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2-01-26 15:49:06 ]
섬김을 무조건 낮아지는 것으로만 생각해선 안 돼
솔선수범하여 말하기 전 먼저 행동으로 보이는 것
사회가 고도로 분화하고 복잡해질수록 소통과 협력의 필요성도 그만큼 증가한다. 소규모 집단의 자급자족 활동만으로는 다양한 욕구와 필요성을 충족하는 것이 어려울 뿐 아니라 갈수록 커지는 인간 활동이 새로운 조직화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대를 맞아 ‘리더십’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인간 심리와 관계를 다루는 실천적 학문이 중요하게 대두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러한 사정은 교회도 마찬가지인데 사회 변화에 발맞춰 대중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며 영향력이 있으려면 그 어느 조직보다 효율적인 리더십이 필요하다. 이미 예수 자신이 몸소 열두 제자를 선택하여 함께 생활하고 직접 훈련하며 기독교 확장에 이바지하도록 준비하게 하셨다.
예수의 승천 이후 열두 사도와 이들과 뜻을 함께한 초대 교인들을 통해 복음이 유대와 사마리아를 넘어 온 세상으로 확장한 것은 우리가 익히 아는 바다. 모든 민족과 열방을 제자로 삼으라는 말은 예수의 최후 지상 명령이었는데 이는 세상 곳곳에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건설하라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경쟁에 치중하는 세상 조직과 달리 영과 육의 구원을 사명으로 하는 교회에 필요한 리더십은 무엇이고 그것을 우리 시대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우리는 여기서 예수가 몸소 실천하며 보여준 섬김의 리더십에 주목해야 한다.
섬김의 리더십은 리더십의 한 갈래인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 섬김의 리더십)과 통하지만, 그 뿌리는 이미 예수의 가르침에서 찾을 수 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는 말씀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섬김의 리더십을 무조건 자신을 낮추고 남의 종 역할을 하는 겸손의 리더십으로 이해한다면 이 리더십의 풍부한 내용을 왜곡할 수 있다.
우리는 ‘서번트 리더십’의 원칙을 성경의 말씀과 비교해보면서 과연 누군가를 주님처럼 섬긴다는 것의 참된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오늘날 서번트 리더십은 카리스마 리더십을 대신해 경영학과 교육학에서 가장 크게 주목받으면서 3M이나 구글 같은 세계 굴지 기업들이 지침으로 삼는 영향력 있는 경영철학이 되고 있다. 서번트 리더십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 관리를 강조하고 구성원의 협동에 기초한 공동체 성장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휴머니즘 리더십이다.
카리스마 리더가 비범한 능력과 비전을 통해 구성원들의 존경심을 유도하고 자발적인 복종을 끌어내면서 조직을 이끈다면, 서번트 리더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람들을 보살피면서 각자가 지닌 잠재력과 소질을 극대화하여 조직의 목표를 함께 달성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특징이다.
서번트 리더십은 리더가 자신의 통솔력과 권위에 호소하기보다는 부하들이 맡은 임무를 잘할 수 있게 견인하는 리더의 헌신성을 강조한다. 예컨대 경영학자 제임스 맥그리거는 리더십은 권력이 아니라 영향력을 통해 사람을 움직이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 말은 서번트 리더십의 본질을 잘 요약해준다.
남을 섬기되 그 섬김을 통해 나보다 부족한 사람을 성장시키고 이들이 변하여 모두 훌륭한 리더로서 역할을 할 수 있게 치유하는 것이 서번트 리더십의 본질이다. 카리스마 리더가 성원들에게 남다른 자부심과 리더를 따라 배우려는 자극을 준다면, 서번트 리더는 모두 함께한다는 연대의식을 심어준다. 서번트 리더십의 본질이 공동체 형성에 있기 때문에 권위주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개인의 창의성과 협력이 중요해지는 지식기반 사회에서 점점 그 중요성이 커지는 것이다.
서번트 리더십은 제자들에게 증인의 역할을 부여하여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아 이들을 통해 복음을 전파하라는 복음서의 정신과 정확히 통한다. 그런데 서번트 리더십을 좀 더 교회의 실정에 맞게 구현하려면 더 세심한 연구가 필요하다.
일찍이 로버트 그린리프는 여섯 가지 키워드를 통해 서번트 리더십을 설명한 바 있는데 이것을 성경의 가르침과 연결해 재해석해 본다면 우리는 21세기 교회에 필요한 새로운 리더십의 유형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시대의 요청에 맞는 리더십을 발굴하고 훈련하는 것은 생존과 성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원래 리더십은 사람들을 이끌고 지도하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 관계를 잘 맺어 자신에게 유리하게 활용하고 다른 사람의 자발적 협력을 끌어내는 것이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인도에서 혼자 살지 않는 한 리더십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며, 바른 리더십을 배우는 것은 특히 제자의 길을 가는 그리스도인에게 더 절실하다고 할 수 있다.
올바른 신앙은 교회라는 공동체를 통해 다른 지체들과 조화를 이룰 때만 제대로 꽃이 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섬김과 사랑을 본질로 삼는 교회야말로 서번트 리더십, 즉 섬김의 리더십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해야 한다.
<다음 호에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275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