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곤 목사의 평신도신학 <17>] 구원은 누구에게나 허락한 것인가

등록날짜 [ 2011-01-19 11:38:52 ]

칼뱅주의자들의 구원에 관한 견해는 전통적으로 알파벳 첫 글자로 만든 튤립(TULIP)이라는 다섯 가지 포인트로 요약할 수 있다. 타락(Total depravity), 조건 없는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제한적인 구속(Limited atonement), 저항할 수 없는 은혜(Irresistible grace),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 견인(堅忍): 끝까지 견고하게 붙잡는다는 뜻) 이 다섯 가지다. 지난번에 이어 이번 호에서는 칼뱅주의 구원론에 관한 나머지 두 가지 핵심점 그리고 알미니안주의의 구원론에 대해 알아본다. <편집자>

튤립(TULIP)에서 문자 I는 저항할 수 없는 은혜(Irresistible grace)를 의미한다. 성경은 인간 자신의 뜻에 의해 구원받지 못한다고 확실하게 말한다. 하나님의 선택은 인간의 의지나 노력이 아니라 긍휼함을 베푸시는 하나님께 달렸다(롬9:16). 기독교인들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에게 난 자들(요1:13)”이다.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그들은 영원히 하나님을 고의적으로 저항한다. 사실 이것이 바로 믿지 않는 자들이 하는 일이다. 그러나 은혜가 충만한 하나님은 그가 선택한 자들의 마음을 바꾸신다. 하나님은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고 심령 속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채우신다(렘31:31~34). 하나님은 선택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저항할 인간들의 마음을 바꾸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저항할 수 없다(Irresistible)고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튤립(TULIP)에서 문자 P는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선택하고 하나님의 저항할 수 없는 은혜로 변(變)한 인간은 타락할 수 없게 된다. 인간들은 확실히 죄와 싸울 것이고, 아마도 일시적으로는 죄에 빠질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들은 영원한 보응을 받을 때까지 그들의 신앙 안에서 머무를 것이다. 이러한 놀라운 가르침은 신약 곳곳에서 나타난다. 예를 들면, 믿는 자들은 영생을 가진다고 한다(요3:36; 6:47). 아마도 마지막에서야 얻을 수 있는 영원한 생명은 영원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제자들을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을 수 없다(요10:28~29)”고 확언하신다. 신약은 일관성 있게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다(벧전1:4~5;유1장)”고 강조한다.

알미니안주의
구원에 관한 알미니안주의의 개념은 성경에 흐르는 네 가지 주제로 표현하고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주제는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둘째 주제는 사람들은 이러한 사랑을 받아들일지와 거절할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주제는 하나님은 은혜로우셔서 사람들이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도록 영향을 끼치시지만 억지로 강요하지는 않으신다는 것이다. 마지막 넷째 주제는 믿는 사람들에게 구원이 보전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관계가 계속 유지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먼저, 모든 기독교인은 하나님이 완전한 사랑(요일4:8,16)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원한 본성인 사랑보다 더 위대하고 순전한 사랑을 상상할 수 없다. 이러한 사랑은 하나님이 모든 인간을 완전한 사랑으로 사랑하시고 그들 모두가 구원받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칼뱅주의자들이 가르치는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이 오직 몇몇 구원할 사람만을 위한 사랑이라면 그의 사랑은 전혀 완전하지 않은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모든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태도에 대하여 성경은 하나님이 완전한 사랑이라고 계속해서 묘사하며 가르치고 있다.

비록 이스라엘 민족이 너무나도 자주 잊었을지라도 하나님의 목적은 그가 선택한 민족을 사용하여 그의 완전한 나라를 이루게 할 것이라고(창12:3;출19:6) 하나님은 반복해서 강조하셨다. 성경에서 우리가 계속 읽은 것은 하나님이 어느 한 민족을 다른 민족보다 편애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사실이다(신10:17~19;대하19:7;욥34:19;롬2:11). 에스겔이 말하기를 하나님은 결코 불공정하시거나 임의적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긍휼함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고 한다(겔18:25). 예레미야 또한 하나님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애3:33)라고 말하는데, 이러한 가르침은 하나님께서 어떤 이들은 창조하시기 전에 이미 지옥으로 예정하셨다는 칼뱅주의자들의 의견에 모순(矛盾) 하는 것이다.

1세기 유대 기독교인들 또한 처음에 하나님의 보편적인 사랑의 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예수님께서 반복적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그의 사역의 보편적인 범위에 대해서 강조했을지라도(마28:18~20;행1:8) 초기 기독교인들이 대위임(大委任, Great Commission, 마28:18~20)을 이루기 위해 열방으로 나가도록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방법을 뛰어넘게 인도하셨다. 하나님은 베드로에게 그가 이방인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환상을 보여주셨다(행10:9~16). 그는 설교 첫 부분에서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행10:34~35)라고 선언했다.

위 글은 교회신문 <22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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