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례교단 바로 알기] 초대교회부터 내려온 정통성에 근거

등록날짜 [ 2012-10-23 10:13:46 ]

무수한 박해에도 신약시대 영적 계승 이어와
현재 미국 남침례교는 단일 교파로 세계 최대
침례(浸禮) 고수는 성서적 가르침이기 때문

‘침례교회의 시작은 언제부터인가?’라는 질문은 침례 교회사가(敎會史家) 사이에서도 연구 대상이다. 침례 요한이 요단 강에서 회개의 침례를 준 시기를 신약교회인 침례교회 출발로 보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중세 가톨릭교회 내부 개혁세력인 루터나 칼뱅의 개혁교회 운동에 견주어 외부 개혁세력 중심인 재(再)침례교파에서 시작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침례교도의 영적 선조(先祖)는 신약성경 시대 초기 그리스도인이다. 일반 교회사(敎會史)에는 감춰져 있으나 신약성경에 따른 표준과 모범을 이어 온 일단의 무리와 종교개혁 시대에 상당한 개혁세력을 구축하며 역사 속에 등장한 재침례파에서 그 영적 계승을 볼 수 있으며, ‘침례교도(浸禮敎徒)’라는 공식 이름의 발단은 신약시대 초기부터라고 보는 견해가 정설이다.

침례교 배경과 역사
그 근원과 시작이 어떠하든 남들이 붙여 준 이름을 갖게 된 침례교인은 처음부터 혹독한 박해를 받았다. 하지만 누구도 전 세계로 침례교인이 퍼져 나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초기 박해 시기, 영국 침례교도 중 대표적인 사람으로는  『천로역정』의 저자 존 버니언, 불후의 명설교자 스펄전, 최초로 해외 선교 횃불을 든 윌리엄 캐리, 미국 개척사에서 종교 자유를 위해 투쟁한 로저 윌리엄스, 유아세례를 거부했다는 이유만으로 하버드대학교 초대 총장직에서 물러나 추방된 헨리 둔스터 등이 있다. 그러나 침례교회는 제퍼슨이 양심 자유와 정교분리(政敎分離) 정신으로 미국 헌법 기초를 이루는 데 지대한 영향을 주는 등 미국 건국과 더불어 박해에서 벗어나 성장했다.

현재 미국 남침례교단은 단일 교파로는 개신교 중 세계에서 제일 큰 교단이며, 가장 많은 해외 선교사를 파송한 교단이기도 하다.

지난 세기 세계적인 전도자로 명성을 날린 빌리 그레이엄 목사, 대통령 재직 중에도 교회학교 교사직을 고수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도 바로 침례교인이다. 현재 전 세계 침례교 통계를 보면 침례교세계연맹(BWA)에 가입한 교회 수가 15만 8000여 개, 등록교인 수는 대략 1억 5000만 명이 넘는다.

한국 침례교회 역사
한국 침례교회는 1889년 12월 8일 캐나다에서 온 독립 선교사 말콤 팬윅(Malcom C. Fanwick)의 선교에서 시작한다. 신학교육을 받지 않고도 강력한 영적 경험을 토대로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한 그는, 후에 고국에서 신학교육을 받은 후 돌아와 평안북도 원산을 중심으로 복음 전도와 전도자 양성에 힘썼다.

1901년 원산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중, 미국 보스턴 침례교회 소속 엘라싱 기념선교회 선교 지역인 충청도와 전라북도를 인수받아 순회 복음 전도 활동을 펼쳤으며, 그 결과 충청도와 전라도 북부, 경상도 북부 지역에 침례교회 31개를 설립했다.

1921년 일제강점기에는 동아기독교회로 교단 명칭을 바꿔 만주, 시베리아, 간도 등에 많은 선교사와 순회 전도자를 파송해 교회를 세웠다. 이 시기에 교단은 이미 많은 순교자를 배출했다. 특기할 만한 것은 모두 복음 전도에 힘쓰다 해난사고를 당하거나, 공산당에 살해되거나, 일제 밀정으로 오인받거나, 몽골 토족의 습격 또는 일제 박해로 순교했다는 점이다.

특히 1925년에는 총회가 일제하 학교 교육을 금지하는 훈령을 내리고, 일제 황궁요배(皇宮遙拜)와 신사참배에 불응하여 갖은 박해와 고난을 받았다. 1941년 ‘원산 32인 사건’은 교단에서 발행한 성경을 불온문서로 취급한 일제에 모든 재산이 압류되고, 이종근(당시 총회장) 감목(監牧)을 위시해 교역자 32명이 옥고를 치른 사건이다.

마침내 1944년 5월 10일 일제는 교단 해체령을 내렸다. 당시 통계로 한반도와 만주, 간도 지역에 26개 구역(현 지방회) 400여 개 침례교회가 있었다. 해방과 더불어 재건에 나선 교단은 미국 남침례회 해외선교부와 선교협정을 맺어 오늘에 이른다.

침례의 의미
침례교에서 세례(洗禮)가 아닌 침례(浸禮)를 주장하는 것은 성경 속에 진행된 의식이 침수례(浸水禮)라고 믿기 때문이다. 침례교회는 신약성경을 따른 교회를 회복하려는 열정이 강하다. 물론 그렇다고 다른 교단이 신약성경에 따른 교회가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침례교회가 침수례를 고수하는 것은 성서에 따른 올바른 의식을 회복하려는 것이다.

종교개혁 당시 개혁자들은 구원론에서는 크게 개혁했지만, 교회 정치 체제나 의식 면에서는 가톨릭과 완전히 획을 긋지 못했다. 침례교회는 이런 비성경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좀 더 하나님 말씀에 입각한 교회를 세우려는 열정이 어느 교단보다 강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렇다고 침례교회가 세례받은 사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침례교회에서 직분자가 되려면 침례받을 것을 요구할 뿐이다.

이같이 침례교단은 신약시대 초대교회 때부터 내려온 역사적 근거가 있으며, 좀 더 성경 내용에 맞는 교회를 세우고 많은 그리스도인이 함께 교회를 이끌어 가는 회중(會衆) 정치를 지향한다.     

위 글은 교회신문 <31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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