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성경을 ‘왜’라는 생각으로 읽어라

등록날짜 [ 2012-02-28 13:06:09 ]

인간적인 수단이나 방법을 생각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역사와 섭리를 알아가는 게 중요

히브리 사상은 하나님의 역사(役事)가 뒤따르고, 헬라 사상은 인간적인 수단이 뒤따른다. 히브리 사상은 항상 ‘왜?’라는 사고(思考)로 하나님과 관계 속에서 답을 이끌어내지만, 헬라 사상은 ‘어떻게?’라는 사고로 인간적인 방법을 연구하게 한다.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 후에 홍해를 건넌 사건도, “어떻게 건넜을까?” 하고 헬라 사상으로 연구하다 보니 “홍해(Red sea)는 갈대바다(Reed sea)를 오역한 것이다. 거기에는 갈대가 많았을 것이고, 갈대가 많았으니 바닥도 깊지 않았을 테니까 바람이 불 때 갈대가 갈라져서 그 틈으로 건너갔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이렇게 헬라 사상을 지닌 사람에게 성경을 배우면 자유주의신앙이 나온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헬라 사상을 좇고 있기에 인본주의 합리주의가 되어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왜?’라는 히브리 사상을 지닌 교회는 부흥한다. “왜 그랬을까?”라는 질문에 “하나님이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하는 분명한 하나님과 관계를 인식하기 때문이다.

우리 연세중앙교회 교인이 무슨 일이 생기면 말씀대로 순종하자, 기도하자 하는 것은 전부 ‘왜’라는 히브리 사상으로 자랐기 때문이다. 히브리 사상으로 자란 사람은 영적인 사람이 되고 하나님과 관계가 분명하다. 그러나 헬라 사상으로 자란 사람은 인본주의자, 합리주의자가 되기 쉽다.

우리가 헬라 사상으로 인간이 어떻게 창조되었는지를 연구하다 보면, 최초에 원형질이 뭉쳐서 생명체가 되고 그것이 진화를 거듭하여 유인원이 됐고, 점점 더 진화를 거듭하여 사람이 됐다고 말한다. ‘어떻게’라는 문제에 집착하다 보니까 그 이유를 말해야 하고, 그 이유를 말하다 보니까 합리적인 이유를 찾아 진화론적 사고를 하게 된 것이다.

인류가 ‘어떻게’라는 생각으로 방법을 탐구하다 보니 과학이 발전하고 물질문명이 발전했지만, 인간적인 생각의 결과로는 도무지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할 수 없다.

“돈을 어떻게 벌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도 수많은 방법이 뒤따른다. 그러나 “돈을 왜 벌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기 위해서”라는 확실한 답이 나온다. 이같이 ‘어떻게’라는 헬라 사상에는 인간적인 수단이 뒤따르고, ‘왜’라는 히브리 사상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뒤따르게 된다.

히브리 사상에서 나오는 능력
“하나님이 왜 인간을 만드셨나?” 자신이 창조한 천지 만물을 다 주셔서 소유하고 지배하고 정복하며 살게 하신 인간에게서 영광을 받으시려고 지으셨다. “인간은 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나?” 그가 만드셨기에 그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은 당연하다.

“하나님의 아들은 왜 이 땅에 오셨는가?” 사망의 세력을 잡은 마귀를 멸하시고 마귀의 지배 아래 있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다. “하나님의 아들은 왜 성령으로 잉태되셨는가?”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되면 인간의 원죄로 죄의 자식이 태어나니 어찌 우리를 구원할 수 있겠는가. 죄가 없는 몸이어야 우리를 구원할 수 있기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은 왜 죽었는가?” 우리의 죄를 짊어지니까 그 죄로 말미암아 죽었다. “하나님의 아들은 왜 부활했나?” 인간의 죄를 대신 지고 죽었으나 죽은 후에 죄가 없다는 것이 판명되어 다시 살아나셨다. 그러므로 죄 없으신 예수를 죽인 마귀는 영원히 멸망한다. 사망권세가 무너졌다. 그리고 그분은 성령으로 우리 안에 와 계신다. “왜 우리 안에 계신가?” 우리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게 인도하시고 영원히 우리와 함께 살기 위해서다.

이같이 ‘왜?’라는 히브리 사상으로 성경을 조명하면 영적으로 깊이깊이 들어간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 때는 주님의 목소리가 내 심령에서 고함치듯 읽고, 그렇게 읽을 때에 히브리 사상만 들어간다면 능력은 절로 나타난다.

그러나 오늘날 ‘왜’라는 히브리 사상으로 성경을 통해 믿음을 지니지 못한 사람은 인본주의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세상 사람과 똑같이 살아간다. 통일교는 ‘어떻게’라는 사고로 “하나님의 아들이 어떻게 인간들의 손에 십자가에 달려 죽을 수 있나? 하나님의 아들이 인류를 구원할 때 안 죽고는 구원할 수 없나? 얼마든지 절대자의 능력으로 할 수 있다. 그러니 예수가 2천 년 전에 십자가에 죽은 것은 실패다” 하고 주장하는 적그리스도 사상이 나오게 된다.

그들은 ‘어떻게’라는 이론으로 사람들을 현혹해 적그리스도와 이단으로 끌고 간다.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이처럼 ‘어떻게’라는 이론에서 나온 이단과 적그리스도에 절대 속아서는 안 된다. “왜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못 박혔나?” “그것은 나의 죄, 인류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서다”와 같이 우리는 모두 히브리 사상을 가져서 절대 속지 말아야 한다.

히브리 사상 속에서 생기는 엄청난 믿음
성경은 영적인 말씀이다. 왜 영적인가? 하나님은 영이시고, 성경은 영이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성경을 히브리 사상으로 읽는 자는 성경을 자신의 것으로 가진다. 그런 사람은 성경 말씀이 자기 심령 속에서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성경이 영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헬라 사상으로 읽는 자는 성경을 자기의 밖에 놓고 관찰한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이 왜 그렇게 하셨는가?” 하는 사고로 믿음이 자라고 성경이 믿어진다. 우리가 이왕에 신앙생활하기로 작정했다면, 우리의 모든 생각을, 방법을 찾는 ‘어떻게’에서 하나님 섭리의 이유와 결과를 찾는 ‘왜’로 바꾸자. 그래야 성경 속에서 약속한 모든 축복이 내 것이 된다.

‘주님께서 왜 나를 위해 죽으셔야만 했는가?’ 하는 ‘왜’ 속에는 엄청난 믿음이 생긴다. ‘어떻게 할 수 있나?’ 하는 사고 속에는 결국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감동한 것의 얼마를 감추지 않으면 안 되는 사건이 벌어지고 그로 말미암아 절명하게 된다. 이같이 ‘어떻게’라는 사고에는 사단이 역사할 틈이 그만큼 많다는 것을 유념하면서, ‘왜’라는 히브리 사상과 생각을 지녀서 하나님이 역사하심으로 항상 승리하는 삶을 살자.

*이번 신년기획은 윤석전 목사의 ‘무보수전도자학교’ 강의 중 성경 읽기에 관한 부분을 골라 요약·정리한 것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27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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