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3-07-16 09:14:52 ]
가톨릭이 중심이 된 지역에서 기독교 엄청난 증가세
복음주의 신앙운동 더 활발하게 일어날 것으로 기대
16세기, 서유럽은 종교개혁이라는 거대한 종교적, 사회적 격변으로 혼란에 빠졌다. 프로테스탄티즘이 탄생하여 서유럽 전체 종교생활을 크게 바꿔 놓았으며, 예전보다 탄력 있고 역동적인 기독교를 낳았다.
가톨릭교회는 처음에 마틴 루터를 비롯한 개혁자들로 말미암은 종교적 저항과 변화에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나 마침내 전열을 정비하고 흔히 ‘가톨릭 종교개혁’이라 불리는 자신만의 갱신과 개혁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1517~1545년에 가톨릭교회를 뒤흔들어 놓은 충격적인 사건들이 일어났는데도, 16세기가 끝날 무렵 가톨릭교회는 처음보다 훨씬 더 잘 정비되어 있었다.
라틴아메리카는 로마 가톨릭의 요새라는 생각이 오랫동안 사람들을 지배해 왔다. 이런 라틴 아메리카가 ‘해방신학’으로 최근 중요한 갱신을 경험했다. 학자들은 학문적 문화의 몇몇 핵심 가치를 지닌 해방신학을 좋아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순진하고 무비판적인 방법으로 해방신학을 다루었다. 북미 학자는 상황을 멀리서 지켜보며 해방신학자와 정치가의 저작에만 의존하여 남미의 복잡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 결과, 이들은 보통 사람들이 자신들의 상황에 관해 하는 말과 그들이 원하는 바에 귀를 기울이지 못했다.
지극히 단순한 사실은 해방신학이 본질적으로 학문 운동이었다는 점이다. 또 해방신학은 남미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었으나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말로 표현했다. 해방신학은 남미 역사와 사회 현실을 고려할 때 누가 보더라도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개혁 프로그램을 제시했다.
현재 남미에서는 오순절파가 급격히 확산해 상황이 바뀌었다. 복음주의 공동체들이 어디선지도 모르게 나타나 남미의 종교적 풍격(風格)을 극적으로 바꿔 놓았다. 현재 남미와 중미 전체 인구 4억 5000만 명 중에서 적어도 5000만 명이 개신교인이라 추정한다. 그뿐 아니라 개신교인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흥미롭게도, 남미에서 확산하는 개신교 형태들은 그 지역의 전통적 개신교가 아닌 ‘오순절파’와 ‘복음주의’로 통하며 새롭게 등장한 부흥주의 형태를 띠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러한 변화는 무엇을 암시할까? 어떤 사람들은 이 모든 일이 레이건 시대에 펼친 중앙정보부 공작 때문이었다고 막연하게 주장했다. 그러나 통계는 이러한 주장이 전혀 근거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이러한 경향은 레이건 시대보다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지금도 계속된다.
남미 사람들은 가톨릭을 16세기 정복자들로 여겼다는 점이 좀 더 그럴듯한 설명으로 들린다. 즉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심어 놓은 식민지 종교로 보았다. 라틴아메리카에서 발전한 복음주의와 오순절파 형태는 지역 상황에 훨씬 잘 맞았으며, 그 지역에서 더 잘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보았다.
<사진설명> 사진은 윤석전 목사 초청 브라질 성회 한 장면.
최근에 남미에서 일어난 변화를 보면 그 지역을 휩쓸고 있는 복음주의 사상, 예배 형식과 관련이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복음주의 사상과 예배는 대중적이고, 접근하기 쉬우며, 개인적인 경험에 호소했다. 해방신학은 라틴아메리카 대중을 적절히 겨냥한 듯 보이지만, 학구적이고 지적인 특징을 지녔다. 따라서 보통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맞지 않는 종교로 인식했다.
복음주의 목사들은 민초(民草)들 수준에서 움직였으며, 자신이 돌보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일에 귀를 기울였다. 자기 삶을 다스리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복음주의나 오순절파를 이러한 목적을 성취하는 수단으로 보았다. 사회를 개혁하려는 이들은 사회개혁이 가능하다고 보았지만 장기적인 목표로 사회개혁을 보았다. 그리고 자기 자신과 자신의 가정 혹은 공동체를 변화하려 했다.
오순절파의 체험적인 종교는 특히 이런 관심사와 잘 맞았다. 또 대중적인 라틴아메리카 문화의 중요한 요소들(널리 퍼져 있는 영들에 대한 신앙)사이에 다리 역할을 했다. 오순절파의 세계관은 남미 지역의 토속종교와 자연스럽고 쉽게 연결되어 잡귀를 쫓는 요소를 포함한다. 오순절파는 힘들이지 않고 라틴 아메리카 토양에 뿌리내렸고, 지금도 계속 성장하고 있다. 미래의 흐름을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지표는 오순절 운동이 외부의 복음주의 선교사들에게서 라티노(Latino, 라틴아메리카 사람)로 확산하는 것이 아니라 라티노에게서 라티노에게로 확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순절 운동은 북미인에게서 기원했지만 이제는 남미 지역민의 손안에 굳게 잡혀 있다.
이미 한국과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지역에서 보았던 형태를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다. 처음에 유럽인이나 북미인이 심어 놓은 기독교 여러 형태가 현지인 지도자들에게 넘어갔으며, 새로운 형태로 계속 번성했다. 유럽인과 북미인은 이러한 성장의 첫 단계를 잘 독려하고 유지해 주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지금 우리에게 있는 기독교는 이들 지역에서 토착화한 기독교, 다시 말해 현지인들이 리더를 맡아 복음을 철저히 지역적 사고를 토대로 이해하는 기독교다. 기독교의 탈중심화는 잘 진행되고 있다.
위 글은 교회신문 <345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