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무늬만 있는 예수 성탄, 아무 의미 없다

등록날짜 [ 2011-12-20 17:03:31 ]

박애주의-인본주의는 구원과 전혀 상관없어
날 위해 피 흘리신 예수 사랑만이 가득하길

12월이 되면 기업체마다 성탄절 특수를 겨냥한 마케팅을 펼쳐 사회 분위기를 한껏 들뜨게 한다. 한 해가 지나간다는 괜한 공허함을 허영심으로 대체하려는 사람들은 이러한 분위기에 휩쓸려 다닌다.

또 한 해를 뒤돌아보며 경건하게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아야 할 시기에 망년회(忘年會)라 하여 흥청망청하며 헛되이 시간을 낭비하면서 의미도 없고 뜻도 없이 한 해 마지막 시간을 보낸다.

12월은 분명히 성탄(聖誕)의 달이다. 이 성탄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인류의 죄를 사해주기 위해 고의적으로 피 흘리시려고 인간의 육신을 입고 탄생하신 날이다. 이날은 선물을 주고받는 날도 아니며, 연인끼리 시간을 같이 보내야 하는 날도 아니다. 성탄절을 맞아 불우한 이웃을 돌아보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을 찾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날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목적을 깊이 있게 생각하는 날이 되게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어렵고 소외된 이웃을 찾는 일은 평소에 꾸준히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성탄절에는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고, 상업주의에 물든 산타클로스만 부각되고 있으니 실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성탄절에 선물을 주는 풍습은 12세기 프랑스 수녀들이 성탄 전날 가난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누어준 데서 시작했다.

산타클로스는 20세기에 들어와 기업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활용되면서 성탄절 본래 의미를 희석하고 인본주의 박애주의로 변질시키는 선봉에 서 있다. 특히 어린이들의 동심(童心)을 노린 마케팅 전략 때문에 성탄절의 주인공이 예수가 아니라 그 전날 선물을 주는 산타클로스로 바뀌어 어린이들은 산타클로스를 더 기대하고 기뻐하도록 감정적 인식을 조작당하고 있다.

이런 세태는 교회 안에서도 별 고민 없이 행해지고 있다. 대부분 교회에서 성탄절 전날에는 전야행사만 치르고 예배를 드리지 않는다. 이 전야행사가 끝나고 흔히 청년들은 교회 안에 모여 다과와 선물교환 그리고 온갖 재미있는 게임을 하며 밤을 지새우고, 새벽에는 새벽 송을 돌다가 정작 성탄절 당일 아침에는 예배에 참석하기도 힘겨워한다. 이런 상황에서 날 위해 죽으려고 성탄하신 예수께 대한 진실한 경배와 감사를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성탄절 예배는 내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으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드리는 감사의 예배며 눈물로 얼룩진 감사와 회개의 절정이 되어야 한다. 이 성탄의 감동을 가슴에 품고, 우는 사자같이 덮쳐오는 세상의 풍습에 생각과 마음을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

이날 성도들은 교회에 모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탄생 하신 목적을 분명히 알고 깨달으며 진실한 감사의 예배를 드려야 한다. 그리고 많은 이웃을 초청하여 성탄의 목적을 알려야 한다. 우리는 성탄절에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에 대한 교육은 물론, 환영과 감사의 행사를 진행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이웃과 함께하는 예수 사랑 행사들을 일 년 중 시시때때로 기획함으로써, 성탄절을 볼모로 바싹 기승을 부리는 상업주의와 박애주의에 맞서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성탄절을 거룩하게 보내는 일임을 알아야 한다.

위 글은 교회신문 <27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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