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2-12-26 11:45:13 ]
구제와 이웃 사랑만 강조치 말고
죄 때문에 오신 예수 알려 주어야
<사진설명> 연세중앙교회 성탄트리 /사진 봉경명
이제 ‘성탄절’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보다 산타클로스나 트리, 선물, 가족, 연인 등을 연상하는 시대가 됐다. 우리가 아는 대로 지난 수년간 미국 기독교 반대자들은 모든 관공서와 공립학교에서 ‘메리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라는 말 대신 ‘해피 홀리데이(Happy Holiday)’라는 인사말을 쓰도록 캠페인을 하고 있다.
성탄절 카드를 구매하려 해도 ‘메리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라는 단어를 찾기가 어렵다. 미국 사회가 지난 10년 사이에 이렇게 바뀐 것은 교회와 크리스천의 영향력이 날로 줄어드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성탄절이 되면 가족과 함께, 친구들과 함께, 아니면 이웃과 함께 보내면서 카드나 선물로 사랑을 전하는 것이 관행이 됐다. 또 교회나 각종 단체에서는 보육원이나 양로원, 아니면 주변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 성탄절과 연말연시를 보내는 것이 한 해를 마무리하는 관례처럼 여기고 있다.
그러나 사실 예수께서 탄생하신 근본적인 목적은 온 인류에게 죄 사함의 은총을 주시려고 십자기에 못 박혀 죽는 희생을 감수하러 오셨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예수 탄생의 진정한 목적은 알려 하지 않고, 그저 이웃을 배려하며 사랑을 나누는 것만 예수의 참모습으로 여기며 성탄절의 의미를 잘못 해석하고 있다.
마구간에서 나신 예수
2000년 전에 오신 아기 예수는 이 땅에 있는 악한 존재들에게 보여줄 표적으로 오셨다. 아기 예수가 이 땅에 태어나 마구간 구유에 누워 있는 것이 우리에게 표적이 되는 것은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통로가 생긴 것을 의미한다.
먼저, 예수께서 탄생하신 곳이 왜 하필 짐승들이 기거하는 마구간이며, 누운 곳이 구유이어야만 했을까?
시편에 “사람은 존귀하나 장구하지 못함이여, 멸망하는 짐승과 같도다.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시49:12)라는 말씀을 근거로 한다면, 우리는 짐승과 다름없다. 어쩌만 짐승만도 못한 존재가 인간이다.
이사야 1장 3절 말씀처럼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라고 한 것처럼 제 주인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짐승만도 못한 인간들이다.
성탄절은 악하고 게으르며 깨닫지 못하는 짐승과 같은 우리를 하나님과 한 몸이 될 수 있는 신의 성품에 들어가는 차원에서 주님과 하나가 되는 길을 마련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짐승의 속성으로 가득 차 있는 내 마음속에 탄생하신 것에 먼저 감사해야 할 것이다.
목적에 부응하는 성탄 축하
12월 25일을 기념하고 예수 탄생을 축하한다고 해서 성탄절 의미와 목적이 다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 오신 목적에 부응하지 못하면서 아무리 기념하고 축하한다고 한들 그것이 성탄절을 의미 있게 보내는 것이 아니다. 교회 안팎에서 캐럴을 부르고 찬송을 부른다고 할지라도 본래 의미와 목적을 모르고 부른다면 하나의 소리에 불과하다. 진정한 성탄절의 의미를 깨닫고 찬송을 불러야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성탄절의 본질을 망각하여 만들어낸 성탄 세태를 올바르게 바꾸지 않는 이상, 우리는 육적인 성탄절에 머물게 된다. 성탄의 소식을 듣고 경배하러 온 목자들처럼 다시 오실 예수를 기다리며, 황금과 유향과 몰약으로 경배한 동방 박사들처럼 우리도 정성을 다해 예물을 드려야 할 것이다.
하나님과 연합할 길을 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진정으로 감사하는 성탄절이 되기를 소원한다.
/정재형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318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