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교회 역사 이야기 <26>] 죄인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의’가 넘치다

등록날짜 [ 2011-11-15 14:53:37 ]

마르틴 루터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깨달은 후
‘95개 반박문’을 시작으로 종교개혁에 불붙이다

벼락 맞은 변호사
어느 여름날, 변호사 한 사람이 터벅터벅 시골길을 걷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소나기를 퍼부었고, 곧 천둥과 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나그네는 별안간 강력한 벼락에 맞아 바닥에 쓰러졌다. 그는 일어나려고 애쓰며 “주여, 저를 구해주시면 수도사가 되겠나이다” 하고 신음했다.

그 변호사는 자기가 한 약속대로 수도사가 되었지만, 수도원에 있을 때나 그렇지 않을 때나 늘 죄책감에 시달렸다. 끊을 수 없는 죄의 결박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자신을 따라다니는 것처럼 느꼈다. 그때가 1505년이었으며 그 변호사의 이름은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였다.

1511년경, 마르틴 루터는 자신의 죄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깊이 깨닫고 고해실에 들어가 6시간 동안 참회했다. 그러나 죄책감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 그는 흐느끼며 “너는 하나님을 사랑하느냐?” 하고 자신에게 물었지만 “나는 하나님을 미워한다”는 대답만 들렸다.

마르틴 루터를 끈덕지게 괴롭혀온 질문이 한 가지 있었다. 그것은 ‘어떻게 의롭지 못한 인간이 의로우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었다. 루터는 해답을 찾기 위해 성경을 탐독했지만, 오히려 ‘하나님의 의’라는 말씀을 대할 때마다 극심한 고통을 느꼈다.

수도원장은 그를 비텐베르크대학으로 보내 공부하게 했다. 하지만 아무리 공부에 집중해보아도 마음속으로 느껴지는 격동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루터는 에라스뮈스의 그리스어 신약 성경에서 마침내 그 해답을 찾았다. 바울의 서신을 읽던 중 ‘의(義)’라는 단어가 ‘의로운 상태’를 뜻할 뿐 아니라, ‘누군가를 의롭다고 선언하는 행위’를 의미하기도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하나님은 의로운 분일 뿐 아니라 죄인들에게 의를 주실 수 있는 분이시다! 이 의(義)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신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마르틴 루터는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1:17)라는 말씀에 주목했다. 그러자 그가 그토록 오래 찾아 헤맸던 말로 다할 수 없는 평화가 찾아왔다.

1517년, 마르틴 루터가 진리 안에서 얻은 평화는 그 진리를 향한 폭발적인 열정으로 변했다. 그 폭발에 방아쇠를 당긴 사람이 도미니크파의 수도사 테첼(Tetzel)이었다.

면죄부 문제에 관한 논제 95개
훗날 루터는 독일 마인츠 지방 근처에 있는 작은 마을의 목회자가 되었다. 앨버트는 마인츠 대주교이자 그곳을 통치하는 제후였다.

그때 교황 레오 10세는 베드로 성당 건축을 완공하기 위한 현금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는 마인츠 제후였던 앨버트와 거래했다. 마인츠 지방에서 면죄부를 팔게 허락할 테니 그 이익금을 절반씩 나누자는 것이었다.
앨버트가 수족처럼 부리는 심복 가운데 테첼이라는 수도사가 있었다. 그는 돈 궤짝에 땡그랑하고 동전이 떨어질 때마다 “그대의 영혼이 연옥에서 천국으로 올라갈 것이로다!” 하고 선언했다.

마르틴 루터는 테첼이 교회의 권세를 남용하는 데 격노했다. 그는 그 면죄부 행상인과 담판을 지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그들과 논쟁을 벌일 논제 95가지(마르틴 루터의 95개 조항 혹은 95개 반박문이라고 한다)를 분노에 차서 써 내렸다. 마르틴 루터는 면죄부에 관한 테첼의 가르침에 이의를 제기하려고 했을 뿐이었으나, 그 작은 소망이 전 세계를 뒤흔들어 놓고 만다.

난폭한 돼지, 불태워버린 황소, 지렁이 식단
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는 95개 조항을 적은 반박문을 비텐베르크대학 예배당 정문에 못 박아 게시했다. 몇몇 학자들이 웅성거리기는 했지만 아무도 웃는 사람이 없었다. 교황 레오 10세는 “마르틴 루터는 술 취한 독일인이다. 술에서 깨면 자신의 견해를 철회할 것이다” 하고 간단히 넘겨버렸다. 그러나 그로부터 3년 후 교황 레오 10세는 루터가 술에 취한 것이라면 영원히 그 술에서 깨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통감하게 되었다.

교황 레오 10세는 루터의 95개 조항에 대항하기 위해 “주님이여! 일어나소서!”라는 제목의 교서를 발표하여 “난폭한 돼지가 주님의 포도원에 침입했다!”고 주장했다. 난폭한 돼지란 루터였고, 주님의 포도원은 교회였다. 마르틴 루터가 교황 레오 10세의 황소(Bull, 교황의 교서라는 뜻으로도 쓰인다)를 태워버린 것이다.

두 달 후, 루터는 신성로마제국 황제에게 편지를 받는다. 편지에는 ‘안전하게 호송해줄 테니 황실의 회의에 참석하여 귀하의 책에 대한 몇 가지 질문에 답변해주시오’ 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황실의 회의를 일컫는 라틴어 단어는 디에트(Diet)이다. 그 회의는 보름스(Worms)라는 독일의 도시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그래서 그 회의를 ‘보름스 회의’(The Diet of Worms, 영어로 직역하면 ‘지렁이 식단’이라는 뜻이 되기도 한다)라고 부르게 되었다.

마르틴 루터는 죽음을 각오하고 디에트에 참석했다. 100년 전에도 신성로마제국 어떤 황제가 얀 후스에게 신변 안전을 보장한 적이 있었지만, 결국 후스가 화형대에서 죽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과연 루터도 후스와 똑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인가?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265호> 기사입니다.

    아이디 로그인

    아이디 회원가입을 하시겠습니까?
    회원가입 바로가기

    아이디/비번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