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1-10-18 13:06:38 ]
죄에 빠진 인류를 위해 하나님께서 직접 해결하시다
최근 복음주의 신학자들이 논쟁하는 세 가지 견해 즉 죄속론, 승리자 그리스도론, 도덕적 통치론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십자가에서 죽으심의 의미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고 우리와 영원히 교제하기를 원하신다. 하지만 그런 바람 가운데 하나님께서 직면하신 딜레마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의 죽음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성경은 인간이 개인적으로 혹은 집단적으로 하나님께 대적하고 있다고 말한다. 모든 사람이 의도적으로 죄를 짓고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롬3:23). 우리는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그러므로 ‘진노의 자녀’다(엡2:3). 현재의 타락한 상태에서 우리는 ‘죄로 죽은 상태’(엡2:1~3)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완전한 사랑을 하신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은 거룩하셔서 죄와는 상관할 수 없으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죄를 내버려두지 않으신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해 초지일관 분명히 대처하고 계시는데, 그것은 불의에 대한 거룩한 진노뿐이다(롬1:18).
‘죄의 삯은 사망’(롬6:23)이라는 진리는 하나님의 본성에서 나오는 것이고, 이에 대해 어떤 것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만약 하나님께서 죄를 참으시고 한 번이라도 심판 없이 지나가신다면, 하나님은 자신의 완전한 거룩함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 하지만 하나님은 절대로 그럴 수 없으시며, 그렇게 하지도 않으신다.
여기서 약간 딜레마가 발생한다. 하나님께서는 절대 죄인과 함께할 수 없으신데, 그럼에도 죄인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셔야 했다.
하나님의 방법은 그분이 영광스러운 만큼이나 참으로 심오(深奧)하고 신비(神秘)롭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거룩함이 요구하는 ‘죄의 삯’을 직접 자신이 담당하기로 하셨다. 아들 하나님은 아버지께 순종함으로 타락한 인간의 수준으로 자신을 낮추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담당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자리에서 죄의 심판을 담당하셨기에 이런 속죄 견해를 죄속론(The penal substitution view)이라고 부른다.
구약에 예언된 예수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대신할 것’을 주셨다는 영광스러운 진리는 구약의 희생(犧牲) 제사의식에 이미 나타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제사를 가리키는 방법으로, 구약 사람들은 그들의 죄를 씻기 위해 양과 소의 피를 흘려야 할 것을 명령받았다(히9:13). 이런 희생은 명확한 대속을 의미한다(레1:3~4).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피 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다’(히9:22)고 가르치셨다. 하나님은 죄인인 인간을 위해 대속제물로서 자신의 피를 흘릴 때를 말하고 계셨다(행20:28;롬3:25). 이사야서는 인간의 대속물이 될 메시아에 대한 구약의 기다림을 표현한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5).
그는 우리의 모든 죄악을 담당하셨다(사53:6). 왜냐하면, 그의 생명이 속건(贖愆) 제물(祭物)이기 때문이다(사53:10). 그는 많은 사람의 죄를 대신 짊어지며 범죄자를 위해 기도하셨다(사53:12). 이런 구절들은 분명히 예수께서 우리를 대신해 죽으실 것이라는 진리를 말하는 것이다. 이사야서는 확실하게 오실 메시아가 그의 날에 대속제물의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다른 이들을 위해 죽을 것이고 그래서 그들이 하나님이 받으시기 합당한 자가 되게 하리라는 것이다.
신약에 예언된 예수
신약 성경도 제사와 그리스도의 죽음의 연결을 강화한다. 침례 요한이 예수를 향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라고 선언했을 때(요1:29), 죽임을 당하는 유월절 어린양을 암시했다. 바울 또한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전5:7)고 선언했다. 또 바울이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엡5:2)고 말할 때 구약의 희생 제사들과 연결하고 있다.
바울은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예수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5:21)라고까지 나아간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세상과 자신을 화해’(고후5:19)시키신 방법이요, 바로 이것이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죄인들과 함께 영원한 관계를 어떻게 이룰 것인지에 대한 딜레마를 해결하시는 방법이다. 즉 하나님께서, 자신의 잘못된 선택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품성에 반대한 자들과 더불어 사랑을 나누어야 하는 딜레마를 해결하신 방법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갈보리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품성이 요구하는 죄의 심판을 낳았다. 예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신 것이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262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