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1-11-22 15:53:15 ]
최근 복음주의 신학자가 논쟁하는 세 가지 견해 즉 죄속론, 승리자 그리스도론, 도덕적 통치론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이번 호는 도덕적 통치론에 대해 알아보자.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다’(롬3:25)는 것은 모든 기독교인이 동의하는 바다. 복음주의자 대부분은 ‘이는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예수를 벌하심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담당해야 할 형벌을 예수께서 담당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용서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의 아들의 피 아래에 있는 우리를 봄으로써 우리 삶에 죄가 있음에도 우리를 거룩하게 여기신다는 것을 믿는다.
속죄(贖罪)를 하나님의 도덕적 통치 수단으로 보는 견해(도덕적 통치 견해)는, 위에서 말한 믿음을 성경적이지 않으며 잠재적으로는 위험하기까지 하다고 생각한다. 믿는 자들이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하나님의 요구를 약화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하나님은 죄인을 살리거나 용서하려는 목적으로 누군가(하나님의 아들)에게 어떠한 판결도 쏟아내지 않으신다. 성경이 한결같이 선언하는 바를 따르면, 하나님은 대가 없이 사랑하시고 용서하신다(마10:8;눅15:11~32). 게다가 예수가 하신 어떤 일 때문에도 사람들이 거룩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실제로 거룩한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 이것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던 주요 이유다. 예수의 속죄 의미는 로마서 3장 25~26절에서 찾을 수 있다. 바울이 말하기를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다.
예수가 죽으신 이유는 ‘하나님이 의로우심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의 사랑 때문에 하나님은 모든 인간이 죄를 짓는 것을 막고자 죄에 대한 자신의 분노를 나타내신 것이다. 다른 말로 말해서, 속죄는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도덕적 통치를 보존하는 수단이었던 것이다. 수많은 성경의 모티브가 이를 지지한다.
첫째, 성경을 관통하는 중심 주제 중 하나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길을 따르는 사람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애쓰신다는 것이다(출19:5~6;대하7:14;마22:36). 하나님은 그분을 경배하고 그분의 거룩함을 반영하는 사람들과 교제하기를 원하는 거룩한 분이시다(출19:6;마5:48;벧전2:9). 구약 맨 처음부터 인간에게 그의 도덕적 원리들을 가르치시고, 그들이 그 원리들을 고수하도록 동기 부여를 하시면서 세상을 다스리시고자 애쓰셨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하나님은 아담에게 순종과 불순종을 선택하게 하셨으며, 불순종의 결과가 어떤 것인지 경고하신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창2:16~17).
이 주제는 구약 전체에 걸쳐 반복한다. 예를 들자면, 주님은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날 너를 명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서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얻을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치 못할 것이니라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신30:15~19).
마찬가지로 신약에서도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표는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는’ 백성을 창조하시는 것이다(엡1:4).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은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선언한다(엡2:10). 비록 많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 앞에서의 거룩함이 그리스도께서 죄를 담당하셨기에 얻은 법적 지위라고 잘못 생각할지라도, 성경은 그의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목적이 실제로 그들이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레11:44~45;벧전1:15~16).
속죄(贖罪)를 하나님의 도덕적 통치 수단으로 보는 이 견해는, 이런 성경의 가르침과 잘 부합한다. 이사야는 우리에게 “여호와께서 자기의 의로우심을 인하여 기쁨으로 그 교훈을 크게 하며 존귀케 하려 하셨다”고 말한다(사42:21).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살았던 방법대로 자신의 거룩함을 인정하게 하고자 이스라엘에게 자신의 교훈을 가르쳤었다.
하나님은 그분이 하신 교훈을 배신했을 때에 가져올 결과를 생생하게 표현하고자 기꺼이 모든 노력을 다하셨다. 같은 방식으로 ‘의로움을 나타내려’ 하나님이 ‘예수를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다’(롬3:25). 하나님은 불순종으로 오는 심각한 결과들을 보여주시며 자신의 도덕적 통치를 세우셨고, 그렇게 사람들이 하나님의 법을 따라 걸어가도록 동기 부여를 하셨다.
속죄에 대한 죄속론(the penal substitution view)의 좋지 않은 결과 중의 하나는 종종 역효과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266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