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회] 신앙 안에서의 국가관 정립

등록날짜 [ 2007-06-12 18:13:25 ]

올해로 6.25 발발 57년째를 맞이했습니다. 아직도 남북은 대치상황이며 북 핵문제로 더욱 긴장상태에 놓여있습니다. 이에, 교회신문 ‘영혼의 때를 위하여’에서는 6월호 기획특집으로 ‘신앙안에서 국가관 정립’이라는 주제로 전쟁을 체험한 세대들과 현 젊은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국가관을 정립하는 시간을 마련코자 하였습니다. 6.25 전쟁 당시의 세대와 현 젊은이들간의 견해 차이는 어느 정도인지를 들으며 다시 한번 국가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마련하였습니다. <편집자 주>



- 시 간 : 6월 3일(주일) 저녁
- 장 소 : 교회신문 편집실
- 좌담자 : 신홍식 집사(80세, 6.25당시 공무원, 이하 신), 이종명 안수집사(60세, 국회법사위 근무, 국회의원 기도모임 12년간 주도, 이하 이), 정주영(30세, 신대원생, 이하 정), 유정훈(28세, ROTC 출신 직장인, 이하 유)
- 정 리 : 정재형 편집장


: 저는 사실 6.25 전쟁시 직접 군인으로 참전하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에 공무원들에게 전시요원이라는 대단히 중요한 직책이 주어졌습니다. 제게 해당이 된 일은 군대 현역보다 더 고된 일이었습니다. 식량을 취급한다든가, 영장을 발부한다든가, 노무 동원을 하는 것 등이었습니다.
6.25 발발 이전의 상황을 보면 우리나라는 구한말 때에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 긴 후 자력으로 독립을 얻지 못하고 연합군에 의해 독립이 됐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아무 발언권이 없어서 미소에 의해 분단되고 6.25가 나고 비참함을 당한 것입니다.
해방 전에 일본에 항거하던 지식인들은 대부분이 사회주의에 빠져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어요. 물론 기독교 지식인들은 예외지만요. 그러다보니 해방이 된 후에는 지식인이든 비지식인이든 대부분의 사람들이 덮어놓고 무상몰수 무상분배를 외치면서 사회주의자가 되다시피했습니다. 정작 사회주의자들의 속성이 어떤지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지요. 그러다 미소 강대국에 의해 남북이 갈려졌는데 그 때만 해도 남한에서는 막연히 ‘설마, 이북에서 쳐들어올까’생각했습니다. 당시에 국방경비대라는 것이 있었는데, 당시의 위정자들은 “북진 명령만 나면 하루아침에 이북을 다 없앨 수 있다. 서울에서 아침을 먹고, 점심은 평양에서 먹고, 저녁은 신의주 가서 먹을 수 있다” 그랬어요. 국민들은 우리 국방력이 대단한 줄 알고 그걸 믿었습니다. 막상 북한이 서울로 남침할 때 소련제 탱크로 밀어붙이니까 불과 삼 일만에 서울이 완전히 점령당했습니다. 전쟁 역사상, 수도가 그렇게 허무하게 점령당한 것은 아마 우리나라밖에 없을 겁니다. 그만큼 아무 대책이 없었어요. 대책 없이 침략을 당한 겁니다. 지금도 좌경세력들이 판을 치는 모습을 보면 해방 직후의 그러한 나약한 상태로 되돌아가고 있지 않나 싶어 걱정이 앞섭니다. 6.25를 겪어 본 사람들은 공산주의자들이 얼마나 기만적이며 잔인한 사람들인지 압니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그런 것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 지금 우리 사회는 좌경화 세력이 상당히 팽배하고 공산주의에 대한 경계심이 많이 없어졌습니다. 우리가 공산주의에 대해서 정확히 몰라요. 왜 그러냐면 그런 교육을 안 받고 안 시키기 때문이죠. 막연히 우리 동포, 우리 민족만 강조하고 절대 타협할 수 없는 사상과 이념에 대해서는 아무도 가르치려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가장 큰 위기예요.
저는 국회에서 30년을 근무하다 보니 국가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법이라는 것은 국가가 뭘 하겠다고 하는 의지의 표명이기 때문에 입법 예고 상황만 봐도 한 눈에 알 수 있습니다. 요즘 기독교가 참으로 많은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사학법 개정인데, 사학의 대부분이 기독교 계열입니다. 사학법 개정의 목적이 사학의 비리를 막고자 하는 것인데 실상 비리가 있는 곳은 전체 2.8%에 지나지 않아요. 그것을 내세워서 사학법을 개정했습니다. 사학을 세우는 것은 설립자의 건학 이념을 가르치기 위해서입니다. 과거 선교사들이 병원, 학교 세우면서 기독교의 정신을 심어주었는데 이제 이런 것을 못하도록 기독교 학교를 문 닫게 하겠다는 겁니다.
국력을 약화시키는 최고의 적이 뭐냐면 바로 정신입니다. 정신이 정복되면 다 지는 겁니다. 마음이 정복되면 다 정복 되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 우리의 정신속에 국가관이 없어지고 있어요. 이것이 가장 큰 위기상황이 아니겠습니까.

- 신홍식 “학교 교육이 무너지면 가정에서라도 가르쳐야”
- 이종명 “우리 마음에 국가관 없는 것 그것이 위기상황”
- 유정훈 “취직 문제만 생각, 국가관 정립 관심 없었다 ”
- 정주영 “알고 싶어도 말해 주는 이 없어 그 동안 답답”


: 저는 지난 해까지 장교였습니다. 병사들 간부이다 보니 정신 교육을 담당하게 되는데, 저도 젊은 세대이긴 하지만 특히나 요즘 청년들은 너무도 현실적이고,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려는 성향이 있어요. 군대에서도 ‘군대에서의 적은 북한이 아니라 간부’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북한에 대한 적개심이 없어지고, 나를 지금 힘들게 만드는 사람만 밉지 눈에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는 적은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는 겁니다. 병사들에게 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 사람 손들어 보라고 하면 거의 들지 않습니다. 또 전쟁이 나면 정말 전장에서 싸우겠냐고 하면 군인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싸우겠다고 하지 민간인이면 대부분 이민가겠다고 하더군요.

: 저도 전쟁이 날 것 같다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왠지 불안한 마음은 있습니다. 돌아가는 상황들을 언론을 통해 접하다 보면 뭔가 편하지 않은 마음이 있어요. 언론을 통해 국가에서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미군이 철수를 해도 국가 방위력에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뭔가 불안한 마음은 있습니다. 그러나 당장 저희들 실생활에 별 영향을 못끼치니까 미군 철수든, 북한의 도발이든 그런 것들이 뉴스에 나와도 그러려니 합니다. 학교에 가서 보면 취업 문제 때문에 나라의 돌아가는 것에 신경 쓸 겨를이 별로 없어요. 전쟁이 난다 안 난다하는 말보다는 차라리 안 난다고 믿어버리고 겉으로 보여지는 자기의 진로나 취업에 온 신경을 다 쓰고 있습니다.

: 저 개인적으로 공산주의를 이길 수 있는 것은 기독교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인들만이라도 하나가 되어서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겁니다. 6.25 때는 종교인이고 공무원이고 학생이고 농민이고 구별이 없었습니다. 어쨌든 나라를 지켜야한다는 일념 그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교육제도가 바뀌어졌는지 학교에서도 그러한 교육을 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 전에는 초등학교 때부터 여러 가지 국가관이라든가 반공 교육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점점 그런 것이 없어져 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이런 교육을 학교에서 받지 않는다면 가정에서라도 받게 해야 합니다. 국가관을 갖춰서 자기 나라 자기가 지켜야지 누가 지킵니까? 앞으로 전쟁나면 6.25와 같이 UN군들 안 옵니다. 죽든지 살든지 우리가 해야지 지킬 사람이 따로 없습니다.
배운 사람들은 스스로 느껴야 합니다. 구한말에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기에 36년 동안 식민지살이를 했으며 해방을 우리 힘으로 이루지 못했기에 6.25의 참상을 당하였으니 우리는 선대들이 잘못했다는 원망을 후세에 절대로 남기지 말아야 합니다.

: 제일 중요한 것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지도자를 위해서 기도하는 겁니다. 그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목사님과 한국, 세계 교계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성도들은 각각 섬기는 교회의 목사님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은혜 받을 수 있고 바른 길을 갈 수 있습니다. 나라와 민족과 정부에 하나님의 개입이 많아질수록 가정이 살고, 직장이 살고, 사업장이 살고, 학교가 삽니다. 오직 말씀과 성령으로서 하나 되는 것, 그것이 이 나라를 살리는 것이고 가정을 살리고 직장을 살리는 길이라고 확실히 믿습니다.

: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한다고는 했지만, 사실 본의 아니게 잘못된 생각으로 비판도 많이 한 것 같습니다. 현실적으로 제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다는 것을 오늘 알게 되면서 국가와 나라의 미래를 위해 늘 깨어있는 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대학원을 졸업하고 신학교에 입학하면서 1년이란 기간동안 오늘과 같은 국가관에 대해 까맣게 잊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오늘 여러 가지 말씀들을 들으면서 구체적으로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아울러 젊은 사람들이 모르는 이야기들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이와 같은 자리를 사적이든 공적이든 자주 마련해서 현재의 상황에 대해 자주 듣는 시간을 마련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112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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