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0-02-22 16:13:20 ]
초신자가 교회의 일원이 될 때까지 동질감 심어줘야
‘전도’의 정의를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교회로 데려오는 것을 전도라 말하기도 하고, 새신자가 교회에 정착하여 교회의 한가족이 될 때 전도가 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교회에 왔다가 정작 정착하지 못하고, 다시 세상으로 되돌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전도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전도는 한 명의 초신자가 교회의 확실한 멤버로 인정될 때에야 비로소 완성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의 성도는 초신자를 붙들어주고 섬겨야 한다. 불신자를 교회에 데려오면서 불신자 스스로 믿음이 성장하거나 목회자가 책임지는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양육보다 동질감이 우선
새신자가 교회에 등록한 것으로 교회에 정착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또한 교회에 정착 못 하는 것을 개인의 문제로 생각하는 것도 잘못이다. 초신자는 교회에서 몸의 지체로 분명하게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정착이 되어야 동질감이 느껴지고 비로소 양육이 시작된다. 정착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양육만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영혼을 사랑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다면 낳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르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기르기 위해서는 가족이라는 동질감을 심어줘야 한다. 불신자, 초신자가 복음을 듣고 교회에 출석하면서 ‘이곳은 내가 다닐 교회이다. 내가 섬기는 교회이다’라는 애착을 둘 때 비로소 정착이라고 말할 수 있다.
며느리가 시아버지, 시어머니를 자신의 친부처럼 대할 때 그 집의 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교회의 일원이 될 때까지
대부분 현대인은 자존감을 중요하게 여긴다. 교회에 처음 발을 디딘 초신자에게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 인간을 위해 목숨을 내놓았다는 사실을 정확히 인식시켜준다면 스스로 자신에게 큰 자존감을 심어줄 수 있을 것이다.
이 자존감을 높여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섬김이며, 이러한 섬김이 바로 전도자가 갖춰야 할 기본자세인 것이다. 성경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단어 중의 하나도 바로 섬김이다. 섬김이라 하면,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 정도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예수님께서 인류의 모든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는 사실 자체가 바로 섬김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바울이 수차례 전도여행을 하며 각 지역의 교회를 돌본 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하는 섬김이며, 우리가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해 시간과 물질을 내놓는 것도 모두 섬김에 속하는 예라 하겠다. 교회의 한 일원으로서 동질감을 심어주기 위해 이와 같이 섬겨줄 때에 초신자의 정착이 더욱 빨리 이뤄질 것이다.
예수님은 인류를 섬기기 위해 자기의 목숨을 버리셨다. 그리고 그 사랑을 받은 우리도 예수님처럼 우리의 목숨을 이웃 사랑에 실천해야 한다. 한 명의 초신자가 장성한 그리스도의 일군으로 성장할 때까지 그를 끝까지 섬기며 돌보는 자세를 갖춰야 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3:16)
위 글은 교회신문 <181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