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감람산에서 본 예루살렘… “여전히 주님은 울고 계신다”

등록날짜 [ 2011-11-15 14:51:59 ]

성경 속 내용 눈으로 확인하니 느낌이 확연히 달라
젖과 꿀이 흐르는 진정한 성지는 성도임을 깨달아


<사진설명> 예루살렘 성 주변 전경

이스라엘 성회 참가단으로 지난 10월 24일(월) 인천공항을 출발했다. 베들레헴에서 3일간 영적각성 대성회에 참석하여 윤석전 담임목사의 설교 말씀으로 은혜 받고, 이후 일정은 성경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 성지순례를 했다.

우리 일행은 인천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9시간 이동하고 사우디아라비아 두바이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3시간을 더 간 후 요르단 암만공항에 도착했다. 이후 육로로 이스라엘로 입국했는데, 이스라엘 현지까지 다섯 번이 넘는 검문을 통과해야 했다. 이스라엘 베들레헴 호텔에 도착하고 시간을 계산해보니 꼬박 24시간을 이동했다. 간단히 저녁을 먹고 성회에 참석해 은혜를 받았다.

둘째 날부터 본격적인 성지순례를 시작했다. 예루살렘 성을 중심으로 통곡의 벽과 베데스다 연못, 안나교회, 십자가의 길(비아 돌로로사), 마가 다락방, 베드로 통곡교회 등을 둘러보았다.

통곡의 벽(Wailing Wall)은, 헤롯대왕이 60여년에 걸쳐 지은 성전이 로마군에게 파괴되고 남은 ‘서쪽벽(Western Wall)’의 일부라고 한다. 유대인들이 성벽 앞에 모여 성전이 파괴된 것을 슬퍼했기 때문에 ‘통곡의 벽’이라는 이름을 지었다는 설도 있다. 어찌됐건 지금도 이 벽에서는 많은 유대인이 기도하고 있다. 하나님께 선택받은 민족이지만 예수를 알지 못해 구원의 길로 가지 못하는 그들을 보며 오히려 슬퍼하실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져 내 마음도 아팠다.

예수께서 빌라도에게 사형선고를 받고 그곳에서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 언덕까지 오르신 길을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 슬픔의 길)’라고 한다. 십자가 길은 총 14지점이 있는데, 제1지점부터 제9지점까지는 십자가를 지고 가신 길을 따라 있고, 제10지점부터 제14지점까지는 거대한 무덤교회인 성묘교회 건물 안에 있다.

1~9지점을 가는 길 양옆으로 아랍 모슬렘이 운영하는 수많은 상가가 즐비하게 놓여있다. 관광 상품을 파는 세속적인 번화가가 되어 슬픔의 길이라기보다는 시끌벅적한 장터가 연상돼 우리의 죄를 대속하려 십자가 길을 걸어가신 주님의 마음을 더욱 슬프게 만들었다.

셋째 날에는 기드론 골짜기, 힌놈의 골짜기, 다윗 성, 히스기야 터널, 실로암 연못, 침례요한탄생기념교회, 엘리사벳방문교회 등을 순례했다.

기원전 701년경, 앗수르 침입에 대비하여 히스기야 왕이 성 밖에 있는 기혼 샘을 적들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물길을 성안으로 끌어오려 터널을 만들었는데 이 터널을 히스기야 터널이라고 한다(왕하20:20). 폭 60㎝ 정도인 좁은 공간에서 횃불 그을음과 사방으로 튀는 돌가루를 뒤집어쓴 채 청동제 도끼로 바위를 쪼아 총 길이 533m에 이르는 구불구불한 터널을 완성했다니, 당시로서는 가히 놀라운 터널 공사였다.

넷째 날에는 감람산, 벳바게교회, 승천교회, 주기도문교회, 눈물교회, 겟세마네동산, 만국교회, 소렉 골짜기 등을 순례했다.

벳바게라는 지명에서 ‘바게’는 무화과나무를, ‘벳’은 집을 의미하니 ‘벳바게’는 무화과나무 집이라는 뜻이다. 무화과나무는 3~4월경에 작은 열매를 한번 맺고 7~8월에 진짜 맛있는 열매를 맺는다. 3~4월경에 열리는 작은 열매를 따주어야 나중에 진짜 열매가 잘 맺는다. 그래서 첫 열매는 누구나 따서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예수께서 벳바게 지역을 지나가실 때는 대략 3~4월경으로, 무화과나무에 작은 열매가 없음을  저주하시자 그 나무는 말라버렸다. 작은 열매가 열리지 않는 무화과나무는 진짜 열매도 맺지 않기에 말라도 상관없다. 결국 때가 되어도 첫 열매가 열리지 않은 것은 나중에도 열매가 열릴 리 없어 결국 버려지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을 읽을 때 저주받은 무화과나무를 보면서 안됐다고만 생각했는데, 현지에 와서 사정을 알고 성경 내용을 상고하니 이해가 잘 됐다.

감람산 서쪽 기슭 근처에 겟세마네 동산이 있다. 그곳에는 올리브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으며, 그 옆에 만국교회(겟세마네기념교회)가 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신 주님을 기념하여 만든 교회지만, 교회 기둥에는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을 상징하는 조각상이 더 돋보인다. 주님은 없고 성인만 추켜세우는 가톨릭의 잘못된 신앙이 여실히 드러나는 듯했다.

다섯째 날에는 소돔 지역, 소금기둥, 마사다 케이블카, 사해사본이 발견된 쿰란 동굴, 삭개오가 올라간 뽕나무, 엘리사의 샘 등을 보고, 사해(死海)를 체험하는 기회가 있었다.

소금 기둥은 롯의 아내를 상징하는 모양으로 예벨 우스돔이라는 소금 산 위에 우뚝 솟아 있다. 성경에 나오는 롯의 아내라고 부르기에는 모양이 크고, 소알 동쪽에 있어야 하는데 서쪽에 있는 등 논란의 여지가 많지만 롯의 아내 사건에서 전해주는 메시지를 듣고 의미를 되새기는 기회로는 좋았다. ‘뒤를 돌아본다’는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산, 인맥, 조건 등에 의지하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뒤처진다는 뜻도 있다.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세상을 의지하거나 뒤처진다면 환란 날에 벗어나지 못하고 망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육일째에는 므깃도(아마겟돈), 나사렛, 수태고지교회, 요셉교회, 가나혼인잔치교회 등을 순례하였다.
칠일째에는 고라신, 하솔, 가이사랴빌립보, 가버나움, 팔복교회, 오병이어기념교회 등을 방문하고 갈릴리 선상에서 예배드리고 주의 만찬식도 하였다.

갈릴리 호수 북서부 해안 지역에 있는 팔복교회에서는 팔복의 의미를 새겨보았다. 산상수훈를 전한 지역에 기념교회가 있는데, 몇 번이나 파괴와 재건을 거듭하여 현재 위치에 자리 잡았다. 교회 팔각 돔 각 벽에는 여덟 가지 복의 말씀이 라틴어로 쓰여 있다. 갈릴리 해변을 배경으로 보면 유럽의 멋진 휴양지에 온 느낌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이곳에서 복 있는 사람에 대하여 생각하면서, 200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의 내가 참으로 복 받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당시 그 말씀을 받은 수많은 무리와 그 후손은 예수를 메시아로 믿지 못해 때리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고, 지금까지도 그 민족은 구주를 영접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예수를 나의 구세주로 모시며 신앙생활 하고 있기에 감사한 마음뿐이었다. 이 마음이 변치 않고 죽을 때까지 재림하실 주님을 위한 신부의 자격을 갖춘 믿음의 사람이 되자고 스스로 다짐해보았다.

팔일째에는 요르단 거라사 지역, 얍복  강을 둘러보았다.
구일째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페트라를 비롯한 요르단 지역을 순례했다. 십일에는 침례 요한이 참수당한 헤롯의 별장이 있는 마케루스 요새 순례에 이어 마지막으로 느보 산에 올랐다.

느보 산에서는 모세의 생애에 대해 깊이 느껴보았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가려고 40여 년간 험난한 광야 여정을 보낸 모세는 목적지 가나안을 눈앞에 두고 느보 산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율법’을 상징하는 모세가 ‘복음’을 상징하는 여호수아에게 바통을 넘긴 이 사건을 통해, 율법으로는 구원받지 못하고 복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임을 깨달았다.

수많은 믿음의 선진이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신앙의 길을 걸어와 우리에게 복음의 발자취가 흘러왔기에 오늘날 우리가예수를 알고 믿고 신앙생활 할 수 있게 된 사실에 감사할 뿐이다. 비록 지금은 성지 곳곳이 아랍인의 장사 터로 전락해버렸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그 의미를 되새기며 하나님이 주시는 메시지를 듣고자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성지순례 기간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예배드리고 기도회를 하고 그날그날 하나님이 주시는 목소리를 사모했다.

교회에 돌아오니, 그 척박한 땅에서 복음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그들이 불쌍하고, 우리같이 좋은 교회에서 늘 신령한 양식을 먹으며 신앙생활 하는 것에 감사가 북받쳐 올랐다. 성지순례 하는 동안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 올려드린다.
 

예루살렘 성 주변 아랍인 거주지역


비아 돌로로사(십자가의 길)을 걷는 순례자


통곡의 벽에서 기도하는 유대인 학생들


겟세마네교회(만국교회) 입구


총 길이 533m에 이르는 히스기야 터널


느보 산으로 가는 길

/글 오태영 안수집사
사진 김일수 정재형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265호> 기사입니다.

    아이디 로그인

    아이디 회원가입을 하시겠습니까?
    회원가입 바로가기

    아이디/비번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