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2-10-23 09:59:53 ]
예수를 믿지 않던 사람들, 유난히 기독교를 냉소적이고 비판적으로 대하던 사람들, 특히 기독교를 믿는 이를 심하게 핍박하던 사람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음 안에서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면,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막10:27) 하신 말씀을 실감합니다.
지금은 믿음 안에 견고히 선 사람 중에서도 예수를 처음 믿은 때를 돌이켜 보면, 누구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고백할 것입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12:3)고 하신 말씀대로 예수를 믿는 것은 나의 선택 이면에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이 역사하셨기 때문입니다. 한 영혼이 전도되어 그리스도인이 되기까지 수많은 사람이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것도, 성령이 강권적으로 그에게 역사하시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죄인인 육(肉)의 인간을 하나님께로 난 영(靈)의 인간으로 거듭나게 하여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는 일을 하십니다. 성경은 이것을 중생(重生)이라고 합니다. 예수께서는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요3:3~5). 거듭난다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면 성령께서는 그 사람의 심령 가운데 역사하셔서 계속 믿음을 주십니다. 사람들은 복음을 ‘이해해야’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먼저 깨달아 알고 믿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 먼저 믿고 난 후에 깨달아 알게 됩니다.
성령으로 거듭나면, 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던 일들이 믿어집니다. 성령께서 도와주시기에 점점 더 견고하게 신앙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오직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중생을 경험해야만 진정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새 생명을 얻어 신령한 자녀로 태어나는 것이 중생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신다고 했습니다(롬8:16).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내 아버지가 되시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알고 인정하는 것은 오직 성령의 계시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속에 알려졌고 믿어졌기 때문입니다.
이런 거듭난 경험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기가 매우 어색합니다. 어떤 어르신이 교회에 와서 기도하는 소리를 가만히 들어 보니, 손자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아들과 며느리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불러서 촌수를 따져 보니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아 자기는 도저히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겠다고 하더랍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런 분들도 은혜를 받고 거듭나면 하나님을 자연스럽게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교회 의식(儀式)을 통해 그렇게 부를 수 있도록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교리로 그렇게 부르라고 해서 부를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실제 경험으로 성립하는 관계입니다.
성령께서 내 심령 가운데 역사하셔서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확증해 주시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자연스럽게 부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딛3:5)라고 말씀하신 대로, 중생의 경험을 주는 이는 성령이십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310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