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기독교 유적지를 찾아서(7)] 6.25전쟁 당시 23인 순교자 이야기

등록날짜 [ 2013-09-17 09:29:57 ]

공산당이 내린 예배중지령에 굴복하지 않자 살생
그 후에도 교회와 교인의 집 네 채에 방화 저질러


<사진설명> 두암교회 전경. 오른쪽에 순교자탑이 보인다.

두암교회는 김용은 전도사가 1949년 1월 7일 모친 윤임례 집사 가정을 중심으로 첫 예배를 드리며 시작했다. 당시 김 전도사는 전북 정읍 철원교회에서 파송받았다. 두암교회는 기와를 얹은 집에서 이웃사촌들끼리 모여 단출하게 기도하며 시작했다. 그 이후 김용은 전도사와 그 가족은 열정과 헌신으로 마을 사람을 하나둘 변화하게 해 점차 마을 전체를 예수 믿는 신자들로 채웠다.

일제강점기에 정치적으로 압박을 받아 숨죽이며 살아온 백성은 1945년 8월 15일 해방과 함께 목이 터져라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희망에 잔뜩 부풀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두암교회는 6.25전쟁이 일어나기 직전 임동선 목사를 초청해 부흥회를 열었다. 그런데 부흥회 설교 중에는 공산주의를 비판하는 내용이 많았다. 이 일을 계기로 전쟁 발발 후 마을에 들이닥친 공산당이 마을 전체를 피로 물들이는 잔혹한 짓을 저질렀다.

6.25전쟁 발발 후 순교 사건
전북 정읍시 소성면 애당리 두암 마을에 있는 두암교회 순교 이야기는 6.25전쟁이 발발한 195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산당은 두암교회가 자신들에게 비판적이라고 판단해 윤임례 집사 가족은 물론 교인을 위협하며 예배를 방해하다가 마침내 예배중지령을 내렸다. 그러나 많은 교인이 그런 탄압에 조금도 굴복하지 않았고 끌려가 고문을 받으면서도 신앙을 지켜냈다. 하지만 1950년 9월 하순경 공산주의자들은 더욱 거세게 핍박했고 이 과정에서 김용은 전도사의 동생 김용채 집사가 총에 맞았다. 김용채 집사는 고부로 옮겨져 치료를 받던 중 그곳에서 또 공산당이 총칼로 위해해 우익인사들과 함께 죽어 마을의 첫 희생자로 이름을 올렸다.

그 후에도 교회를 지키려는 교인과 악랄한 공산당 사이에 피로 얼룩진 접전이 이어졌고 그 해 10월 19일 그 막을 내린다. 여기저기에서 몽둥이와 식칼을 들고 몰려온 공산당 패거리는 아이들까지 모아놓고 ‘예수쟁이는 미 제국주의 앞잡이’라며 미친개처럼 날뛰다가 끔찍한 살생을 저질렀다. 결국, 그때 공산주의자들은 윤임례 집사와 그 가족을 모두 참혹하게 살해했다. 이어 살기가 등등한 공산주의자들은 마침내 교회와 교인의 집 네 채에 짚을 쌓아놓고 불을 질렀다.


<사진설명> 순교자 23인 명단.

며칠 동안 동네에서는 불타는 재와 연기 때문에 우물물을 먹을 수 없었다고 한다. 이날 공산주의자들은 윤임례 집사와 며느리 조선환 집사 등 일가족을 모두 학살했고, 정읍농업고등학교 학생회장이던 김용술과 김용은 전도사의 친구 박호준 씨 등 두암교회 성도 23명 역시 처참하게 죽였다. 윤임례 집사가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죽은 점으로 보아 마지막 순간 죽음 앞에서도 기도하다가 칼에 찔려 희생되었을 것으로 본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는 말씀처럼 두암교회 순교자들이 흘린 피는 헛되지 않았다. 처참하게 짓밟히고 폐허로 버려진 곳에는 새로운 예배당이 세워졌고 순교자 23명의 희생을 기리는 순교탑을 건립했다. 이로써 두암교회는 한국기독교 역사유적지를 찾는 이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순례지로 자리했다.

<사진설명> 순교자탑.

성결교 부흥 성장에 이바지
한편 순교자 윤임례 집사의 아들인 김용은 목사와 동생인 김용칠 목사 형제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총회장까지 역임하며 성결교회 부흥 성장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또 두암교회가 서명선 목사를 비롯해 목회자 20여 명을 배출한 점은 모두 순교자 23명이 흘린 피 값으로 말미암은 아름다운 열매라 할 수 있다.

당시 두암교회는 모두 불탔고 성도도 대부분 죽었기 때문에 쉽게 복구되지 못하다가 1964년 두암 마을 출신인 김태곤 전도사 집에서 학생들과 주일예배를 드려 주일학교가 먼저 재건할 빛을 보였다.

불탄 교회는 1966년에 비로소 재건했는데 이때 임시로 묻은 순교자들 무덤을 두암교회 동산으로 이장했다. 당시 순교자들 유해가 심하게 훼손된 상태라 합장묘를 만들었다. 마침내 1977년 이들 순교자의 신앙과 희생정신을 기리자며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총회 차원에서 뜻을 모아 ‘순교자 23인 기념탑’을 세웠다.

이 탑은 사각 십자가 모양으로 건립했다. 사각은 성결교회의 사중 복음을 상징한다. 그 아래 쌓은 돌은 순교자 23인을 상징한다. 그리고 탑 꼭대기에 성령의 불을 상징하는 횃불을 조각했다. 하단 정면에 봉헌하는 문헌을 새겼고, 측면에는 예수 이름으로 죽어간 순교자 23인의 명단을 조각해서 순례자들에게 강한 감동을 전한다.

/특별취재팀

위 글은 교회신문 <35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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