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기독교 역사 현장을 찾아서(18)] 6·25사변 때 순교가 가장 많이 일어난 곳

등록날짜 [ 2013-12-18 09:05:53 ]

좌익분자들 서울 수복 후 UN 환영한다는 이유로
부녀자와 어린이 등 77인을 잔학무도하게 살해해


<사진설명> 염산교회 현재 모습.

광주에서 승용차로 1시간 거리에 불과한 전라남도 영광군 염산면 봉남리 설도 마을. 비록 서남해안에 자리한 작은 어촌마을이지만 설도항에 있는 염산교회에는 한국 기독교 역사상 가장 큰 아픔인 순교자 77인의 피가 흐르는 곳이다.

일제강점기인 1939년 8월 허상 장로가 세운 염산교회는 전라남도 영광군 염산면 일대에서 복음의 등대 역할을 수행했다. 그 후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예배당에 걸린 종을 빼앗기는 수난을 당했으며 해방 후에는 6·25 사변 중 인민군의 급습으로 수많은 희생자를 낸 대표적인 순교지이기도 하다. 당시 신앙을 지키며 주를 위해 아낌없이 자신의 목숨을 내어준 염산교회 순교자들이 겪은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가슴이 저려온다.

6.25사변과 순교의 역사
1950년 3월 10일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김방호 목사가 부임하자 교회는 날로 성장 부흥했다. 6·25사변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공산군이 영광읍을 점령하였고, 7월 23일 주일예배를 끝으로 교회 문이 닫혔다. 김방호 목사는 공산군의 눈을 피해 성도 집을 심방하여 가정예배를 드렸다.

그러던 중 인천상륙 작전에 성공한 유엔(UN)군이 9월 28일 서울을 탈환하고 중앙청에 태극기를 꽂았다는 소식이 염산면에 전해졌다. 1950년 9월 29일에는 염산교회 청년회가 앞장서서 국군과 유엔(UN)군을 대대적으로 환영하였다. 그런데 미처 퇴각하지 못한 공산군이 이 일을 포착했다. 공산군은 10월 7일 환영대회에 앞장선 기삼도를 비롯한 청년들을 처형하고, 예배당에 불을 질렀다. 이는 이후 벌어진 대참극의 서막에 불과했다.

공산군이 감시를 강화하자 성도들은 김방호 목사와 사모가 몸을 피하게 했다. 하지만 김 목사는 성도와 교회를 버릴 수 없다며 초대교회 카타콤 같이 숨어 비밀리에 예배를 드리며 성도를 찾아 심방하는 일을 계속하였다.

10월 26일 공산군은 결국 성도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던 김 목사를 찾아내 그 자리에서 몽둥이로 때리고 죽창으로 찔렀다. 김 목사는 그 자리에서 순교했고, 김화순 사모와 다섯 아들 그리고 손자, 예배 장소를 제공한 장병태 성도마저 그 자리에서 순교했다. 공산군은 함께 예배를 드린 허상 장로를 해변 제방 수문 턱 위에서 목에 돌을 달아 물에 빠뜨렸다. 또 수문 제방 옆에 끌려간 여자 성도들은 긴 머리카락을 쳐들고 칼로 목을 쳐서 죽였다.

증언에 따르면 순교자들은 아름다운 모습을 남긴 채 주님의 품으로 갔다고 한다. 이들은 순교자 반열에 든 사실이 감격스러워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던 중 숨을 거두었으며, 허상 장로는 목에 돌을 달고 물에 빠져가면서도 원수를 위해 기도하였다. 노병재 집사는 순교하면서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찬송을 힘차게 불렀다고 한다.

1952년 1월 16일 공산군이 완전히 퇴각할 때까지 염산 지방은 가장 가혹한 핍박을 받았다. 이 기간에 염산교회 교인 중 3분의 2인 77명이 순교했고, 야월교회<교회신문 355호 참조> 역시 65명이 순교하는 역사를 남겼다.

기독교순교체험관 세워
염산교회에서 살아남은 성도들은 교회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1951년 2월 24일 다시 모였다. 그 자리에서 숨겨 놓은 성경책과 찬송가를 꺼내 예배를 드렸다. 이어 4월 10일에는 홀로 살아남은 김방호 목사의 삼남 김익 전도사가 염산교회 제4대 교역자로 부임하여 예배를 인도했다.

특히 김익 전도사는 학살에 가담한 좌익분자들 가족을 찾아다니며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전하고 그들을 포용했다. 이처럼 폐허에서 일어선 염산교회는 예배당을 다시 세우고,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돌보며, 성경구락부를 개설하여 교육 사업에 힘쓰는 등 재건에 매진했다.


<사진설명> 설도항에 있는 순교자기념탑(왼쪽). 기독교순교체험관(오른쪽).

염산교회 순교자 77인이 흘린 피는 절대 헛되지 않아서 오늘에 와서 풍성한 열매를 맺었다. 한국 기독교 최대 순교지인 이곳에 순교 정신을 계속 이어가고자 영광군은 2003년 6월 기독교인순교탑을 세웠다.

1997년에는 영광군 기독교 순교자기념사업추진위원회를 조직했으며, 1998년 순교자공원을 조성하고 순교자기념비를 세웠다. 순교자기념비는 가시면류관을 쓰신 예수 그리스도를 형상화해 사랑과 용서를 표현했다.

2009년 문을 연 염산교회 ‘기독교순교체험관’은 350평 규모 3층 건물로 집회실, 전시실, 시청각실, 전망대 같은 다양한 시설을 갖췄다. 전시실에는 자료 400여 점을 전시했다.

/특별취재팀 

위 글은 교회신문 <36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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