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0-11-24 13:02:02 ]
예수는 신이자 인간이다. 하지만 이 땅에서 예수가 어떤 능력을 가졌느냐에 대해서는 모든 신적 특권을 가지고 있지만 사용하지 않았다는 전통적 견해와, 모든 신적 특권을 내려놓았다는 케노시안 기독론으로 나뉜다. 이번 호에서는 전통적 견해에 대해 알아본다. <편집자>
예수의 신성과 인성에 관한 논의의 여러 세부사항이 예수 부활 이후 4세기에 걸쳐 논의한 끝에 칼케돈공의회(451년)에 의해 해결이 되었지만, 정통 교회는 항상 성경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하나님인 동시에 완전한 인간이라고 가르쳤다. 역사를 통해 볼 때, 대부분의 신학자와 일반 신도에게 있어서 이것은 예수가 신적이고 인간적인 특성의 전 범위를 나타내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는 하나님으로서 전지전능하고 동시에 인간으로서 능력과 지식이 제한적이기도 했다. 예수는 둘이 아닌 한 분이지만, 하나가 아닌 두 본성을 가지신다. 교회는 이러한 가르침이 항상 심오한 신비를 나타내지만 모순이 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오늘날 몇몇 복음주의자들은 예수가 완전한 신이자 동시에 인간임을 강조하면서도 예수가 인간이 되기 위해 신적 특성의 사용을 내려놓았다고 주장한다. 예수가 신적 거룩함과 사랑을 가지고 있지만 그는 어느 곳에나 있을 수 있는 편재성, 모든 것을 아는 전지성, 그리고 모든 것을 할 전능성을 일시적으로 내려놓았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견해를 따르는 사람들은 복음주의자들이 전통적 견해가 모순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철학적 과오를 저지르는 것이며, 또 예수가 어떤 신적 특성들을 포기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성경적인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라고 말한다.
초대교회 시절에 어떤 이들이 예수가 완전한 인간이라는 것을 부인했었지만 오늘날 이러한 진실에 의문을 가지는 이는 거의 없다. 예수의 인간적 특성은 복음서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예수는 신체적일 뿐만 아니라 지적으로 성장해야만 했다(눅2:52). 인간으로서 예수가 알지 못하는 것들이 있었으며(막13:32)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되었다(히2:10; 5:8~9). 또 인간으로서 아버지 하나님께 복종했으며(마26:39, 요6:38), 기도했고(눅6:12), 항상 철저하게 의지했다. 비록 순전한 인간으로서 도덕적으로 흠이 없었지만 시험도 당했고(눅4:1~13, 히4:15), 다른 사람들이 경험하는 분노, 슬픔, 외로움, 심지어 두려움에 이르는 모든 감정을 경험했다(요2:13~17; 11:35, 막15:34, 눅22:41~44)고 한다.
동시에 복음서들을 통해 예수의 온전한 신성 또한 나타난다. 저자들이 예수의 제한적 지식에 대하여 묘사했지만 그들은 예수의 전지한 마음 또한 나타냈다. 예를 들면 처음 나다나엘을 만났을 때 예수는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다나엘은 예수님의 신성의 증거로서 그의 초자연적인 지식을 보고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하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요한은 나중에 이러한 초자연적인 통찰력이 가끔 나타나는 계시가 아니라고 명확히 말하고 있다.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또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시므로 사람에 대하여 아무의 증거도 받으실 필요가 없음이니라”(요2:24~25).
이는 예수가 사람들 속의 생각과 동기를 전지하게 알고 있다(마9:4, 요2:24~25)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다. 예를 들어, 유다의 속이는 마음과 미래의 배반에 관한 예수의 얘기(요13:18~19; 21~27), 앞으로 있을 베드로의 부인(막14:12~16)과 어떻게 베드로가 죽을지(요21:18~19), 그리고 그와 그의 제자들을 위해 집을 제공해 줄 사람(막14:12~16), 그리고 물고기의 입안에서 찾게 될 동전(마17:24~27)에 관한 사실에서 알 수 있다. 인간으로서 예수는 그가 아는 것에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서 그는 제한이 없었다. 어떤 때 예수는 동시에 둘(하나님과 인간) 다 이기도 했다.
성경은 예수가 다른 신적 특성을 가졌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복음서들은 예수를 비록 인간으로서 능력이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전능한 창조자라고 묘사한다. 하나님으로서 예수는 바람뿐만 아니라 물고기의 움직임도 통제할 수 있었다(눅8:23; 요21:5~6). 하지만 인간으로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요5:19)고 고백한다.
하나님으로서 그의 본성은 바뀐 적도 없고 바뀌지도 않는다(히13:8, 말3:6, 약1:17). 하지만 인간으로서 그는 성장하고 온전해져야만 했다(히2:10). 하나님으로서 시험당할 수(약1:13) 없었지만 그러나 인간으로서 우리와 똑같이 모든 면에서 시험을 당하셨다(히4:15). 사람으로서 그는 기도했고 하늘의 아버지를 경배했지만(눅10:21) 하나님으로서 경배를 받으셨다(요20:28).
위 글은 교회신문 <218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