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합리주의 속에 도사린 불신앙을 경계하라

등록날짜 [ 2012-03-06 18:09:43 ]

인간의 방법으로 하나님을 판단해서는 안 돼
성경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능력이 나타나

히브리 민족이 애굽에서 나올 때 하나님이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렸다. 성경은 그것을 하나님이 내린 재앙이라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지만, 합리주의자는 그것이 인위적(人爲的)이거나 자연적으로 일어난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나일 강물이 피로 변한 사건(출7:19~20)도 합리주의자는 나일 강 상류에서 히브리인이 붉은 벽돌을 찍은 물이 흘러서 붉게 보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메뚜기 재앙(출10:13~14)도 세계적으로 메뚜기 떼로 말미암은 천재(天災)가 많이 일어나니 출애굽 당시 메뚜기 떼의 출몰도 때맞춰서 일어난 천재지변이라고 주장한다.

하나님의 역사라고 인정하지 않으려니까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겠느냐?”는 방법과 이유를 대려고 인간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을 끌어온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하나님의 능력을 도전하는 무서운 소치인가?

불가능에 부딪힐 때 믿음을 보이라
지금도 여전히 합리주의, 인본주의 신학자들은 인간적인 논리와 이치로 하나님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는다.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가 동정녀(童貞女)에게서 탄생한 것과 부활하신 것도 부인하고,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신 것도 부인하는 자들이 있다. 그런 자에게 영혼을 맡기면 어떻게 되겠는가? 우리는 고대광실 좋은 집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며 사는 것보다 비록 가난하더라도 영적인 능력이 있는 주의 종을 만나는 것이 최고의 축복임을 깨달아야 한다.

예수께서 벙어리 되게 한 귀신을 쫓아내시니까 유대인이 “저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매도했다(마12:24). 자기들의 생각으로는 합리적인 얘기를 한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분명히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냈다고 말씀했다(마12:28). 오늘날도 학자 중에는 성령의 힘으로 귀신을 쫓아낸 것을 최면술로 한 것이라고 말하고, 영의 눈이 열려 하늘나라를 본 것은 사이비(似而非)로 취급하려 한다. 하나님의 역사를 최면술이나 사이비로 보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부인하는 것이니 그것이 곧 마귀역사다.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마귀역사에 이용당하는 합리주의, 인본주의 논리와 이론을 좇지 말고, 하나님을 절대 지지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자.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절대 지지하자.

이같이 ‘어떻게’라는 헬라적 사고는 예수의 모든 이적을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합리화하려고 몸부림친다.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귀신을 쫓았다는데도 최면술이라며 믿으려 들지 않고, 나일 강물이 피가 되었다니까 벽돌 찍은 물이 흘러서 그런 것이라며 믿지 않는다. 개구리, 이, 파리, 메뚜기 등이 연달아 떼를 지어 큰 소동을 일으킨 이런 재앙들을 하나님의 역사로 보지 않으면 어떤 논리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성경이 어떤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믿자. 말로만 믿지 말자. 당신이 문제에 부딪혀보면 믿는지 안 믿는지 증거가 나온다. 우리는 실제 문제에 부딪혔을 때 내 속에서 믿음이 나와야 한다. 고통에 직면했을 때 믿음이 나와야 하고, 불가능에 부딪혔을 바로 그때 믿음이 나와야 한다.

능력 있는 신앙생활을 위해
우리가 믿음 안에서 원대한 꿈을 꾸는 것은 절대 허풍이 아니다. 믿음 안에서 하나님이 일하실 미래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 믿음의 역사가 이루어지기까지는 수많은 어려움과 고통이 있다. 가나안 복지까지 가려면 광야 40년 고통이 있고, 요단 강을 건너고,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고, 아이 성을 파괴하는 등 수많은 전쟁이 있었다. 그럴지라도 이미 가나안 복지로 가는 길에 ‘기어이 가고야 말리라, 하나님이 내 손을 잡아주시리라, 장애물을 이기고 승리하리라’는 결심이 있었다.

어떤 축복이든지 그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통과해야 축복을 쟁취할 수 있다. 우리가 축복을 말하는 것은 곧 장애물을 건널 것을 말하는 것이다. 장애물도 내 힘으로 건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건너니 우리는 부딪힐 때 역사가 일어난다. 부딪혀 보지도 않고 ‘나는 안 돼’ 하는 사람은 안 되고 만다. 능력 있는 신앙생활, 영적인 신앙생활, 하나님과 함께하는 신령한 신앙생활, 신령한 목회, 능력 있는 목회를 하려면 그만큼 수많은 고통의 장애물을 건너야 한다. 건너고 난 그 너머에 축복이 있고, 그 너머에 역사가 일어난다. 그러나 가다가 주저앉고 말면 축복을 쟁취하지 못한다.

신앙은 미리 말하고 내가 거기까지 가는 길에 모든 장애물을 털고 넘어 가는 것이다. 가나안 복지 앞에 수많은 장애물이 있듯이 축복 앞에는 장애물이 있다. 이 장애물을 건널 때 축복을 쟁취하는 것이다. 우리는 믿음을 방해하는 인본주의, 합리주의에서 비롯한 수많은 불신앙의 장애물을 이기자. 그것을 이기면 그 너머에 축복이 있다. 하나님 앞에서 믿음 지니고 사는 일이 나의 재산이 되게 하자.

하나님을 얻는 성경 읽기 방법
성경에는 예수가 바다 위로 걸었다는 등, 인본주의와 합리주의 논리와 이론으로, 인간적인 이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간절히 바라는 것은 우리 모두 성경을 ‘어떻게 했나?’ 하는 헬라사상으로 읽지 말고 ‘하나님이 왜 하셨나?’ 하는 히브리사상으로 읽자. 히브리사상으로 신앙생활 해야 하나님을 얻을 수 있다. 하나님을 얻은 사람은 모든 필요를 하나님이 공급해주신다. 모든 필요를 하나님이 현지 조달하시는 것을 체험하고 살아간다. 우리는 평생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을 기업으로 삼고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는 이적의 믿음으로 살아가자. 히브리사상을 지닌 자만 그렇게 살 수 있다. <끝>

*이번 신년기획은 윤석전 목사의 ‘무보수전도자학교’ 강의 중 성경 읽기에 관한 부분을 골라 요약·정리한 것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28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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