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추수감사절을 맞아] 의(義)와 인(仁)과 신(信)으로 드리는 예물

등록날짜 [ 2012-09-25 16:29:53 ]

하나님의 아들이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그 은혜 아는 자라면 인격적인 감사 올려 드려야

신앙의 자유를 찾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에 온 청교도는 낯선 땅에서 온갖 풍토병과 역경에 시달리며 한 해를 보내고 추수를 마친 후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렸다. 그러다 미국 링컨 대통령이 11월 셋째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정하여 연례 국경일로 정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추수감사절이 퍼져 나갔으며 나라마다 자기 나라 추수기에 맞춰 연례행사로 정착하고 있다.

연세중앙교회는 추석 명절보다 앞서 추수감사주일을 지키고 부흥성회를 열어 한 주 동안 영적인 큰 잔치를 베푼다. 현대 한국인에게 있어서 추석(秋夕)은, 한 해 수확의 풍요로움을 나눈다는 원래 의미와 달리, 조상에게 제사지내는 유교의식이 주를 이뤄 영적으로 볼 때 민속명절을 가장한 우상숭배의 날로 변질했다.

한 민족이 날짜를 정해서 우상에게 절하는 것을 보실 하나님 마음을 헤아려 우리 교회는 세상보다 한발 앞서 창조주께 영육간 수확을 감사하고자 인격적인 감사 잔치를 벌인다. 연세중앙교회 추수감사절은 이처럼 영적 승리에 기뻐하고 진실하게 감사하는 예배로 절기를 지낸다.

인격적인 감사를 올리는 절기
유대인은 무교절(유월절), 칠칠절(맥추절, 오순절, 초칠절), 초막절(수장절, 장막절)을 3대 절기로 지냈다. 오늘날 교회들이 지내는 감사 절기를 이스라엘 절기와 비교해보면, 유월절은 예수가 겪은 십자가 고난과 부활, 맥추절은 오순절 성령강림과 연결된다. 추수감사절은 가을을 맞아 한 해의 수확을 기뻐하며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리는 초막절에서 그 유사점을 찾아볼 수 있다. 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은 유대인이 하나님을 섬긴 모습을 살펴보며  어떻게 인격적인 감사를 해야 하는지 엿볼 수 있다.

유대 민족은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출애굽 사건을 잊지 않고 감사하고자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3대 절기를 만들었고, 지금도 초막절이면 광야생활을 기억하려는 뜻에서 한 주간 초막(草幕)을 짓고 생활하며(레23:42) 하나님께 감사한다. 하나님의 백성된 이들도 이토록 하나님께 마음을 다해 감사했다면, 우리는 하나님 아들이 죽기까지 사랑하사 자녀 삼아 주신 그 은혜를 받았는데, 어떻게 감사의 분량을 채울까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구약성경에 기록된 바를 따르면, 유대민족은 초막절이 되면 7일간 매일 감사제물을 드리고, 성경을 낭독하며 잔치를 즐겼다. 민수기 29장 12~38절을 보면 매일 드리는 예물 규례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먼저 첫째 날부터 일곱째 날까지 수송아지를 13마리부터 시작해 한 마리씩 내림차순으로 매일 드리고, 그와 더불어 매일 숫양 2마리와 1년 된 흠 없는 숫양 14마리를 기름 섞은 소제와 함께 드렸으며, 상번제, 전제 외에 숫염소 1마리를 속죄제로 매일 드렸다. 여덟째 날에는 수송아지 1마리, 숫양 1마리, 1년 된 흠 없는 숫양 7마리를 규례대로 소제와 전제로 드리고 상번제, 소제, 번제 외에 숫염소 1마리를 속죄제로 드렸다.

매일 속죄제로 숫염소 1마리를 드린 것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로 나아가려면 반드시 회개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채찍에 맞으신 예수 피 공로로 하나님과 화목하고 함께할 담대함을 얻은 우리도 예수 피를 붙들며 회개해야 한다. 또 이 기간에 바쳐진 짐승 수와 제물만 보아도 초막절이 최대 규모의 국가 축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여드레 동안 모두 수송아지 71마리, 숫양 15마리, 일 년 된 숫양 105마리, 그리고 숫염소 8마리를 드렸다. 여기에 식물과 포도주로도 제사를 드렸으니 어마어마한 예물로 하나님을 높여 드리며 감사한 것이다.

구원받은 은혜에 감사하다면
이처럼 레위기 23장과 민수기 29장 제물 규정에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일어나는 속죄와 화해가 강조되어 있다. 조상 아담 때부터 지은 죄 문제가 짐승의 피로 드린 속죄제로 해결받았다는 감사가 가득 담겨 있다. 그리고 신약에 와서 예수의 피 흘리심으로 성막의 휘장이 찢어지고 구원의 은혜를 직접 경험하는 은혜가 현재 우리에게도 넘치게 흐르고 있다.

하나님 아들의 피로 구원받지 못하고 그저 죄를 용서받은 것에도 감사하여 어머어마한 예물을 드려 하나님께 제사하며 감사했다면, 날마다 성령을 경험하고, 죄 사함을 경험하는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존재인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싶고 찬양하고 싶어도 자유가 없어서 감사를 속내로 삼키는 수많은 나라의 핍박받는 기독교인에 비하면, 우리는 얼마나 자유롭게 감사를 표현할 수 있는가.

이번 추수감사절에 하나님을 우대할 예배와 찬양이 나에게서 그려지고 의와 인과 신으로 드리는 예물로 감사해야 할 것이다. 물론 감사 절기가 경제적으로 부담돼서 의례적으로 지나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박국 선지자가 말하지 않았던가.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3:17~18).

또 두 렙돈이란 적은 예물을 드린 과부를 향해 예수께서 그 중심으로 보고 칭찬하지 않으셨던가.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연보궤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또 어떤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가라사대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의 있는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눅21:1~4).

이번 추수감사절에도 구원받은 은혜에 합당한 인격적인 감사가 있어야 하겠다.

위 글은 교회신문 <30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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