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은 현실입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인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하셨으므로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삶 속에서 아름다운 열매로 드러나야 합니다.
신앙생활에 열심을 낸다는 이유로 가정생활이나 사회생활을 등한시해도 괜찮은 줄 알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 사람보다 더 철저한 도덕적, 윤리적 기준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법 테두리뿐만 아니라 하늘의 법을 지키며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항상 우리를 지켜보신다는, 하나님을 인식하는 삶이 곧 신앙생활입니다.
초대교회 당시 성도들은 주님이 그들 시대에 오실 줄로 확실히 믿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무위도식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이들의 삶을 경계하면서 땀 흘려 일하여 규모 있는 생활을 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규모 없이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다 하니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종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살후3:10~12).
또 당시에 노예제도가 그대로 있었기에 자칫 예수 안에서 한 형제가 되었다는 이유로 주종관계의 질서가 파괴되는 것을 우려하여 사도 바울은 종된 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하여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하고 사람들에게 하듯하지 말라”(엡6:5~7).
더불어 상전들에게도 권면하였습니다.
“상전들아 너희도 저희에게 이와 같이 하고 공갈을 그치라 이는 저희와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니라”(엡6:9).
이 말씀들은 오늘날 직장윤리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 안에서 성실히 일해야 합니다. 사회 위계질서를 존중하며 속한 조직 속에서 최선을 다해 자기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세상 물정에 어두워서도 안 되고, 어리숙하게 행동해서도 안 됩니다. 주님께서도 세상에 제자들을 보내면서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고 했습니다(마10:16).
그뿐만 아니라 가정생활도 아주 중요합니다.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하며 공경해야 하며, 부모는 자녀를 사랑으로 잘 양육해야 합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엡6:1~4).
또 부부관계에도 그리스도를 섬기듯 서로 사랑으로 하나 되라고 했습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찌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엡5:22~25).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렇게 하나님 말씀을 따르는 거룩함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아야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신뢰하고 그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복음을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장항진 목사(도서출판국장) 위 글은 교회신문 <406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