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3-06-12 10:11:00 ]
기초학력 떨어지고 탈북 과정에서 겪은 정서적 불안 심해
무조건적 강요 말고 남한 적응에 세심한 관심과 사랑 필요
◆김민호(가명·18세) 군은 갓난아기 때부터 북한의 고아원에서 자랐다. 여덟 살 때 처음 보는 아주머니가 ‘엄마’라며 찾아와 집에 가자고 했다.
그 ‘엄마’와 함께 중국, 베트남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왔다. 행복하던 어느 날 그 ‘엄마’는 유전자 검사를 하더니 “너는 내 아들이 아니다”라며 외면했다.
이후 김 군은 무연고 탈북 청소년 그룹홈에서 살고 있다.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한 김 군은 학교 친구들에게는 자신의 이런 사연을 비밀로 하고 있다. 초등학교 때 따돌림을 당한 쓰라린 경험에서 얻은 ‘생존법’이다.
◆박수정(가명·18세) 양은 여섯 살이던 2001년 브로커 손에 이끌려 혼자 탈북했다. 북한의 부모와 할머니는 집안이 점점 더 가난해지자 박 양을 한국으로 ‘탈출’시키기로 했다. 박 양은 브로커와 함께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긴 끝에 중국을 거쳐 한국 땅을 밟았다.
하지만 “먼저 가 있으면 곧 따라가겠다”던 부모는 12년째 오지 않고 있다. 박 양은 “당시 부모가 어린 동생을 보내려 하기에 차라리 내가 가겠다고 했다”면서 “속상한 일이 있을 때마다 엄마가 몹시 보고 싶은데 찾을 방법이 없다. 이제는 엄마 얼굴도, 이름도 다 잊었다”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박 양은 입국 이후 그룹홈에서 지내고 있다. 학교는 고등학교 1학년까지 다니다가 그만둔 상태다.
국내 입국 탈북 고아 622명은 ‘여전히 방황 중’
국내에서 ‘탈북 고아’는 가족 없이 입국한 만 24세 이하 북한 아동과 청소년을 일컫는다. 정부는 이들을 ‘탈북 무연고 청소년’이라고 부른다.
지난 1999년부터 올해 4월 30일까지 국내에 들어온 탈북 고아는 모두 622명이다. 이 가운데 현재 20세 미만 미성년자는 147명이다.
이들은 대부분 탈북 고아를 돌보는 그룹홈이나 기숙형 학교, 대안학교 등 보호시설에 머물고 있다. 일부는 친인척이나 지인의 집에서 생활한다.
특히 이들은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거나 공부를 따라가지 못해 학업을 중단하는 등 각종 어려움에 시달린다.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이 발간한 ‘2012 탈북 청소년 실태조사’를 보면, 탈북 청소년들의 일반학교 중도 탈락률은 초등학교 0.9%, 중학교 8.7%, 고등학교 9.4%로, 국내 전체 정규 학교의 학업 중도 탈락률보다 8배나 높다.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미국이나 캐나다 등 외국으로 떠나는 탈북 고아도 많다.
탈북 청소년의 학교 생활 어려움
<사진 설명> 탈북 청소년 대안학교 ‘하늘꿈학교’ 학생들.
현재 전국 초·중·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탈북청소년은 2000여 명(2012년 통계)이고 서울시에는 60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현재 탈북 청소년을 위한 프로그램은 학습과 관련된 지원만 강조하고 있어, 학습지원뿐 아니라 정신건강, 정서관리에 관한 실질적인 프로그램 적용이 필요하지만 이를 시행하는 곳은 부족한 실정이다.
특히, 탈북 청소년들은 청소년기 과정에서 겪는 이중과업과 심리적 급변기에 오는 정서적 불안에 더하여 북한을 이탈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위험을 헤치면서 겪은 외상 후 스트레스, 북한 사회와 다른 남한 사회라는 새로운 문화적 환경에서 느끼는 이질감, 가족해체, 남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부모세대와 갈등으로 심리적, 사회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 북한에서는 이미 경제 침체와 식량난 등으로 교육체제가 붕괴하여 북한 청소년들은 탈북 전부터 학습 결손을 겪고 있다. 이들이 정규 학교에 편입하기까지 국내 적응 기간은 겨우 12주다.
하나원에서 받는 일반적인 적응 교육과 함께, 초등은 안성 삼죽초등학교 특별학급에서, 중등은 하나원 내 교육과정인 ‘하나둘 학교’에서 남한 학교 교육을 받아보는 것이 전부다. 그러다 보니 기초학력 자체가 부족한 실정이다.
탈북 청소년은 탈북 과정에서 경험한 극단적 공포로 생긴 ‘후유증’, 남한생활에 대한 두려움, 생활 속에서 겪은 크고 작은 좌절로 새로운 환경에서 건전한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남한 사회 정착 위한 세밀한 대책 필요
한국 사회의 품에 제대로 안기지 못하는 탈북자들의 좌절감도 깊어지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 탈북청소년교육지원센터 김신희 연구원이 최근 탈북 청소년 287명을 대상으로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살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37.0%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김 연구원은 “이들 37%가 한국을 떠나고 싶어 하는 이유는 탈북자를 복지의 일방적 수혜자 정도로 여겨 사회적 낙인을 찍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홍순경 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은 “탈북자에게 경제지원만 지나치게 강조하여 사회 전반에 탈북자에 대한 반감이 커졌다. 이 반감은 탈북자의 정착을 더 어렵게 하고 그 해결을 위해 다시 경제적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는 악순환 구조”라고 말했다.
‘탈북자=북한 정권’으로 보는 한국 사회의 편견도 탈북자가 행복해지는 ‘남한 내 작은 통일’을 어렵게 한다.
탈북 청소년 대안학교인 여명학교 조명숙 교감은 “탈북자와 북한 정권을 하나로 보는 사람이 매우 많다”고 말했다. 탈북 대학생 백요셉 씨는 “언론이 가난, 폭력, 저학력, 실업 등 탈북자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만 집중 보도하다 보니 탈북자에 대한 인식이 나빠진 것 같다”고 말했다.
탈북자들은 “우리가 자활의지를 갖고 남한 사회에 정착할 수 있게 세밀한 대책이 뒷받침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탈북자 출신 새누리당 조명철 의원은 “극소수 탈북자 성공모델을 다른 탈북자들에게 강요하면 안 된다”며 “성공모델 개발과 부적응자 교육과 지원이 병행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위 글은 교회신문 <341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