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0-03-23 07:24:09 ]
조옥형 권사
1987년도에 교문리에서 버스를 두 번씩이나 갈아타고 2시간 걸려 연희동 지하 성전을 찾아 눈물로 은혜 받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23년이 흘렀다.
그 당시에는 한 달에 한 번씩 부흥성회가 있었는데 한겨울에는 부흥회 포스터를 붙이기 위해 여전도회에서 풀을 쑤고 청년들은 교회 인근에서 삼각산 근처까지 시린 손을 ‘호호’ 불어가며 언 풀로 포스터를 붙였다.
그뿐인가. 여름엔 교회가 좁고 더워서 중식인 삶은 국수를 들고 남의 집 처마 밑이나 도로가, 또는 풀밭에서 먹기도 했으며, 기도원을 빌려 사모세미나를 할 때는 마당에서 설거지하는 동안 소나기가 와서 비를 맞기도 했다. 쉽지 않은 이런 일들을 불평 없이 너무나 기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말씀에 충만한 은혜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60세가 넘은 1997년도에 연합여전도회장을 맡아 5년 가량 연임했다. 성회 기간엔 3박 4일 동안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서니 동네 사람들이 “저 노인네가 지방에 직장을 얻었나?”라는 말도 들었던 기억이 새롭다. 올해 74살이 되기까지 구역장으로 기관장으로 매년 써주시는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드린다.
그동안 몇 번의 성전건축을 통해 쓰임받아 왔고, 이번 선교센터 짓는 일에도 하나님께서 성전건축의 감동을 부어주셨다. 하나님의 귀한 일에 나이 든 나도 써주시니 감사뿐이다. 나의 생애, 나의 눈물과 피와 땀이 서린 교회, 너무나도 사랑하는 이 교회에서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 순간까지 순종하며 충성하며 섬기기를 원한다.
장갑선 권사
1991년 3월 무렵부터 매일 밤이면 자석처럼 끌려 연세중앙교회 매일철야설교에 은혜 받았다. 진실한 찬양과 능력의 말씀은 언제나 나를 기쁨과 감사로 행복하게 만들었다.
노량진 성전을 구입할 당시 우리 교회는 계약금만 치른 상태로 성전을 인수받아 교회를 옮겨왔지만 잔금 지불까지는 넘어야할 산이 높기만 했다. 당시 많은 성도가 자신의 집을 주께 드리기도 하고, 전세금을 낮추어 그 차액을 드리기도 했으며 결혼자금을 드리는 등 성전 봉헌을 향한 사모함이 뜨거웠다. 그렇게 1994년에 드렸던 성전봉헌예배의 가슴 벅찬 감동이 기억에 남는다.
1994년에 연합여전도회장을 하던 당시, 목사님의 건강 악화로 도무지 성회를 이끌어 갈 수가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하지만 목사님은 연약한 육체를 주님께 맡기고 성회를 감행하셨고 전 충성자는 밤마다 기도원 소성전에 모여 목사님께서 설교하시는 시간 내내 강건하시도록과 성회의 성공을 위하여 부르짖어 기도했다. 성회를 마쳤을 때는 놀랍게도 목사님의 건강도 회복되어 있었다.
20년간 담임목사님의 목회 현장을 지켜보면서 느끼고 경험한 수없이 많은 체험들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면서 한없는 눈물이 쏟아진다. 목사님 사모님은 자신의 육신을 쳐서 끊임없이 기도하며 먼저 교인들의 본이 되어 주셨다. 강단을 통해 선포된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는 우리 교회를 나는 사랑한다.
김외현 권사
1995년 무렵 흰돌산수양관에서 ‘마지막 때를 대비하라’는 설교 말씀에 은혜를 받아 삶의 가치관과 우선순위가 바뀌면서 오직 영혼의 때를 위하여 앞만 바라보고 달려왔다.
집에서 교회까지 몇 번씩 차를 갈아타야 했던 노량진 성전 시절, 예배부수를 늘여도 자리가 없어 돌아가는 성도들로 교회에서는 새 성전 건축 부지를 놓고 두 달간의 작정기도에 들어갔다. 정말 사모함으로 뜨겁게 간구하던 우리 성도들의 그 기도하는 모습을 나는 도저히 잊을 수가 없다. 그 후 성전 부지가 확정되어 발표되었을 때 우리 부부는 금요철야 후에 사모함과 설렘으로 궁동 새 성전 주변을 밤새 돌고 또 돌면서 감격해 했다. 내 인생 가장 전성기에 열정적으로 충성하며 눈물로 기도하게 하신 주님께 너무나도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2005년 5월 5일 대성전을 하나님께 봉헌하던 날, 그 벅찬 감동과 감격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부족한 자에게 연합여전도회장의 직분까지 주신 주님의 은혜에 정말로 감사했다.
뜨거운 눈물의 기도와 사랑과 충성이 있는 곳, 그 곳에 나의 귀한 시간들이 어우러져 지금의 나와 우리 가정을 있게 한 우리 교회를 내가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는 말씀처럼, 가장 소중한 진리가 있고 영적 삶의 터전이 있는 우리 교회를 나는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한 영혼이라도 더 살리려는 주님의 심정을 가지고 개척해서 지금까지 무릎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생명과 능력이 넘치는 목회로 세상에 빛을 발하는 우리 교회가 앞으로 더 부흥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조연옥 권사
지방에서 신앙생활을 하며 흰돌산수양관 동계성회에 은혜 받으러 다니면서부터 우리 교회와 인연을 맺게 됐다. 그 때만 해도 개인적이지만 서울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에 내가 연세중앙교회에 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러다가 1999년 남편의 직장문제로 이사하면서 자연스럽게 연세중앙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게 했다.
막상 교회에 와서 몸담고 충성을 하고 보니 주님 심정으로 영혼을 뜨겁게 사랑하며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목회하시는 목사님 사모님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정말 열심을 다해 신앙생활 하는 이들이 많았다.
구령의 열정을 가지고 전도하는 성도, 직장에 다니면서도 한 시간이라도 충성하기 위해 전철을 타고 수양관에 오는 성도, 휴가를 내고 와서 충성을 하는 성도, 감사할 수 없는 조건에서도 감사하는 성도, 교회 이곳저곳에서 뜨겁게 부르짖어 기도하는 성도들. 이들이 바로 연세중앙교회의 보배가 아닐까.
주님은 참으로 작고 연약한 나를 연합여전도회에서 10여 년간 주의 일을 위해 써 주시고 또 연합여전도회장이라는 귀한 직분까지 주셔서 영혼의 때를 위하여 맘껏 충성할 수 있는 환경도 열어주셨다. 그리고 성전 건축과 매년 열리는 동.하계성회 시 크고 작은 일로 충성할 수 있도록 힘주시고, 우리 가족을 각자의 위치에서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써 주시니 그저 감사할 뿐이다. 이렇게 나와 우리 가족의 생애가 묻어있는 우리 교회를 나는 너무나 사랑한다.
위 글은 교회신문 <185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