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신자가이드] 잘못된 지식을 버리고 방언을 사모하라
등록날짜 [ 2014-07-22 12:08:14 ]
설교와 기도의 차이를 바로 알아 오해 없기를
방언은 성령 하나님께서 주시는 귀한 은사입니다. 그러므로 방언은사는 성령께서 주시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간절히 사모해야 받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처럼 귀한 방언 은사를 사모하지 않는 까닭은 방언에 대해 잘못된 지식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방언은 사도시대로 끝났다” “방언은 받아도 필요가 없는 은사다” 등등 잘못된 주장을 펴는 이가 많습니다. 그들이 사용하는 성경구절은 고린도전서 14장 19절입니다.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이 구절만 떼어 놓고 보면 정말 그렇게 오해할 여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고린도 교회 상황에 비추어 이 말씀의 앞뒤를 살펴보면 왜 이런 말을 했는지 정황을 알 수 있습니다.
방언은 자기 영으로 ‘하나님께’ 비밀을 말하는 기도입니다. 방언 기도하는 당사자나 그 기도를 듣는 자나 똑같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만 그 뜻을 아시고 응답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고린도교회 지도자들이 회중 앞에서 설교할 때 방언으로 했다는 점입니다. 방언이 영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말이니 설교도 방언으로 하면 사람의 말보다 얼마나 더 은혜롭겠느냐고 생각한 것입니다.
최초로 마가다락방에 성령이 충만히 임하여 제자들이 방언을 말하자 이 소리가 밖에까지 들렸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유대인들이 머물고 있었는데, 제자들이 방언하는 소리가 그들의 귀에 각기 자기가 난 곳의 말로 들려오는 놀라운 이적이 일어났습니다(행2:5~8). 이런 일은 항상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한 역사로 일어납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방언으로 말하면 언제든지 사람들이 자기 나라 말로 알아들을 줄로 오해했습니다. 그래서 대중 앞에서 설교할 때마다 방언으로 했으니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해 고린도교회 전체에 혼란이 생겼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문제를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하겠기에 설교의 지침을 내린 것이 바로 고린도전서 14장 내용입니다.
사도 바울의 지침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너희가 다 방언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방언은 자기의 덕을 세우기 위한 것이다. 너희가 교회의 덕을 위해서 방언을 할 때는 통역을 세워라. 즉 남을 가르치기 위해서 설교할 때는 방언으로 말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듣는 사람이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 없다. 개인적으로 기도할 때는 방언으로 기도하되 회중들을 가르치기 위해 설교할 때는 방언으로 하지 말고 말로 하라.”
이 말씀은 절대로 방언이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4장 19절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낫다”는 말 앞에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서”라는 단서를 붙였습니다. 이 단서조항을 간과하면 말씀을 엉뚱하게 이해합니다. 교회에서 남을 가르치려면 알아듣는 다섯 마디가 못 알아듣는 일 만 마디 방언보다 낫습니다. 그러다 보니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거든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및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고전14:26~28)라는 말씀도 오해해서 교회에서 아예 방언하지 말라는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방언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한다”(4절),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한다”(18절), “방언 말하기를 금지하지 말라”(39절). 방언이 필요 없다면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 터입니다. 방언은 기도할 때 절대적으로 필요한 은사입니다. 지금도 성령께서는 간절히 사모하는 자들에게 방언은사를 주십니다. 잘못된 지식으로 오해하지 말고 더욱 간절히 사모하여 방언은사를 받으시길 바랍니다.
/장항진 목사(도서출판국장) 위 글은 교회신문 <394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