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교회 역사 이야기 <45>] 미국에서 자유주의와 근본주의가 맞붙다

등록날짜 [ 2012-04-25 09:12:32 ]

1920년대, 사회는 점점 타락 속으로 빠지며
진화론 논쟁으로 미국 전체가 들썩이기 시작

자유주의 성향이 강한 미국인은 제1차 세계대전을 ‘세계에 민주주의를 펼치고 정착시킬 좋은 기회’라고 보았고, 보수주의 성향이 강한 미국인은 ‘독일 자유주의 신학을 무찌른 십자군 전쟁’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은 자유주의 신학을 파괴하지도, 세상을 더 안전하게 만들지도 않았다. 또 유럽과 달리 미국의 들판에는 병사의 시체가 즐비하지도 않았다. 따라서 미국에는 현대 낙관주의의 잔재가 그대로 남게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현대 낙관주의 잔재가 일부 미국인을 광적인 쾌락의 추구로 몰고 갔다. 재즈와 플래퍼(Flapper, 1920년대에 자유를 찾아 복장과 행동의 관습을 깨뜨린 여성들), 그리고 미니스커트와 무허가 술집이 시대적 특징이 되었다. 많은 여성이 느슨해진 성적(性的) 기준에 맞추어서 행동하는가 하면, 다른 미국인은 여성의 투표권을 승인하고 알코올음료를 불법화하는 도덕 운동에 몰두했다. 

문제를 찾아라!
사람들은 무언가 잘못되면 당연히 문제를 찾는다. 그리고 몇 가지 문제를 찾아내기보다 한 가지 문제를 찾아내어 그 해결책을 모색한다. 1920년대 미국의 수많은 보수적 크리스천은 자유주의가 미국의 문제라고 확신했다. 이 ‘근본주의자’는 자유주의와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모든 개념에서 자신들을 분리했다.

자유주의자는 후천년설(천년왕국 이후에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신다는 견해)을 지지했지만, 근본주의자들은 전천년설(천년왕국 이전에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신다는 견해)을 지지했다. 자유주의자들은 신학 연구를 지향했지만, 근본주의자들은 신학 훈련을 거부했다.

자유주의자는 진화론이라면 어떠한 모양도 거부했다(물론 『근본적인 것들』이라는 소책자 시리즈 몇몇 저자가 하나님께서 주도하시는 진화를 인정한 적이 있기는 하다).

1925년, 테네시 주(州)의 근본주의자는 주 당국자를 설득하여 테네시 주 모든 공립학교에서 진화론 교육을 금지하는 ‘버틀러 조례(Butler Act)’를 통과하는 데 성공했다.

원숭이 재판 논쟁
그해 여름, 진화론 논쟁은 전국적인 대중 난투극으로 이어졌다. 존 스콥스(John Scopes)는 테네시 주 데이턴이라는 작은 마을의 고등학교 1학년 축구 코치였다. 하지만 가끔 신입생들에게 생물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런데 버틀러 조례가 가결된 이후 데이턴 시(市) 시민 몇 사람이 마을을 유명하게 만들고 싶어졌는지, 스콥스를 설득하여 인간이 원숭이와 같은 조상에서 유래했다고 가르쳤음을 인정하게 했다. 결국 스콥스는 버틀러 조례 위반 혐의로 고발당했고, 1925년 7월에 재판이 열렸다.

재판 양상은 처음부터 복잡해질 기미가 없었다. 스콥스 자신이 버틀러 조례를 위반했음을 공공연히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클라렌스 대로우(Clarence Darrow)라는 자유주의 성향의 유명한 변호사가 스콥스의 변호를 맡고, 세 번이나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바 있는 유명인사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William Jennings Bryan)이 검사를 맡겠다고 제안하면서 스콥스 재판은 전국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한창 유명세를 떨치던 변호사와 검사 두 사람이 충돌하자 푹푹 찌는 법정에 1000명이 넘는 방청객이 모여들었다. 요즘 같았으면 TV 중계니 뭐니 야단법석을 떨었겠지만, 당시엔 TV가 없었으므로 미국 시민은 라디오 중계에 귀를 기울였다.

재판 5일째 되는 날, 스콥스의 변호사 대로우가 검사 브라이언을 증언대에 앉힌 다음 이렇게 질문했다.

“당신은 성경의 모든 말씀을 문자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십니까?”

“그렇소. 나는 성경 말씀을 거기 있는 그대로 해석해야 한다고 믿소.”

그러자 대로우가 지구의 나이를 들먹이며 공세의 포문을 열었다.

“창세기 1장 5절에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하는 말씀이 당신에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잠시 후, 브라이언이 대답했다.

“그 구절에 언급한 ‘날’이 반드시 24시간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진 않소. 내 생각으로는 그 ‘날’이 일정한 기간인 듯싶소.”

대로우가 그 기간이 얼마나 되느냐고 계속해서 브라이언에게 다그치자 마침내 브라이언의 감정이 폭발했다.

“당신의 유일한 목적은 성경에 흠집을 내는 것이오?”

브라이언이 고함을 질렀다. 이에 대로우가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단지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도 믿지 않을 당신의 그 어리석은 생각을 시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스콥스의 변호사 클라렌스 대로우는 검사 브라이언이 최후진술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변호하던 스콥스에게 유죄를 선고해줄 것을 재판장에게 요청했다. 결국 존 스콥스는 버틀러 조례를 위반한 혐의로 유죄선고를 받았고,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은 그 축구 코치에게 100달러 벌금형을 구형했다.

하지만 재판이 끝난 뒤, 근본주의자는 브라이언을 버렸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창조의 ‘하루’가 24시간이라고 굳게 믿는데, 브라이언이 재판 도중 창조의 ‘하루’가 24시간보다 더 긴 기간일 것이라고 진술했기 때문이다. 스콥스에게 유죄 판결이 내려지고 닷새가 지나서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은 세상을 떠났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근본주의자는 내부 갈등을 겪었고, 그 갈등으로 결국 북부 침례교 총회와 장로교가 분열하고 말았다. 더불어 많은 근본주의자가 다른 크리스천과 분리하여 나름의 교파와 조직을 형성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28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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