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곤 목사의 평신도신학 <44>] 하나님은 어떤 일이 일어날 가능성만 알고 계실까

등록날짜 [ 2012-04-17 13:45:00 ]

무한하신 하나님을 유한한 생각으로 가두려는 시도에 불과

하나님의 예지에 관한 전통적 견해는, 하나님은 자유의지의 결정을 포함해 미래에 일어날 모든 일을 알고 계신다는 것이다. 열린 신학의 견해는 이와 반대로 앞으로 일어날 어떤 일들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고, 그래서 하나님도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알고 계신다는 것이다.

열린 견해는 하나님이 전지하시지만, 전통적 견해가 주장하는 하나님이 알고 계시는 부분에 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과연 열린 신학 견해가 주장하는 것처럼 미래는 부분적으로 열려 있는가, 아니면 영원히, 확정적으로 정해져 있는가?

열린 신학자가, 미래가 영원히 그리고 확정적으로 예정돼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주요한 이유는, 성경에서 이런 견해를 가르친다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미래의 일을 아는 단 한 분은 하나님이시기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미래를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철저하게 살펴보아야만 한다.

열린 신학자들은 하나님께서 때때로 미래의 일을 정해놓으시고 미리 말씀하시기도 한다는 사실에 동의한다(사46:11;48:3~5). 그럼에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또는 현재 상황의 결과에 따라 미래는 부분적으로만 정해져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인간의 역사에 관계하시는 하나님의 중요한 측면이라는 것이다. 정해지지 않은 미래에 관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구절을 우리는 심각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는 일어날지 혹은 일어나지 않을지 모르는 미래 사실에 관해 종종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진실만을 말씀하시기에 이런 사실은 미래가 어느 범위에서는 정해지지 않았다는 확실한 증거라는 것이다.

다시 설명하자면, 하나님은 모세가 이적을 처음이나 두 번째나 아니면 세 번째 나타낸 후에야 이스라엘 지도자가 하나님이 모세를 보냈다는 것을 ‘아마도’ 믿게 될 것이라고 모세에게 말씀하셨다(출3:18~4:9).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가는 짧은 길로 이끌지 않기를 결정하셨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만일 그들이 블레셋과 마주친다면 그들은 애굽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원할지도 모른다고’ 하나님께서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출13:17).

주님께서 미래의 일을 다양한 ‘가능성’으로 다루셨다는 사실도 충분한 예가 된다고 한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께서는 돌 하나 던질 만한 거리에서 기도하셨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마26:39). 어떤 일이든 예정되어 있고 세상 창조 때부터 알려졌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죽임을 당하실 것이라는 사실이다(행2:23;4:28;계13:8). 정말로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이런 진실을 직접 여러 번 가르치셨다(마12:40;16:21;요2:19).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예수께서 ‘만일 할 만하시거든’이라며 아버지의 계획을 바꿔보려고 하시는 것을 발견한다. 이런 기도는 최후의 순간에 다른 일이 일어날 만한, 적어도 이론적인 가능성이 있다는 예수의 확신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물론 이런 예에서는 가능하지 않지만 말이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바꾸는 것을 꺼리시는 다른 순간들이 있다(민23:19;삼상15:29;겔24:14;슥8:14). 이런 사실이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가 하나님의 계획과 가능성 있는 미래의 사건들을 원칙적으로 변경할 수 있고, 이것을 전제한다고 부정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로부터 비록 예수 그리스도 자신은 다른 운명의 길을 걸어갈 수 없었지만, 미래가 부분적으로 열려 있다(확정되어 있지는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미래에 관해 말씀하시는 방식의 다른 측면들은, 미래가 부분적으로 열려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고도 한다. 예를 들면, 하나님은 때때로 미래에 관한 질문을 하시는데, 미사여구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민14:11;왕상22:20;호8:5). 만약 미래가 미리 철저하게 예정되어 있다면, 어떻게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놀라시고 실망하시는 것인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이 결정한 대로 이루어지는 방식을 때때로 후회하신다고 말씀하신다는 것이다(창6:6;삼상15:11,35). 더욱이 하나님은 자신의 뜻과 사람들을 분리하실 때, 사람들에게 느끼신 좌절을 종종 표현하신다.

예를 들면, 하나님은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서 찾다가 얻지 못한고로”(겔22:30)라고 말씀하신다. 그가 확실히 찾지 못하는 것을 순진하게 찾으려 할 수 있을까?

물론 아니다. 열린 신학자들은 하나님께서 중보자를 찾지 못한 사실은 예정된 사실일 수 없다고 결론 내린다. 그리고 하나님에게 예정된 사실이 아니라면 실제로도 예정된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실제를 완전히 아시기 때문이다. 이렇게 열린 신학자들은 미래는 예정된 사실들이 아닌 수많은 가능성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성경의 증거에 관하여 열린 신학자들은 미래의 상당 부분이 미리 예정되었을지라도 어떤 것들은 아니라고 결론을 짓는다. 하나님 홀로 단지 확실성을 가지고 미래의 일을 알고 계실 뿐이라는 것이다. 또 지금까지 보아온 것처럼 하나님은 미래가 부분적으로 열려 있다(예정되지 않았다)고 암시하는 방식으로 미래에 관하여 종종 말씀하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예를 들고 있는 성경 구절들은 하나님을 의인화한 표현으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우리 인간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비유적으로 표현한 구절일 뿐이다. 열린 신학은 그저 유한한 인간이 무한하신 하나님을 유한한 생각으로 이해해보려는 시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열린 신학을 가지고 전통적 견해에 도전한다면,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부인하며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깎아내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오른손’이라는 표현은 성경의 진실성을 보존하려고 의인화한 표현일 뿐이다. 하나님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 이런 방식으로 (속칭) ‘열린 미래’를 해석한다면 정반대의 결론을 내리게 될 수밖에 없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28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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