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기독교 역사 현장을 찾아서(14)] 손양원 목사의 순교 정신이 묻어 있는 곳

등록날짜 [ 2013-11-12 15:51:55 ]

1909년 포사이드 선교사의 한센병 환자 치료와 돌봄으로 시작하여
손양원 목사 부임 후 일제와 공산당의 핍박에도 교회 끝까지 지켜


<사진설명> 애양원교회.

한국 기독교사에 등장하는 많은 순교자의 삶과 사역 이야기는 오늘날 그 신앙을 이어받은 한국 그리스도인뿐만 아니라 모든 이에게 큰 감동과 도전을 준다. 그중 일제 치하와 6.25전쟁 당시 가장 낮은 곳에서 소외된 병자들을 사랑으로 섬긴 손양원 목사와 애양원 이야기는 단연 백미로 꼽힌다.

여수 애양원 건립 과정
유진 벨(Eugene Bell, 1868~1925) 선교사와 오웬(C.C. Owen, 1867~1909) 선교사는 1904년 2월 목포선교부에서 파송 받아 그해 12월 25일 광주에서 성탄예배를 드리며 선교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1909년 4월 3일 오웬 선교사가 급성폐렴으로 생명이 위독해지자 동역자 윌슨 선교사가 전보를 쳐 친구 포사이드(Wiley Hamilton Forsythe, 1873~1918) 선교사를 불렀다. 포사이드는 목포를 떠나 광주로 향했다.

포사이드는 배로 영산강을 거슬러 올라가 나주에서 다시 말을 타고 가던 중 길가에 쓰러진 한센병 환자를 발견했다. 포사이드는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떠올리며 환자를 말에 태워 광주로 말을 몰았다. 그러나 포사이드가 광주에 도착한 때는 오웬 선교사가 이미 사망한 후였다.

포사이드는 광주 제중원에서 나병 환자를 치료하려 했지만 다른 환자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때마침 사택 건물을 짓고자 벽돌을 굽던 가마터에서 윌슨과 다른 선교사들이 나병 환자를 치료하며 복음을 전했다. 1909년 윌슨은 인근에 작은 집을 짓고 나병 환자 10여 명을 치료했다. 이것이 광주한센(나병)병원의 시작이다.

그 후 1925년까지 나병 환자 600여 명이 모여들자 지역주민이 집단으로 항의했다. 결국 광주한센병원은 1928년 정부가 마련해 준 여수 율촌면으로 이전했다. 기부자 이름을 따 ‘비더울프 나병원’(1928~1935)으로 개명했다가 1935년 병원 명을 공모해 ‘애양원(사랑으로 보살피는 동산)’으로 다시 바꿨다.

손양원 목사의 목회 여정
1939년 애양원교회에 부임한 손양원(1902-1950) 목사는 애양원교회에서 11년 2개월간 목회하며 일제강점기 고난을 겪었다. 손양원 목사는 신사참배 거부로 말미암은 감옥생활 6년을 제외하고는 순교할 때까지 한센병 환우들과 함께 교회를 지켰다.

손양원 목사는 중환자들이 모인 병실에 자주 찾아가 그들 몸에 손을 얹어 기도했고, 때로는 입으로 피고름을 빨아냈다. 같은 지역에 사는 사실조차 꺼리며 나병 환자를 쫓아내던 시절, 환부를 만지고 심지어 입으로 고름을 빨아낸다는 행동은 하나님이 주신 사랑이 아니고는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또 손양원 목사는 이러한 신앙 실천을 목사로서뿐만 아니라 아버지로서도 이어 갔다.

손양원 목사는 1948년 여순반란사건 때 두 아들, 동인과 동신을 한꺼번에 잃었다. 두 아들의 친구이던 안재선은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동인과 동신을 죽였다. 그런데 손양원 목사는 사형수 안재선을 “네 원수를 사랑하라”는 하나님 말씀에 따라 용서하고 양자로 삼는다.

손양원 목사는 두 아들을 땅에 묻으며 9가지 감사 기도를 드렸다. 참여한 이들은 큰 충격과 감동으로 눈물을 흘렸다.

1.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할 자식 나게 하시니 감사.
2. 허다한 많은 성도 중에서 이런 보배(나병인)를 주셨으니 감사.
3. 3남 3녀 중에서 가장 귀중한 장남과 차남을 하나님께 바치게 하셨으니 감사.
4. 한 아들 순교도 귀하거늘 하물며 두 아들이 함께 순교했으니 감사.
5. 예수 믿고 자리에 누워 임종하는 일도 큰 복인데 전도하다가 총살 순교했으니 감사.
6. 미국 가려고 준비하던 아들이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에 갔으니 내 마음 안심되어 감사.
7. 두 아들을 죽인 원수가 회개하고, 내게도 아들 삼고자 하는 사랑을 주시니 감사.
8. 아들이 순교한 사실로 무수한 천국 열매가 생기리라 믿으며 감사.
9. 역경에도 하나님 사랑 깨닫게 하시고 이길 수 있는 믿음 주시니 감사.
(오, 주여 나에게 분수에 넘치는 과분한 큰 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옵니다.)

순교의 정신 이어받아

<사진설명> 손양원 목사 순교기념관.

손양원 목사 역시 2년 후 1950년 6·25전쟁 중에 애양원교회를 지키다가 공산당 총부리에 순교해 삼부자가 모두 순교한 ‘순교자 가정’으로 기억에 새겨졌다.

여수시는 손양원 목사 순교기념관과 공원을 조성했다. 2012년에는 여수세계박람회 기간에 맞춰 손양원 목사 순교지를 테마공원으로 만들었으며 박람회장까지 셔틀버스를 운행하여 방문객들이 순교지를 찾는 편의를 도왔다.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던 한 나병 환자를 사랑으로 돌본 포사이드 선교사의 사랑이 한국 최초로 나병 환자 병원과 ‘애양원’을 건립하게 했다. 서로 의심하며 증오하고 살인하던 전쟁 한가운데 자식을 둘씩이나 죽인 원수를 용서하고 양자로 삼아 고통받는 이웃과 민족에게 소망을 불어넣은 손양원 목사의 삶이야말로 애양원의 정신이다.

/특별취재팀

위 글은 교회신문 <36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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