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0-05-10 13:51:41 ]
단어 하나하나에 부여된 말의 능력과 작용 깨달아
따뜻한 언어 사용으로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나가자
몇 년 전, 에모토 마사루 씨가 쓴 책 『물은 답을 알고 있다』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긍정적인 말과 부정적인 말을 각각 들려준 뒤, 물의 결정 사진을 비교해 본 것이다. 그 결과, 긍정적인 말을 했을 때는 물의 결정이 아주 아름답게 바뀌어 있는 반면 부정적인 말을 했을 때는 오염된 물처럼 모양이 일그러져 있었다. 특히나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을 때의 결정체는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사랑, 감사 등 좋은 말에 대해서는 물이 아름다운 모양의 결정체를 이룬 반면 악마 등 나쁜 말에 대해서는 흉한 모양의 결정체를 이뤘다. 기도하기 전과 후의 물의 결정체 모양이 다르다는 것도 실험의 예로 나온다.
우리 몸은 70%가 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물이 어떤 존재로 남아 있는가는 그래서 더욱 몸을 지탱하고 유지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우리가 가진 감사의 마음은 그 순간만 반짝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과 내 주변에 모든 영향을 미친다. 물의 결정이 바뀌고, 뇌파가 건강하게 바뀌었듯이 사물을 바꿀 수 있는 놀라운 힘이 거기 숨어 있는 것이다.
신체는 말에 민감하다
존 다이아몬드 박사는 물질적인 자극뿐만 아니라 감정적이고 지적인 자극에도 근육이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을 오랜 실험으로 증명했다. “좋다”는 말에는 근육이 강화되고 “짜증나”라는 말에는 근육의 힘이 떨어졌다.
다이아몬드 박사는 “부정적인 자극이나 메시지를 계속해서 접하면 두뇌에서 미세한 인식의 차이가 발생하여 신체의 신호가 나쁘게 바뀐다. 이렇게 바뀌면 어린아이들은 학습능력이 떨어지고 행동이 경망스러워지며 성격이 차분하지 못하고 들떠있게 된다. 어른들은 작업능률이 떨어지고 실수가 잦고, 의사결정 능력이 떨어지는 등 원인 불명의 무기력증이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은 연구는 여러 사람에 의해 증명되고 있다. 저명한 정신과 의사인 데이비스 호킨스 박사는 우리들의 의식적인 마음이 알지 못하는 때조차도 육체는 정확한 반응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수치로 측정하는 방법을 창안하여 『의식혁명』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오무라 요시야키 박사는 오링테스트(O-Ring Test)를 개발하였다. 오링테스트는 손가락으로 둥근 링 모양을 만들어 몸에 긍정적인 자극이 오면 손가락의 힘이 강화되고, 부정적인 자극이 오면 힘이 약화된 손가락이 쉽게 벌려진다는 것이다.
서울대 이명복 교수에 따르면 우리의 신체는 수없이 많은 센서가 작동하는 첨단 시스템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물질적,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 부정적인 자극에 노출되면 근육이 빈약하게 되고, 긍정적인 자극에는 근육이 강철로 변한다.
지난해 MBC에서는 한글날 특집으로 ‘말의 힘’이라는 실험 다큐멘터리를 방영한 바 있다.
<그림2> 4주 동안 한쪽 병에는 ‘고맙습니다’와 같은 긍정적인 말을 계속 들려주고, 다른 병에는 ‘짜증나’와 같은 부정적인 말을 계속 들려줬다.
두 개의 유리병 안에 밥을 넣은 후, 4주 동안 실험관찰하되, <그림2>와 같이 한쪽 유리병에는 긍정적이고 좋은 말을 계속 들려주고, 다른 유리병에는 부정적이고 나쁜 말을 계속 들려주는 걸 반복했다. 실험 결과 긍정적인 말을 들려준 용기는 <그림3>과 같이 바뀌었고, 부정적이고 나쁜 말을 들려준 용기는 <그림4>와 같이 바뀌었다.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따뜻한 언어
성경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도 말씀으로 창조하셨다. 창세기 1장에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시면 빛이 생겼고 낮과 밤이라 부르셨다. 또한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실 때 자신의 형상대로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즉 우리 인간들의 말에도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음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그 입을 통해 욕을 하거나 상대방을 저주하는 데 사용하기도 한다.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가.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살인자가 되어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성경은 미워하는 것도 살인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요일3:15)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어떠한가. 미움과 절망의 폭력적인 언어로 타인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는 않았는가. 사람을 죽이는 말이 아니라 살리는 말을 하는 것, 그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조금만 더 공감하고 경청하며 한 발자국만 더 상대를 배려하는 언어를 사용할 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더욱 평화로워질 것이다. 우리는 과연 친구를 얻고 있는가 아니면 잃고 있는가.
그것이 가정이든, 친구관계이든, 분쟁 가운데 극한 상황에서든, 한 걸음 물러서서 내가 사용하는 언어를 뒤돌아보자. 따뜻한 사랑의 언어, 공감의 언어는 마치 따사로운 햇살처럼 꽁꽁 언 우리의 마음을 녹여낼 것이다. 언어가 존재의 집이라고 하는 것처럼, 우리가 사용하는 사랑과 믿음의 따뜻한 언어는 어느새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을 아름답게 만들어놓을 것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192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