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3-03-26 15:50:45 ]
하나님 말씀은 심령을 비춰 주는 빛입니다. 빛은 어두움을 밝혀 줍니다. 빛이 들어오는 순간 어두움이 사라집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 말씀으로 끊임없이 죄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율법은 죄를 지적해 주고 알려 주어서 죄의 어두움에서 나올 수 있게 해 줍니다.
적(敵)을 알고 나를 알아야 싸움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죄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한다고 했으니 죄짓게 하는 마귀역사를 알아야 이긴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말씀인 율법이 바로 죄짓게 하는 원수 사단, 마귀, 귀신 역사를 밝히 알게 해 줍니다.
율법을 통해 죄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대로 의롭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이것은 바리새인처럼 내가 율법을 지키면 의로워지므로 말씀대로 산다는 말이 아닙니다. 죄로 오는 비참한 결과와 그 죄가 나를 영원한 사망으로 이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살려고 악착같이 죄와 싸웁니다. 내 인격을 총동원하여 어떻든 죄를 짓지 않으려 합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죄를 피해야 할 때도 있고 정면으로 부딪쳐 싸워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무리 죄를 안 짓고 살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죄를 짓습니다. 특히 육신의 소욕과 정욕으로 짓는 죄는 눈에 보이지 않아 하나님과 나만 알고 있습니다. 이 죄에서 누구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방법은 오직 한 가지, 내 죄를 대신 담당하시려고 흘리신 예수의 피로 죄를 깨끗이 씻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것만이 죄에서 자유를 얻는 유일한 길입니다(막1:15).
우리가 죄를 안 지으려고 고민하고, 지은 죄 때문에 가슴 치며 괴로워하는 것이 하나님 뜻대로 하는 근심입니다. 하나님 뜻대로 하는 이러한 근심이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룬다고 했습니다(고후7:10). 이같이 율법으로 죄를 발견하고 복음으로 자유를 얻는, 율법과 복음의 조화 속에서 사는 이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나 죄를 짓고 또 회개하는 일이 반복된다고 해서 과연 만족할 수 있습니까? 어떤 때는 죄인 줄 뻔히 알면서도 육신의 소욕을 이기지 못해서 죄지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예수께서 내 죄를 사해 주시려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사랑을 깊이 알고 경험하면 할수록 이런 생활을 반복하는 것조차 양심에 거리껴 견디지 못합니다. 율법과 복음은 늘 육신의 소욕 탓에 조화를 이루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러한 불편한 양심에서 자유롭게 해 주시려고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8:12~14)고 말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야 몸의 행실을 죽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쉽게 예를 들면, 컵에 물이 가득하면 공기가 들어올 틈이 없듯이, 성령이 충만하면 죄가 들어올 틈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죄와 벌이는 싸움에서 결정적으로 승리하는 비결은 성령의 능력입니다. 율법과 복음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게 해 주시는 분이 성령입니다. 성령만이 우리를 신의 성품에 참예케 하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해 줍니다.
이 일을 위해 우리가 할 일은 오직 순종입니다. 죄를 깨닫게 하는 것도, 죄에서 자유를 주신 분도, 그 죄를 이길 힘도 다 하나님에게서 나오기에 우리는 그분 앞에 순종만 하면 됩니다. 모두 다 하나님의 은혜뿐입니다. 이 은혜를 간직하려고 기도하고, 이 은혜에 기쁨으로 감사하며 사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장항진 목사(도서출판국장)
위 글은 교회신문 <331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