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1-12-27 13:43:06 ]
프랑스에서 개신교 박해로 1만 명 이상 순교
어느 학파에 좌우되는 신학 논쟁 점차 가열
종교개혁 이후 유럽은 루터파, 칼뱅파, 영국국교회파, 가톨릭, 재침례파가 혼재하여 어수선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양심을 따를 수가 있었다. 그래서 유럽 전체에 평화가 깃들었다. 그런데 과연 정말 그랬을까?
파리는 우리 것이다
1572년, 프랑스의 왕비는 ‘위그노파(Huguenots, 프랑스의 개신교도를 일컫는 말)’들이 모반을 꾀하고 있다고 왕을 설득했다. 그래서 바돌로매 축제일 저녁, 왕의 병사들은 마치 인종(人種) 청소라도 하듯이 파리 시내를 휩쓸고 다니며 개신교 신자를 무차별 학살했다.
그날 하루 동안 1만 명이 넘는 프로테스탄트 교인이 목숨을 잃었고, 다음 날까지도 희생자의 피가 루브르 박물관 계단 아래로 뚝뚝 떨어졌다. 1598년에 낭트 칙령(Edict of Nantes)을 반포하기 전까지 프랑스에서 개신교는 불법이었다.
프로테스탄트 내부의 갈등도 프로테스탄트 운동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루터파는 인간이 전적으로 부패했는지 부분적으로 부패했는지를 놓고 20년이 넘게 내부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자신들이 20년 동안이나 논쟁하고 있다는 그 사실에서 힌트를 얻지 못한 것일까?).
결국 그들은 1577년에 반포한 「화해신조(Formula of Concord)」로 다시 하나로 결집했다. 그렇다면 구원에 대해 예정론을 믿는 칼뱅파는 어땠을까? 루터파보다 조금 더 낫게 예정되지 않았을까? 그런데 과연 그랬을까?
칼뱅과 알미니우스의 대립
야콥 알미니우스(Jacob Arminius)는 네덜란드의 명망 높은 목회자였다. 그런데 1500년대 후반, 어느 목회자가 칼뱅의 예정론이 틀렸다고 주장했다. 이에 알미니우스는 그 목회자에 대항하여 칼뱅의 교리를 옹호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는 논쟁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지고 말았다. 논쟁을 벌이려고 칼뱅과 상대의 사상을 연구하던 중, 알미니우스는 상대의 견해가 옳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알미니우스가 내린 결론으로 칼뱅주의는 분열했다. 알미니우스는 1609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예정’에 관한 갈등은 계속됐다.
알미니우스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 그의 추종자들은 구원에 관한 다섯 가지 신념을 요약한 신앙 진술서 「항변(Remonstrance)」을 발표했다. 그 요점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인간은 스스로 선한 것을 할 수 없다.
둘째, 하나님은 세상의 기초를 만드시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겠다고 자유로이 선택한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기로 선택하셨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을 위해 돌아가셨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오직 믿는 자들만을 구속한다.
넷째, 인간은 자기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시도를 거부하겠다고 선택할 수 있다.
다섯째, 성경은 믿는 자가 구원을 상실할 수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명확히 말하지 않는다.
알미니우스의 추종자들의 항변은 “이 논설은 구원을 얻기 위한 사항을 충분히 정리한 것으로 더 높이 보거나 혹은 더 낮게 볼 필요가 없다” 하고 말하며 결론을 맺었다.
이에 1618년, 네덜란드의 제후 모리스(Maurice)가 이 논쟁을 끝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정치 종교적 이유로 알미니우스 주의자들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품고 있었으므로 유럽 전역에 있는 칼뱅주의 목회자들을 도르트(Dort) 시로 초청했다. 이유는? 물론 알미니우스파를 탄핵하는 것이었다.
도르트 종교회의(Synod of Dort)는 정치적 색채가 강했지만, 칼뱅주의의 신념을 요약한 균형 있는 선언문을 작성하려고 노력했다. 그들은 알미니우스파가 채택한 다섯 가지 진술에 대해 반론을 제시했다. 그 요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인간은 본래 영적으로 죽어 있다. 고로 자연 상태에 있는 어떤 인간도 그리스도를 찾고 싶다는 마음을 품을 수 없다(롬3:10~12;엡2:1~3).
둘째, 만일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새 생명을 주기로 선택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선택은 무조건적이다. 그것은 인간의 결정에 근거하지 않는다(요6:44;롬9:10~16).
셋째, 그리스도의 죽음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만에 대해 속죄할 뿐이다(요3:16).
넷째,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새 생명을 주실 때, 그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할 수도 거기에 저항할 수도 없다(요6:37,44).
다섯째, 모든 신자는 믿음 안에서 끝까지 인내할 것이다(요10:27~28;롬8:29~39).
사실, 예정론은 칼뱅 신학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그 목적은 크리스천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도르트 종교회의 이후 예정론은 칼뱅 신학의 핵심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칼뱅파 프로테스탄트 가운데 ‘그리스도와의 역동적이고도 인격적인 관계’를 몰아내고 그 자리에 ‘정확한 신앙고백’을 들여앉힌 이들이 적지 않았다. <계속>
(사진설명) 알미니우스
위 글은 교회신문 <271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