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곤 목사의 평신도신학<37>] 천년왕국은 언제 어떻게 도래하는가

등록날짜 [ 2011-12-20 17:07:26 ]

전천년설, 후천년설, 무천년설 등 여러 견해로 나뉘어져

모험, 드라마, 액션, 미스터리, 심지어 공포까지. 베스트셀러의 모든 요소를 갖춘 책 한 권이 있다. 바로 요한계시록이다. 성경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에 기록한 극적인 설명들은 무척 감동적이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었을 때, 성경적 아이디어를 생생하게 전하는 요한계시록 저자의 재능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어떤 이는 이 책을 읽고 마지막 때의 긴급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다양한 분야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현재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을 해석하려 시도하기도 하고, 곧 닥칠 미래를 다양하게 예측하기도 한다. 특히 그리스도가 속히 오실 것이며, 그리스도인이 이 땅에서 들림받을 것이며, 그 후 그리스도의 적들과 전쟁이 일어날 것이고, 그리스도와 함께 그의 교회가 다스릴 천년왕국이 진행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어떤 사람들은 요한계시록 저자가 기록한 이야기들이 근거 없다고 말하며 그 책을 읽은 후에 받을 충격을 걱정하기도 한다. 또 어떤 이들은 요한계시록 저자가 미래에 대한 사건들을 그의 책 안에서 일련의 상징적인 연속적 이미지들로 다룬다고도 한다. 사도 요한이 역사(歷史) 마지막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 쓴 것이 아니라 그의 독자들 생애 동안 일어날 일들에 대해 썼다는 것이다.

어쨌든 사도 요한의 책에 접근할 때, 다음과 같은 의문점들이 공통으로 나타난다. 기독교인은 요한계시록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문자적으로 아니면 상징적으로? 요한계시록은 1세기 사건들에 대해 이야기하는가, 아니면 21세기 현재 사건들에 대해 이야기하는가? 천년왕국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그리스도께서는 곧 재림하셔서 이 땅에 천년왕국을 세우실 것인가?

복음주의 신학자들이 논쟁하는 의문점 가운데 몇몇은 일반적으로 마지막 때에 관한 것이고, 특히 요한계시록이라는 책에 관련해 있다. 이런 일반적인 논쟁 한가운데 있는 중심 이슈들은 요한계시록 20장 1~10절에서 언급하는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다스릴 천 년 기간인 천년왕국을 포함하고 있다. 즉 천년왕국의 본질이 무엇이고, 언제 일어날 일인지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천년왕국 논쟁은 일반적으로 마지막 때에 관한 폭넓은 논쟁 중 하나의 이슈일 뿐이다. 마지막 때를 다루는 분야인 종말론보다 더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신학 주제는 없다고 말한다.

현재까지도 이런 문제들에 대해 복잡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복음주의 기독교인이 공통으로 동의하는 몇 가지 사실이 있다. 첫째, 언젠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으로 돌아오신다는 것이다. 이런 사건을 재림(또는 파루시아)이라고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실 때, 결국 그는 모든 악을 완전히 멸하시게 될 것이다. 둘째, 최후의 심판 뒤에는 지금까지 살았던 모든 사람의 육체적 부활이 있으리라는 것이다. 셋째, 믿지 않은 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구별될 것이지만,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영원히 그 나라를 다스리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공통적인 동의들을 볼 때, 복음주의자들이 단순히 묘사적이거나 상상적인 용어로 그리스도의 재림을 해석하고 또 마지막 때를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모든 복음주의자는 예외 없이 그리스도의 재림과 더불어 하나님께서 결정적이고 확실한 방식으로 인간의 역사에 관여하실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대부분 복음주의자가 마지막 때 일어날 사건들의 기본적인 윤곽에 동의할지라도, 세세한 부분으로 들어가 보면 수많은 차이가 드러난다. 천년왕국의 본질에 대한 의문은 교회사 내내 끊임없이 계속되는 논쟁 영역이었다.

초기 교회 처음 몇 세기 동안의 지배적 견해는 오늘날 우리가 전(前)천년설(premillennialism)이라고 부르는 견해의 한 유형이다. 전천년설은 천년왕국이 그리스도의 재림 후에 그리스도가 이 땅을 다스리게 될 문자 그대로 천 년 기간이라고 주장한다. 전천년설에는 적어도 두 가지 다른 중요한 유형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즉 역사적 전천년설(historic premillennialism)과 세대주의적 전천년설(dispensational premillennialism)이다.

5세기 초, 아우구스티누스가 내세운 천년왕국에 관한 새로운 관점이 등장했다. 바로 무(無)천년설(amillennialism)이다. 무천년설은 천년왕국이 문자적 천 년 기간이 아니라 오히려 일반적인 그리스도 통치의 상징이라고 설명한다. 중세시대까지는 이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종교개혁 이후 셋째 견해가 나타났다. 많은 신교도는 평화의 천 년 기간이 올 것이지만(전천년설이 주장하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그보다 앞서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히려 교회가 세상을 복음화하고 변화시킴으로써 평화로운 천년왕국의 도래를 알려주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이런 천년왕국의 절정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견해를 후(後)천년설(postmillennialism)이라고 한다.

오늘날 대다수 복음주의자가 천년왕국에 대해 전천년설 견해를 지지하지만, 다른 두 견해 또한 지지자들이 있다. 이제 우리는 성경을 바탕으로 위에 언급한 견해들에 대해 알아보자.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27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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