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곤 목사의 평신도신학 ⑦]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이해에 대하여

등록날짜 [ 2010-09-01 07:28:35 ]

 성경 전체가 주는 메시지에 초점 맞춰야

*글 싣는 순서
① 성경 무오성(無誤性)
② 성경 무류성(無謬性)

성경을 바라보는 관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바로 무오성과 무류성이다. 지난번에는 무오성(Inerrancy)을 다루었으며, 이번 호에서는 무류성(Infallibility)에 대하여 자세히 다루고자 한다.

무류성은 성경이 기독교인들의 믿음과 삶에 관련한 모든 문제에 대하여 무류하다고(unfalling, infallible) 믿는 견해다. 이 견해는 특별히 과학과 역사와 관련한 소소한 문제들까지 성경이 무오하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복음서들을 통틀어 예수는 성경이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데 결코 틀릴 수 없다(눅16:17; 요10:35)는 사실에 전폭적으로 자신감을 나타내신다. 예수는 어떤 문제에 대한 결단이 믿음과 연결할 때 이러한 자신감으로 성경의 무오성에 관하여 일관성 있게 언급하셨다. 이러한 성경을 바라보는 태도는 예수의 제자들에게서도 나타났고 역사적으로 교회의 가르침의 중요한 특징으로 자리 잡아왔다.

예수와 초기 제자들로부터 알 수 있는 것처럼 성경의 신뢰에 대한 변함없는 태도는 항상 기독교인들이 믿어야 하는 것과 어떻게 그들이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는 점이다.

성경의 궁극적 목표와 성경으로부터 나타나는 가르침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3:17)고 한다. 감동의 초점은 신앙과 예식에 관한 것만을 포함한다. 성경이 당대의 이해에 벗어나지 않게 우주와 역사를 설명하는지 안 하는지를 이해하는 일에 바울을 비롯한 어느 다른 저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성경 저자들이 이러한 우주와 역사 이해를 언급하려고 할 때, 그들이 표현한 성경에 대한 신뢰를 우리가 잘못 사용하는 것일 뿐이다.

성경에 대한 정직한 설명은 성경이 철저하게 감동되어졌으며 철저하게 인간적이라는 것이다. 성경의 인간적인 요소는 모든 인간의 관점과 생각의 일부분인 제한성과 오류성을 반영한다. 우리는 성경 저자들의 실수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한 가지 예만 들어 보자. 다음 공관복음에서 예수님이 70인 제자들에게 하시는 명령을 비교해보자.

<예1>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군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마10:10)
<예2>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주머니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것도 가지지 말며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하시고(막6:8~9)
<예3> 여행을 위하여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주머니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며(눅9:3)

세 구절이 명확하게 같다고는 볼 수 없다. 예수께서 마가가 얘기한 것처럼 지팡이를 가지라고 말씀하셨는가, 아니면 마태와 누가에게 얘기한 것처럼 지팡이를 지니지 말라고 하셨나? 또 예수께서는 마가가 얘기한 것처럼 신발을 신으라고 하셨는가 아니면 마태의 얘기처럼 신발을 신지 말라고 하셨나? 이러한 불일치는 세 구절이 전하고자 하는 기본적인 가르침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즉 제자들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임무를 수행할 때 자신들의 공급이 아닌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명백하게도 세 구절은 불일치하고 이렇게 문자적 의미에서 오류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사실 이와 같은 소소한 불일치가 성경 전체를 통해 나타난다. 때때로 이것들은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설명할 수 없는 것들도 있다. 하지만 설명할 수 없다 할지라도 이것들이 성경이 전하고자 하는 중요한 의미에서 벗어났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과 예식에 관한 문제에 관해서만 성경의 실수 없음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이러한 역사와 과학적인 부정확성이 우리의 신앙과 관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20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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