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별 기독교 현황과 분포] 서서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과정

등록날짜 [ 2013-07-02 10:59:49 ]

필리핀과 중국 등에서 오랜 세월 선교활동 있었으나
현재 가톨릭 사상으로 정착 또는 공산화 속에서 성장

1521년, 포르투갈이 낳은 위대한 탐험가 페르디난드 마젤란(Ferdinand Magellan)이 섬 7100여 개로 이루어진 땅을 발견했다. 스페인은 필리핀으로 알려진 이 섬들을 식민지로 삼았다. 이후 필리핀은 1898년까지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다.

필리핀은 동남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기독교가 우세한 나라다. 스페인이 지배하는 기간에 다양한 수도회, 특히 프란시스 수도회와 도미니카 수도회가 복음화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그 때문에 현재까지 필리핀 내 지배적인 종교는 가톨릭이고, 현재 다양한 형태의 개신교가 필리핀에서 확고히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여전히 소수다.

동남아시아 다른 지역의 기독교를 표현한다면 ‘성장하는 소수’라 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1549년에 예수회 선교사 프란시스 사비에르가 가고시마에 발을 디뎌 기독교 토대를 마련했다. 그때 일본에 세워진 작은 교회는 도쿠가와 막부 시대에 오랫동안 서양과 단절되었다. 일본이 1865년에야 서방에 문호를 개방했을 때, 일본에는 그리스도인이 이미 6만 명에 이르렀다. 기독교는 메이지 유신 시대에도 계속 성장했다.

그러나 일본에 뿌리내린 기독교는 중국이나 한국에서처럼 폭발적으로 성장하지 못했다. 많은 일본인이 기독교를 버터 같은 서양 문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기독교를 가리키는 일상적인 일본말이 “버터 맛이 난다”라는 뜻을 지닌 데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동남아시아에서 일어난 가장 흥미로운 부흥은 중국에서 찾아볼 수 있다. 중국에 기독교를 처음 전파한 시기는 1294년, 프란시스 수도회 선교사들이 중국에 들어갔을 때라고 알려졌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앞서 중국에 기독교를 전파했다는 증거가 있다.

일반적으로 781년에 새겨졌다고 추정하는 <대진경교비> 비석에는 중국 선교 기록이 남아 있다. 635년 알로펜(Alopen)이라는 선교사가 페르시아에서 당나라로 들어갔다. 태종 황제는 알로펜을 열렬히 환영해 주었고, 알로펜에 이어 수도사들이 들어왔다. 중국에 들어온 네스토리우스파(경교)는 강력한 선교활동을 벌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네스토리우스파가 벌인 선교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중국은 19세기에 이르러서야 서양에 문을 열었다. 1840년대에 일어난 아편전쟁으로 중국은 영국과 체결한 난징조약을 시작으로 다섯 개 항을 개방했다. 중국이 외교에 관심이 커지자 자연스럽게 서양 선교사들에게도 문이 열렸다. 이때 중국에 들어온 선교사 가운데 특별히 제임스 허드슨 테일러를 살펴봐야 한다.

허드슨 테일러는 처음에는 중국 복음화협회 선교사였다. 그러나 이 단체에 만족하지 못한 테일러는 1865년에 ‘중국 내지 선교회’를 직접 설립했다. 이 선교회는 독신 여성들을 선교사로 받아들이고 교단을 초월하여 선교활동을 펼치는 등 몇 가지 면에서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선교 방법을 감행했다. 허드슨 테일러는 기독교 선교사들이 중국에서 부딪히는 문화 장벽을 인식하고 이를 제거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예를 들면, 서양 선교사들에게 양복 대신 중국 옷을 입으라고 요구했다.

그런데도 중국을 복음화하려는 서양의 시도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중국인들은 기독교는 서양 문물이기 때문에 중국에 맞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리고 중국이 청일전쟁에서 패한 직접적인 원인이 중국에 외국인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인식이 확산했다. 그 결과 1889~1900년에 외국 투자와 종교 활동을 격렬하게 반대하는 의화단의 난이 일어났다. 이후 1911년 중화민국이 건국되면서 기독교는 중국에서 어느 정도 공식적인 인정받았다.

그러나 1949년, 내전에서 승리한 공산당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우고 모든 서양 선교사를 추방하자 상황이 돌변했다. 1960년대에 일어난 문화혁명은 기독교를 강력하게 탄압했다. 이때 서양 선교사들은 기독교가 뿌리째 뽑혔다는 결론을 내렸다. 1979년, 마침내 문화혁명의 공포가 사라졌다. 기독교가 문화혁명 중에도 살아남았다는 증거가 분명히 드러났다.

더 넓게 보면, 현대 중국 기독교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1951년에 시작한 삼자 애국 운동은 중국의 공식교회다. 삼자란 중국 기독교인이 스스로 교회를 이끌어나가는 자치(自治), 중국 기독교인의 헌금으로 스스로 교회의 필요를 유지하는 자양(自養), 스스로 목회자를 양성하여 성경의 진리를 전하는 자전(自傳), 이 세 원칙을 말한다. 이것은 교회가 외국의 모든 영향에서 완전히 독립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그러나 국가가 삼자교회를 상당히 지배하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2. 가톨릭교회는 중국에서 여전히 중요하다. 중국 정부는 “교회가 외국 기관에 의존하거나 복종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해 교황에게 충성하는 가톨릭 교인들을 상당히 힘들게 한다. 일반적으로, 현대 중국 가톨릭에는 두 그룹이 있다. 하나는 바티칸에서 독립한 그룹이며, 다른 하나는 그렇지 않은 그룹이다.

3. 가정교회 운동은 이제 중국에서 가장 중요한 기독교 운동이다. 은사주의 성향이 강한 이 운동은 폭발적인 수적 성장을 이루었다. 특히 농촌 지역에 많은 가정교회가 세워졌다. 중국 가정교회에 속한 신자 수만 5000만 명이 넘는다고 추정한다.

위 글은 교회신문 <34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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