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2-03-29 14:15:34 ]
성경의 완벽성을 믿으므로 진지한 신학 연구 병행
경제 공황과 두 차례 전쟁 후 낙관주의 시들해져
<사진설명>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복음 전도자로 평가받는 드와이트 무디(Dwight Moody, 1837~1899)
현대를 거부하다 - 무디
드와이트 무디(Dwight L. Moody)는 크리스천이 된 지 1년도 되지 않았을 때 돈을 벌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안고 10대(代) 구두판매원으로 시카고에 도착했다.
그는 초등학교 5학년 학력이 전부인 소박한 시골뜨기였지만, 시카고에 온 지 5년 만에 엄청난 추진력으로 7000달러를 저축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만나고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영적 축복을 경험한 뒤, 자신의 인생 계획을 전면 수정했다. 구두를 파는 데서 사람들의 영혼을 얻는 데로 돌아서서 복음전도에 전념한 것이다.
1871년, 시카고에 대형 화재가 발생하여 무디의 집을 포함한 도시 상당 부분이 불에 탔다. 그때 무디는 재산 손실을 슬퍼하는 대신, 복음을 전하려고 영국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거기서 어떤 설교자로부터 “이제 이 세상은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바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이 이루실 일을 보게 될 것이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이 무디의 영혼에 불을 지폈다.
그 이듬해, 무디는 가수이자 작곡가인 아이라 생키(Ira Sankey)와 부흥여행을 시작했다. 무디는 생키의 찬양을 즐기는 중간 계층의 사람들을 겨냥하여 소박한 설교를 했다. 영국에서만 400만 명이 무디와 생키의 부흥집회에 모여들었다.
무디는 신학공부를 하지 않았다. 그는 “한쪽 문으로 들어가 다른 쪽 문으로 나온 것을 제외하면 나는 신학대학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무디는 오직 성경만 인용해가며 소박하게 설교했다. 그는 앞선 세대의 낙관적 후천년설을 비관적 세계관과 맞바꾸었다. 그의 유일한 관심은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었다. 언젠가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은 난파당한 배와 같다. 하나님께서 내게 구명보트를 주시며 ‘무디야, 있는 힘껏 사람을 구원하라’고 말씀하셨다.”
현대를 구조하다 - 근본주의자
1883년, 뉴욕 나이아가라에서 개최한 사경회에서 현대 모더니즘(곧 이성주의, 과학주의, 낙관주의를 포괄하는 현대 정신)에 대응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 제시됐다. 몇몇 보수주의 크리스천이 기독교 신앙의 기초, 혹은 근본이라고 믿는 다섯 가지 진리를 목록으로 작성한 것이다. 그 다섯 가지 진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그리스도는 독특한 신성(神性)을 지니고 있다.
둘째, 그리스도는 동정녀에게서 탄생했다.
셋째, 그리스도는 죄를 사하시려 희생으로 죽으셨다.
넷째, 그리스도는 다시 오실 것이다.
다섯째, 성경에는 오류가 없다.
대화가 끝난 뒤, 어느 부유한 크리스천 사업가가 낸 후원금으로 이 다섯 가지 기본적인 믿음을 옹호하는 소책자 시리즈를 출판했다. 『근본적인 것들(Fundamentals)』이라는 제목인 이 소책자에는 당대 걸출한 학자들이 쓴 논문이 담겨 있다.
이 다섯 가지 믿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근본주의자(Fundamentalist)’라고 부른다. 이 소책자 저자들은 무디와 마찬가지로 성경이 지닌 절대적인 권위를 믿었지만, 무디와 달리 성경의 정확무오성을 확고히 믿는 것과 더불어 진지한 신학 연구를 병행해야 한다고 믿었다.
물론 그 소책자 저자들이 모더니즘의 모든 현상과 맞서 싸우려 한 것은 아니다. 저자 가운데는 전천년설을 지지하는 이도 있고 후천년설을 지지하는 이도 있으며, 시리즈 제1권을 쓴 저자 세 명은 하나님께서 진화를 통해 세상을 창조했다고 믿기도 했다.
소책자 주요 기고가인 워필드(B. B. Warfield)는 “성경에는 진화를 반대하는 개괄적인 진술이 없다”고 선언했다(그렇다고 해서 그가 진화론의 지지자인 것은 아니다). 저자 대부분은 인간의 이성과 진보에 관한 현대 낙관주의적 확신을 포용하고 있었다. 이 확신은 경제 공황과 두 차례 전쟁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흔들리기 시작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283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