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0-12-22 13:30:16 ]
인류의 죄 위해 피 흘린 예수는 간데없고
가상인물 산타만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지금부터라도 바른 의미 세상에 전해야
연말이 되면 어디서나 들뜨기 마련이다. 한 해가 마무리되기 전에 의미 있고 기억에 남을 일(?)을 위해 사람들은 각종 이벤트와 모임을 한다. 그 중심에 휴일인 성탄절이 있고, 사람들은 이 성탄절을 경건하게 한 해를 돌아보는 시간으로 생각지 않고 육신의 즐거움을 누리는 타락의 시간으로 삼는다.
성탄절은 거의 모든 인류가 공통으로 휴일로 정하여 예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날은 사랑과 용서로 전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의 탄생일이며, 이를 기념하여 한 해 동안 불목한 이웃과는 화해하고, 어려운 이웃은 따뜻한 사랑으로 돌보는 날로 여겼다. 하지만 예수 탄생 2000년이 지난 오늘날은, 숭고하고 거룩한 예수의 사랑을 오해하여 성탄절을 어떠한 죄도 용서받을 것 같은 방종의 날로 여기고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가짜를 용납해서는 안 돼
성탄절은 말 그대로 거룩한 탄생을 기념하는 날인데도, 오늘날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만 생각하는 인본주의로 완전히 퇴색해 버렸다. 또 성탄의 주인공인 예수는 간데없고 가짜 주인공만 판을 치고 있다.
실제로 예수님이 성탄하신 날이 가까워지는 때면 어김없이 자신이 성탄절의 주인공이라고 타의에 의하여 등장하는 이가 산타클로스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믿는 자든 믿지 않는 자든, 진짜 성탄절의 주인공이신 예수님 대신에 코카콜라 광고 전속 모델이자, 본의 아니게 성탄절 가짜 주인공이 된 소아시아 파타라시 출신의 세인트 니콜라스, 즉 산타클로스에게만 관심을 쏟고 있다. 이 있지도 않은 가상의 인물은 각종 영화에서부터 수많은 매체를 통해 예수의 고난과는 아무 상관 없이 성탄의 주인공으로 떡하니 버티고 있다.
영화에서나 드라마에서 흔히 보듯, 주인공이 아닌 자가 주인공인 것처럼 행세한다면, 그 역할은 어찌 되었건 십중팔구는 나쁜 캐릭터다. 영화 관객들은 대부분 그런 캐릭터를 주인공보다 더 대접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에서 성탄절이 가까워지면, 온통 아이들은 성탄절의 가짜 주인공인 산타에만 열광하고 환호성을 한다.
크리스마스 이브부터 각종 술집과 환락가는 온갖 퇴폐문화를 조성하며 타락을 부추기고, 어린이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예수의 사랑은 뒤로 한 채 각종 선물과 이벤트로 서로 관심과 사랑을 측정하는 어리석은 일을 저지르고 있다.
교회 안의 잘못된 성탄 문화
더욱 안타까운 것은 교계에서도 이러한 산타를 용납하고 묵인한다는 사실이다. 대부분 교회에서 성탄절 전날에는 전야행사만 치르고 예배는 드리지 않는다. 이 전야행사가 끝나고 흔히 젊은 청년들은 성탄절 이브에 교회 안에 모여 밤을 새워가며 온갖 게임을 하고, 새벽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간다. 정작 성탄절 당일 아침에는 예배에 참석하기도 어렵다. 여기에 날 위해 죽으려고 성탄하신 예수에 대한 진실한 경배와 감사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또 성탄의 목적을 확실하고 분명하게 알고 오늘날의 현실을 가슴 아파하는 기독교인은 과연 몇 퍼센트나 될까.
산타를 이용한 상업성 이벤트는 해가 갈수록 발달하고 새로워지는데, 예수를 위한 성탄 이벤트는 그저 예배 한 번 드리는 것으로 그친다. 그것도 지극히 형식적인 예배일 뿐이다.
이제부터라도 모든 교회가 힘을 합해 예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산타의 자리를 과감히 몰아내고 올바른 성탄의 의미를 전파해야 할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교계는 모두 하나가 되어 성탄절을 타락의 기회로 삼는 수많은 사람에게 바른 성탄의 의미를 전해야 할 것이다. 성탄의 주인공은 누가 뭐라 해도 ‘예수’다. 그것도 순진하고 어리고 어린 ‘아기 예수’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 고의적으로 피 흘리기로 작정한 ‘고난의 예수’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성탄절 바른 의미 바른 생활
성탄절 예배는 내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으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드리는 감사의 예배요, 눈물로 얼룩진 감사와 회개의 절정의 예배가 되어야 한다. 이 성탄의 감동을 가슴에 품고, 우는 사자같이 덮쳐오는 세상의 성탄 풍습에 생각과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자, 성도들은 교회에서 같은 취지로 마련해 놓은 일정에 참여함으로써 거룩한 성탄절을 보낸다.
교회는 예수께서 주신 능력으로, 세상 문화의 독소로 마비된 사람들의 양심을 해독할 다양한 소재의 문화행사를 개발할 책임이 있다. 그리고 성탄하신 예수에 대한 감사의 행사뿐만 아니라, 이웃과 함께하는 행사들을 일 년 중 시시때때로 기획함으로써, 성탄절을 볼모로 바싹 기승을 부리는 상업주의와 박애주의에 맞서야 한다. 돌아오는 성탄절은 불신자 이웃과 친지에게 선물 하나 건네며, 함께 교회로 인도하여 거기서 가슴 깊은 회개와 영생의 선물을 건네주는 참된 신앙인의 생활을 영위하자.
위 글은 교회신문 <222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