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신자 Q & A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악인을 그대로 두나요?
죄인 된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극진한 사랑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지으시고 천지 만물을 주시면서 인간이 이 세상을 다스리길 바라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마귀에게 속아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죄의 도구로 타락했습니다. 하지만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만물을 소유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하신 그 말씀을 번복하지 않으시고 죄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자원을 아무 조건 없이 사용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어떻게든 그것을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서로 싸우며 살아갑니다.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당하는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당장 심판하지 않으시는 이유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딤전 2:4).
하나님께서는 죄인 된 인간을 위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어 인간의 죗값을 대신 치르셨고 성령을 보내시어 구원의 소식을 전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인간을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왜냐하면 죄의 작자는 인간이 아니라 마귀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마귀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영원한 형벌을 받았기에 인간을 악착같이 자기와 같이 멸망시키려 합니다.
인간이 마귀에게 속았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 회개입니다. 이 기회가 영원히 있는 것이 아니라 육신이 사는 동안에만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하셨으니 핑계치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롬1:20). 하나님을 모르고 사는 죄,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으려는 고집스러운 마음이 가장 큰 죄입니다.
소리 지르며 기도하는 모습에 거부감이 느껴집니다
불가능을 해결하려는 간절함으로 이해하길
큰 소리로 부르짖는 통성기도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종교에 대한 선입관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은 거룩하려면 조용해야 하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조용한 것이 엄숙하고 거룩한 것이며, 시끄러운 것은 경박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조용히 마음으로 하는 묵상기도만 기도인 줄 오해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조용히 드리는 기도도 있지만 통곡하며 울부짖는 기도도 있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누군가에게 눈물을 흘리며 간곡하게 애걸복걸해야 하는 경우를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특히 이런 상황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이 세상 그 어떤 것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불가능이 내게 닥쳐왔다면 과연 그렇게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요? 그 일을 해결해 줄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든 붙들고 매달릴 것입니다. 기도를 간절히 하는 사람은 그만큼 하나님이 해결해 주어야 할 절박한 상황에 부닥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살아계신 분으로 믿고, 모든 말씀이 오늘날에도 유효한 약속이라고 믿는 자가 하는 기도는 절대 조용히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진실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는 기도도 진실할 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그 진실의 표현이 눈물과 통곡일 때도 있고 부르짖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성경은 기도하는 자에게 부르짖으라고 말합니다. 상한 심령을 내놓으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막연히 종교적 대상으로 인식하면 절대 그렇게 기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나를 만나주시는 인격적인 분으로 인식하기에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왜 기독교는 술과 담배를 못하게 합니까?
성령을 내 안에 모시면 완전히 끊을 수 있어
기독교인 중에도 성경에 술 마시지 말고 담배피우지 말라는 내용이 어디 있느냐고 따져 묻는 분이 종종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 몸은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는 거룩한 성전이라고 말씀합니다(고전3:16-17).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되었기에 술로 간을 손상하고 담배연기로 폐를 가득 채우는 일은 옳지 않습니다.
구한 말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금해야 할 것 6가지를 말했습니다. 술, 담배, 양반제도, 노름, 기생, 게으름입니다. 선교사들의 이런 가르침 덕분에 초대 한국 기독교인들의 삶은 항상 정결한 것으로 정평이 났습니다. 초대 한국교회의 폭발적인 부흥도 이런 거룩한 삶이 바탕이 된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그 영향을 받아 우리나라에서 예수 믿는 성도가 세상 사람들과 가장 뚜렷이 구별되는 것이 음주, 흡연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술과 담배의 문제를 율법적인 문제로만 다루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성도가 되었다는 표시, 즉 세상 사람과 거룩히 구별되었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는 차원에서 음주와 흡연을 삼가야 합니다. 사회생활 하는 사람들에게 이 문제가 쉬운 일은 아닙니다. 온갖 비아냥거림과 압박은 물론 왕따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오히려 경건함을 지키려는 우리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대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음주와 흡연을 끊지 못하면 교회에 갈 수 없다고 오해하지 마십시오. 먼저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하나님께 의지하십시오. 내 의지로는 끊기 어렵지만 성령으로 거듭나 하나님을 내 안에 모시면 끊을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교단이 많은데 하나가 되지 못한 이유가 뭐죠?
동일한 복음은 여전히 변함없어 분열 아닌 다양성으로 이해해야
우선 교단이 많다고 해서 모두가 각기 다른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기독교 교단이 공통으로 공유하는 신앙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것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인간의 행위로는 구원받을 수 없고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둘째, 구원은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은혜다. 셋째, 구원을 받는 데 필요한 존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다. 넷째, 성경은 하나님 말씀으로서 최고 권위를 가진다. 다섯째,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 드린다.
교파가 갈리는 것은 이 같은 핵심 신앙에서 세부적인 면에 서로 이견이 있기에 그렇습니다. 똑같이 예수를 믿는 크리스천이라 할지라도 말씀을 받아들이는 방식이나 믿음의 형태가 다양합니다. 마치 한 부모에게서 나온 자식인데도 성격이 다 다른 것처럼 말입니다.
오히려 획일적으로 하나로 통일한다는 것이 더 억지요, 모순입니다. 기독교는 자발적이고 인격적인 신앙 고백으로 구원을 받기에 신앙을 강권(强勸)할 수는 있지만 누구도 억지로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또 믿는 자라 할지라도 어떤 형태든 획일적인 신앙 형태를 요구할 수 없습니다. 성경을 기준으로 하여 자유롭게 자신의 신앙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개신교 교단 문제는 분열이 아닌 다양성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만큼 살아 있다는 증거요, 건강하다는 증거입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214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