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주의만큼 수많은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끼친 사상은 드물 것이다. 한때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넘는 사람들이 마르크스주의와 그 추종자인 현대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지배를 받았다. 그들은 이 세계를 혁명으로 난도질하고 광란의 전투상태로 몰아감으로써 수백만 명을 전쟁, 학살, 강제수용소로 끌어가는 처참한 결과를 가져왔다.
1980년 후반 공산주의가 붕괴하면서 마르크스주의의 몰락을 예상했지만 여전히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철저한 무신론자들이다. 마르크스는 “종교는 억압 받는 피조물의 모습을 반영해 주며, 진정한 마음을 잃어버린 세계에 기생하는 마음이며, 정신 부재의 상황 속에서만 존재하는 거짓된 정신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종교란 인민의 아편이다”라고 주장한다.
결국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 신화화된 하나님과 더불어 병약한 종교를 창조했으며, 종교는 군사력과 부르주아 계급과 밀착하여 대중들에게 현세의 지배자들로부터 당하는 부당한 수탈에 대해서 대항하지 못하도록 설득하고 기만하는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마르크스주의의 유물사관에 입각한 무신론적 사상은 기독교를 대항하는 신이 없는 자아 이상주의요, 완전한 대체종교이다. 그들에게 태초의 창조주는 물질 자체이며 우주는 스스로 생겨나서 스스로 작동하는 기계로 마지막 목표 즉 계급 없는 공산사회를 향해 자기 스스로의 내적인 힘에 의해 운영되고 그 힘을 스스로 창출해내며 전진한다고 본다. 그들의 에덴동산은 원시 공산주의 상태이며, 구원이란 프롤레타리아들에 의한 자본주의의 파괴이다.
또한 그들은 인간을 본질적으로 선한 존재로 보기 때문에 회개가 아닌 혁명을 요구한다. 그들에게 ‘죄’라는 것은 자본주의라는 사회구조의 모순에서 발생하는 것이며, 계급투쟁이라는 혁명으로 그 악을 제거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주의의 종말론은 원시공산주의가 회복되고 계급투쟁이 사라지는 때이다.
전 세계에서 무수히 많은 마르크스주의 혁명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계급 없는 사회라는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아직도 놀랄만한 강인한 힘을 가지고 각광을 받는 이유는 본질적으로 종교적인 욕구를 목표로 하면서 인간구원에 대한 열망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이제 마르크스주의는 새로운 형태의 모습으로 세계 곳곳을 장악하고 있다. 고전적인 마르크스주의에 있어 억압받는 자가 프롤레타리아(도시 공장 노동자)였다면 새로운 다문화 이데올로기 사회에서 억압 받는 자는 여자들, 흑인들, 혹은 동성애자들이다. 배역만 바뀌었을 뿐, 그 구성은 아직도 동일하다.
우리 민족은 공산주의의 최대의 피해자이다. 6.25전쟁으로 공산주의의 잔인함을 경험했으며 여전히 일촉즉발의 긴장과 대립으로 반세기를 넘기고 있다. 기존의 세대가 남북간의 긴장구도와 반공사상을 자신들의 정권쟁취와 유지를 위해 정략적으로 사용해왔다는 불신감을 가진 전후세대가 정치의 주축 세력이 되면서 세대 갈등은 보수와 개혁의 대립으로 나타나고 있다. 교회 역시 정치세력에 규합하여 자신들의 교권을 보호하려는 보수 세력이라는 오해를 받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는 공산주의만큼 가장 잔인하게 기독교인들을 핍박한 자가 없었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공산주의라는 속임수에 속아 무참히 짓밟히고 있는 북한 동포들의 인권말살과 가난, 그리고 굶주림속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비참한 공산주의의 결과라고 하는 현실을 생각하면서, 또 다른 형태로 우리 속에 침투하고 있는 마르크스주의를 철저히 경계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북한에 복음이 전해짐으로써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통일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기도해야 할 것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61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