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5-05-22 10:13:26 ]
예수를 ‘주님’이라고 부를 때는 ‘예수가 주인이시요, 나는 종이 되어 그분을 섬기겠다’는 신앙고백이 밑받침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인류의 죗값을 대신 갚아 죄에서, 저주에서, 지옥형벌의 멸망에서 구원해 주시려고 죽으러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실제로 예수는 2000년 전 이스라엘 골고다언덕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으심으로 자신의 피를 대가로 지불하고 인류의 죄를 갚아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예수께서 인간이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은혜를 베푸셨다는 사실을 아는 자가 그 은혜에 감격해 예수를 ‘주’라 부릅니다. 또 그때부터 이제 자기가 죽고 사는 문제는 전적으로 예수께 달려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기에 예수를 ‘주님’으로 섬기게 됩니다. 따라서 예수를 ‘주님’이라 인정하고 고백하는 사람은 항상 자신을 낮추며 주님께 순종합니다. 겸손은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에서 출발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약4:6).
하나님이 원하시는 겸손은 아무런 이의(異意) 없이 기꺼이 따르는 자, 주님께서 쓰시기에 전혀 부담 없이 순종하는 자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것이 인간으로서는 최고의 겸손입니다. 특히 직분을 임명할 때는 사양하기보다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겸손입니다. 자신은 능력이 안 된다며 극구 사양하는 것은 겸손이 아니라 교만입니다. 정말 자신이 직분을 감당하기에 능력이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주님께 기도하여 합당한 능력을 구해야 하며 그것이 겸손입니다. 또 직분을 잘 감당해서 주의 일이 성공했을 때, 자기 의를 드러내지 않고 그렇게 하도록 능력 주신 주님께 감사를 고백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살다 보면, 하나님 말씀과 내가 처한 환경이나 여건이 맞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 말씀은 절대적이기에 어떠한 다급한 사정보다 우선해야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 말씀이 가르치고 명령하는 바와 내가 행하려는 것이 다를 때, 이 둘을 일치하는 방법은 한 가지뿐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자기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것이 아닙니다. 환경, 형편을 불문하고 반대로 자기를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바대로 끌어올려 하나님과 일치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한 사람은, 내 지식으로 이해되지 않더라도 나를 하나님 말씀에 과감히 맞춥니다. 이같이 하나님 말씀에는 순종만 있을 뿐, 인간의 주관적인 생각이 개입할 여지가 없습니다.
어떤 경우건 하나님 말씀이 지시하는 바를 정확히 알았다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버리고 그 말씀대로 따라야 합니다. 이 같은 믿음의 행동이 바로 ‘겸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히 행하는 자에게 비로소 인간의 생각과 감정을 이기고 하나님 말씀대로 거듭나고 만들어지는 신령한 체험을 주십니다.
내 영혼은 하나님 뜻대로 겸손히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지만 육신은 정욕대로 행하려고 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롬8:6~8).
하나님 말씀에 반대되는 생각을 하나님의 원수일 줄 알고 의지를 총동원하여 육신의 생각을 거스려 행해야 합니다. 이것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고 오직 성령의 힘으로만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자기 부인, 자기 부정이 계속 쌓여 가면 점점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겸손한 자가 되고 하나님 앞에 크게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장항진 목사(도서출판국장)
위 글은 교회신문 <435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