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2-01-03 13:35:53 ]
전(前)천년설을 주장하는 모든 이는 문자적인 평화의 천 년 통치가 미래에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에 동의한다. 천 년 통치는 예수께서 육체로 돌아오시고 세상에서 그의 교회를 가져가시는 휴거라고 부르는 사건이 일어난 후에 일어날 것이다. 천년왕국 이전에 휴거가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을 전(前)천년주의자라고 부른다.
무(無)천년주의자는 요한계시록이 묵시록(默示錄)이기 때문에 문자적인 천년왕국이 이 땅에 도래한다는 개념을 부정한다. 모든 이가 인정하듯 요한계시록은 대부분이 묵시적이고, 묵시적인 문학은 거의 상징적이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20장에 사단이 결박을 당하고 주님이 통치할 것이라는 내용을 상징적으로만 해석할 이유는 전혀 없다.
요한계시록에서 언급하는 첫 부활과 둘째 부활의 차이는 전(前)천년주의자에게 대단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견해는 미래에 두 개의 부활이 있다는 믿음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첫 부활은 천 년 동안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게 될 성도(聖徒)의 부활일 것이다. 둘째 부활은 최후의 심판을 받을 때 하는, 다른 모든 자의 부활을 말한다. 이런 차이는 요한계시록 20장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성경 본문이 역시 이 사실을 암시한다.
예를 들면, 누가복음 14장 14절에서 예수께서 ‘의인의 부활’을 언급하신다. 이런 구절은 불의한 자들의 부활이 있으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바울도 빌립보 그리스도인에게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빌3:10~11) 하고 말한다.
바울은 일반적인 부활에 관하여 말하지 않는다. 바울은 구원받지 못하는 죄인들과는 구별되는, 성도들만을 위해 일어나는 부활만을 언급하고 있다. 원어인 헬라어 표현이 이를 입증한다. 왜냐하면, 헬라어 표현을 따르면 바울은 “죽은 자들 가운데로부터 부활을 얻기를 바란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바울은 명백하게 선택적인 첫 부활을 직시하고 있다. 이 부활은 나중에 일어나는 모든 ‘죽은 자’의 일반적 부활에 앞서 일어난다.
두 종류의 부활에 대한 생각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또 다른 구절이 고린도전서 15장이다. 바울은 모든 이가 부활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노릇 하시리니”(고전15:23~35).
바울이 이 구절에서 언급한 차이에 주목하라. 첫째, 그리스도의 부활이 있다. 그러고 나서 그리스도가 돌아오고 ‘그에게 붙은 자’들이 부활한다. 마지막으로 그가 모든 적을 이길 때 ‘나중’이 온다. 이런 바울의 설명은 그의 다른 편지 데살로니가전서와도 들어맞는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4:16~17).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살았든지 죽었든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질’ 것이다. 이것이 ‘생명의 부활’이다. 왜냐하면, 부활한 자들은 주님과 영원히 함께 거할 것이기 때문이다(요5:28~29). 이 부활은 모든 불신자가 일어나게 되고 그들의 행실에 따라 심판을 받는 ‘수욕(羞辱, 부끄럽고 욕됨)의 부활’과는 구별된다(단12:2). 오직 전(前)천년설 견해만이 두 가지 다른 부활을 확신하기 때문에 두 부활에 관한 이런 증거는 전(前)천년설 견해를 지지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돌아오시고 살았거나 죽었거나 그에게 속한 사람들이 들려 올라간 후에 강력한 시련의 시기가 즉각적으로 따를 것이고 이어서 천 년의 ‘안식’이 땅 위에 임하게 될 것이다. 많은 구절이 이 천 년의 안식을 언급한다.
전반적으로 구약은 이 땅 위에 세워지는 하나님의 왕국을 제시한다. ‘인자(The Son of Man)’는 ‘모든 사람과 나라와 족속을’ 다스리는 통치자로서 묘사된다. 실제로 하나님의 성도인 그의 거룩한 권속들과 더불어 인자는 이 땅의 왕과 왕국들을 다스리실 것이다(단7:14,18).
신약 또한 이 땅에서 일어날 그리스도의 미래 통치를 묘사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께서 유대인이 들어가기를 원하신 구약 안식일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을 위해 예비하신 안식일 사이의 직접적인 평행관계를 그려내고 있다(히3:7~4:13). 이런 평행 관계는 지구 위의 ‘교회’를 위한 안식이 유대인을 위한 안식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암시한다.
마찬가지로 예수께서도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요’(마5:5)라고 약속하셨다. 또한 아버지께 하는 기도를 가르쳐 주실 때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6:6)라고 가르치셨다. 이런 구절들을 명확하게 밝히는 것은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이 땅 위에서 이루실 일을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다시 찾을 것이고 사탄을 결박할 것이고 또한 땅 위에 있는 그의 교회로 하여금 그와 함께 이 땅을 다스리게 하실 것이다. 천년왕국은 ‘새 땅’이 세워질 그때가 될 것이다(사65:17~22;벧후3:13;계21:1).
위 글은 교회신문 <272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