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2-03-13 16:47:46 ]
보편구원설로 미국은 한 때 영적 혼란으로 신음
케인 리지 집회로 ‘성경으로 돌아가자’ 운동 전개
미국 미개척지에 사는 사람들 또한 현대 낙관주의를 받아들였다. 어떤 이들은 낙관주의를 지나치게 신뢰한 나머지 보편구원설(Universalism, 하나님께서 아무도 벌하지 않고 모든 인류를 구원하신다는 설)을 포용했고, 그 결과 미국 사회 전체가 영적 암흑에 빠졌다.
하지만 1800년대에 들어서자 미국의 많은 크리스천이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추구했다. 장로교회 교인은 기도의 날을 정하고 기도에 전념했다. 그들은 미국 사회를 영적 암흑에서 건져달라고 간절히 매달렸다. 1801년 어느 날 켄터키에서 그들의 기도가 응답되었다.
켄터키 케인 리지의 부흥
요즘도 교회학교 중등부나 고등부는 단체로 야외 수련회에 가서 며칠씩 영성훈련을 한다. 요즘 수련회는 찬양, 율동, 강연 등 현대적인 프로그램으로 운영하지만, 사실 수련회 그 자체는 1800년대 ‘야외집회’에서 유래했다.
19세기 크리스천은 야외집회를 열 때, 목요일이나 금요일을 잡아 교회 근처에 모여 천막을 치고 이틀간 찬양하며 말씀을 들었다. 그리고 주일이 되면 모교회(母敎會)에서 주의 만찬 참석권을 받은 사람 누구나 주의 만찬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이런 야외집회 목적은 크리스천에게 교제의 장을 마련해주고, 개척지 교회 교인들이 영적 원기를 회복하게 하는 것이다.
<사진설명> 케인 리지 부흥
1801년 어느 날, 크리스천 무리가 켄터키 케인 리지에서 야외집회를 열고 있을 때, 하늘이 ‘쩍’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바톤 스톤(Barton W. Stone) 목사는 1만 명 미만이 모일 것으로 예상했지만, 장로교인과 침례교인과 감리교인을 합해 2만여 명이나 운집했다.
그리고 토요일 저녁, 바톤 목사가 설교하던 중 어떤 사람이 바닥에 쓰러져서 하나님의 은혜를 갈구하며 신음했다. 동시에 다른 사람들도 비틀거리며 쓰러졌고, 어떤 이들은 이성을 잃은 듯이 계속 웃었다. 개척자 수백 명이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자비를 구했다. 제2차 대각성 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이 모임에서 시작한 부흥의 불길이 이후 30년 동안 미국 전역을 뜨겁게 달궜다.
켄터키 케인 리지에서 발생한 사건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비판자들은 그 사건을 대중의 집단적 감정 폭발이라고 불렀다. 혹자는 “그 천막 모임에서 많은 사람이 잉태되었으니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고 비아냥거렸다.
그렇다면 그들이 가짜로 연기한 것일까? 몇 사람은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완고한 개척자 수백 명이 얼굴을 바닥에 대고 엎드려 죄를 뉘우치며 흐느꼈다는 것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하나님의 심판과 은혜의 말씀을 전하려고 인간의 자기만족을 깨부수고 들어온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교단이 정말 필요한가
케인 리지 야외집회 이후, 바톤 스톤 목사는 19세기 낙관주의를 새로운 차원으로 올려놓았다. 크리스천이 성경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것을 버리면 신약성경의 기독교를 회복할 수 있으리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스톤 목사는 알렉산더 캠벨(Alexander Campbell)이 이끄는 침례교와 통합했다. 스톤과 캠벨이 이끄는 환원주의자(Restorationalists)는 자신들을 그냥 ‘크리스천’ 혹은 ‘제자’로 불러달라고 요청하고 “성경이 말하는 곳에서 우리도 말하고, 성경이 침묵하는 곳에서 우리도 침묵한다!”고 주장했다.
환원주의자의 목표는 모든 신자가 하나가 되게 해달라는 예수님의 기도(요17:23)를 성취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교단에 대한 충성심을 과감하게 버리고, 오직 성경 위에서 하나가 되자고 모든 크리스천에게 촉구했다. 하지만 그들이 ‘하나’ 되고자 간절히 바랐음에도 곧 여러 분파로 갈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환원주의 운동은 적어도 한 가지 영역에 오랫동안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 그것은 미국 크리스천을 꽁꽁 묶고 있던 낡아빠진 교파와 전통의 힘을 느슨하게 풀어헤쳤다는 것이다. 환원주의 운동의 유산이 오늘도 ‘그리스도의 교회(Churches of Christ 또는 Disciples of Christ )’에 남아 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281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