한 역사, 사도들이 그 시대에 행한 모든 역사가 오늘날 우리의 삶 속에도 동일하게 일어나야 합니다.
성경을 체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성경을 살아 계신 하나님이 하신 약속의 말씀임을 믿고 그 권위가 절대적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와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하신 약속으로서 보편성(普遍性)이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에 약속하신 말씀은 믿는 자들이라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권세로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병을 고치고 방언을 말하고 귀신을 쫓아내는 역사도 성경에 분명히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이라고 했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16:17~18).
특정한 사람들만 행하는 일이 아니라 믿는 자들에게 보편적으로 따르는 권세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방언 은사를 받고 기뻐하는 이유도, 하나님이 하신 약속을 내가 믿고 사모했더니 내게 그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경험했기에 그렇게 기쁜 것 아니겠습니까? 마가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셨을 때와 똑같은 상황이 내게 일어났기에 놀라운 것입니다. 더불어 말씀을 체험하려면 말씀의 보편성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13:8)는 말씀대로 ‘예수의 현재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성경의 사건들을 과거에 지나간 일로 취급한다면, 예수는 역사 속 인물에 불과합니다. 예수께서 행하신 모든 사건이 오늘날도 동일하게 나타난다는 현재성을 믿어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우리는 예수를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이 오늘, 지금, 바로 여기, 내게 역사하고 있다는 믿음을 지녀야 성경의 모든 사건을 체험으로 소유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지식으로 알려 하지 말고 경험으로 소유하십시오.
위 글은 교회신문 <297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