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발발 62주년 기획] 김일성 신(神)을 믿는 북한 주민

등록날짜 [ 2012-06-26 13:35:03 ]

북한에서 대대로 하나님을 믿는 집안에서 태어나
지하에서 몰래 예배드리다 들켜 10년 감옥형 받아
사선을 넘는 탈북 감행… 현재 신앙생활 꿈 같아

북한에서도 예수 믿는 집안이 있다. 나는 대대로 예수 믿는 집안에서 태어나 지난해 8월, 64세로 탈북해 남한에 올 때까지 북한 지하교회에서 전도사 역할을 했다. 10명 안팎 사람들이 가정집에서 몰래 예배를 드린다. 모인 사람들은 신분도 밝히지 않을뿐더러 이름도 가명을 쓴다. 나는 고모가 ‘주님의 은혜로 심부름하라’는 뜻으로 지어주신 ‘주은사’라는 가명을 썼다.

만일 예수 믿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삼 대까지 총살당하기에 잡혀가더라도 비밀을 철저히 보장한다는 혈서를 쓰고 예배에 참석한다. 성경이 거의 없으니까 성경 구절을 종이에 써서 나눠주면, 그 중 목사 역할을 하는 분이 말씀을 전하고, 찬송을 부르고 기도한다. 예배가 끝나면 그 종이는 거둬간다.

북한에서 신앙생활 그리고 가혹한 고문
북한에서 내 직업은 외화벌이하는 지도원이었다. 많은 사람을 이끌고 다니면서 일을 시켜서 큰돈을 벌어 국가에 많은 도움을 주었기에 아무도 내가 예수 믿는다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 했다.

많은 이를 전도하고 싶어서 낮에는 외화벌이하고 야간에는 통신으로 4년간 약제사 공부를 했다. 병도 고치고 치료해 주면 좋겠다 싶어서였다. 사람들의 맥을 짚어보고 병명을 알아내면 산에서 약초를 캐와 약을 지어 먹였다. 그랬더니 많은 사람이 치료를 받았다. 그중에는 반벙어리인 사람이 한 명 있었는데 약을 지어 먹이고 쌀도 사다 주면서 계속 하나님께 꼭 고쳐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런데 한 달 만에 그 사람이 말을 상당히 잘하게 됐다.

그렇게 외화벌이도 잘하고 병도 잘 고치니 소문이 나서 많은 사람이 집으로 모여들었다. 어느 날 예심원(북한의 수사기관)에서 불러 갔더니 밤마다 손들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병을 고친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혹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냐?”며 “바른대로 말하라”고 했다. 비밀을 지키기로 혈서까지 쓴 데다가 사실대로 말했다간 가족 모두 총살형이라 목구멍까지 하나님 소리가 나왔지만 “아니다, 그냥 하늘 보고 기도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임신 3개월 된 몸으로 구류장(죄인을 가두어 두는 곳)에 들어갔는데 인정사정없이 얼굴이며 배를 구둣발로 발길질하고 짓밟았다. 이마가 찢어지고 얼굴에 피가 나고 시멘트 바닥이 핏물로 범벅이 됐다. 입을 열지 않으니 만삭 때까지 매일같이 맞고 또 맞았다. 그런데 때리는 사람들이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담대하게 배짱이 생겼다. 아마도 하나님이 끝까지 지켜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모진 고문을 당하고 구둣발로 옆구리를 차였는데 그 충격으로 뱃속에 있던 아이가 그 자리에서 나와 버렸다. 바닥은 피로 흥건했고 놀란 예심원 사람들이 급히 병원으로 후송하는 바람에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당의 감시 아래 개인 집에 머물다가 산후 조리도 제대로 못한 채 7개월만 아이를 애육원에 맡기고 다시 구류장에 들어갔다. 결국, 구류장에 들어간 지 일 년 만에 김일성 수령을 믿지 않고 하늘에다 기도했다는 이유로 10년 감옥형을 선고받았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미신적인 행위를 했다는 이유라서 죽음은 면할 수 있었다.

그때 얻은 류머티즘과 관절염으로 평생 고생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뼈가 다 썩어서 수술할 수도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정말 감사한 것은 우리 연세중앙교회에 와서 예배드리고, 찬양하고, 기도하면서 깨끗하게 치료를 받았다. 할렐루야!

북한 주민의 비참한 생활 실태
지금 북한 주민의 생활 실태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하다. 배급도 없고 전깃불도 없어 밤만 되면 암흑 같은 세상에서 산다. 먹을 것이 없으니 산에 가서 풀 뜯어다 끓여 먹고 그나마도 없어 굶어 죽은 수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부모가 죽은 아이들은 꽃제비가 되어 돌아다니며 구걸로 연명한다. 밥알이 한 톨이라도 붙은 비닐 봉투가 있으면 주워 모아다가 식중독 걸리지 말라고 소다 한 숟가락 뿌려 여럿이 나눠 먹는다. 그나마 노인들은 기력이 없으니 돌아다니며 구걸도 못하고 집에서 굶어 죽는 수가 허다하다.

협동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그곳에서 생산한 농산물은 모두 군량미로 가져가니 배급을 받을 수 없다. 자고 일어나면 누가 굶어 죽었다는 소리만 들린다. 북한 주민은 김정은 정권이 무슨 말을 해도 이제는 믿지 않는다. 1999년 화폐 개혁 이후 고난의 행군, 강성대국을 외치면서 인민들 잘살게 해준다고 약속했지만, 길거리에는 매일 쓰러져 있는 사람들뿐이다.

주민을 속이고 거짓말하고 있다는 것을 이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특히 남한 사람들이 개성공단과 원자력 발전소 건립 차 북한에 들어와서 사는 것을 보면서 얼마나 그들이 잘살고 있는지를 더 생생하게 알게 됐다. 지금은 언제 폭동이 일어날지 모른다. 늘 반항과 긴장상태 속에서 살고 있다.

죽음을 각오한 탈북길
북한에서는 도저히 살길이 막막하여 중국으로 돈을 벌려고 탈북을 감행했다. 압록강을 건너려고 가던 길에 하마터면 북한 군견과 마주칠 뻔했다. 순간적으로 나무 위로 올라가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나뭇가지가 부러지면 바로 떨어져 붙잡히거나, 군견이 냄새를 맡고 달려들면 바로 발각될 숨 막히는 상황이었는데,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기적적으로 살았다.

하지만 그렇게 중국에 가서 보니 일자리는 고사하고 잡히면 북한으로 가지도 못하고 바로 죽음이었다. 그래서 한국으로 가야겠다 싶었다. 우선 태국으로 가려고 배를 탔는데 북한 인민군이 이미 중국 요소요소에 탈북자들을 잡으려고 배치해 있었다. 우리가 탄 배도 태국으로 가는 길에 북한 순찰 배가 뒤따라왔으나 물결이 엄청나게 센 데다 우리가 탄 배가 속도를 얼마나 냈는지 다행히 잡히지 않고 무사히 태국 강변에 도착했다.

만약 잡혔더라면 악어 밥이 될 뻔했다. 잡히면 그 자리에서 배를 뒤집어 악어 밥이 되도록 몰살하기 때문이다. 키를 잡은 배 주인도 잡힐까 봐 얼마나 긴장했는지 태국 강변에 우리를 물건 던지듯이 집어던지고는 도망치듯 사라졌다. 배는 고프고 차림새는 거지와 다를 바 없는 우리는 간신히 신작로까지 나왔는데 마침 지나가던 태국 경찰차에 발견되어 경찰서로 인도됐다. 여섯 개 감옥을 거쳐 우여곡절 끝에 한국대사관을 찾았고 남한으로 무사히 올 수 있었다. 다행히 아들과 딸도 다른 경로로 남한으로 와서 지금 함께 살고 있다.

일생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 것
지난해 8월 중국과 태국을 거쳐 남한으로 넘어올 수 있었던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먹을 것이 풍부하고 어디든지 가고 싶으면 마음대로 갈 수 있는 자유의 나라 대한민국으로 오게 하신 하나님께 무엇으로 감사를 표현하랴. 또 그렇게 원하고 원하던 하나님을 내 영으로 마음껏 찬양하고, 예배하고, 기도할 수 있는 성령 충만한 연세중앙교회로 오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린다. 남은 생애 동안 하나님의 섭리로 북한의 문이 열린다면, 제일 먼저 달려가서 하나님의 교회를 북한 땅에 세우는 것이 나의 마지막 소원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29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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